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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시장의 호황,이른바 '유동성 파티'가 끝났다.파티가 남긴 230조 원이라는 PF 부채가 우리 경제를 억누르고 있다.고통을 받는 이들은 사람은 불안한 주택 시장과 닫힌 대출 창구 앞에 삶을 위협받는 서민들이다.과욕으로 위기를 키운 기업과 금융은 법과 제도를 이용해 책임과 손실을 떠민다.PF 위기를 키운 진짜 책임자를 밝히고,PF 위기의 해법을 세 차례 보도를 통해 모색한다.
또 한 번의 '대마불사',태영 사태 6개월
지난해 12월 28일,태영건설이 채권단에 워크아웃(기업채무조정)을 신청했다.대영건설은 재계 44위 태영그룹의 주요 계열사로 시공능력 16위로 평가받는 곳이다.서울 성수동의 한 사업장에서 발생한 400억 원 규모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을 갚지 못하면서 자산규모 12조 원의 태영 그룹 전체가 휘청였다.말로만 돌던 건설사의 PF 부채 문제가 현실화된 사건이었다.
당장 문제가 생긴 건 400억 원이지만,숨은 빚이 더 있었다.태영건설은 워크아웃을 신청하며 처리해야 할 우발부채 규모를 총 2조 5천억 원으로 잡았다.우발부채는 보증 계약과 같이 특정 상황이 되면 부채가 될 수 있는 잠재적인 부채를 말한다.워크아웃 신청 이후 발표된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지난해 말 기준 태영건설은 부채가 자산보다 5,617억 원 많은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다.
워크아웃 신청 직후 발표한 태영건설의 자구안은 채권단의 빈축을 샀다.계열사 4곳을 매각하거나 담보로 잡아 상환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자구안의 주된 내용이었다.하지만 실상은 달랐다.계열사 태영인더스트리의 매각 대금 1,549억 원 중 890억 원을 지주사 티와이홀딩스의 연대 채무를 갚고,나머지 659억 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한다는 계획이었다.그룹의 핵심 계열사 SBS에 대한 담보 제시도 자구안에 빠졌다.주채권은행 산업은행는 '대주주의 책임 있는 자금 조달 방안이 나오지 않으면 워크아웃 개시에 동의하기 어렵다'라는 입장을 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까지 나서 태영건설의 자구안이 '남의 뼈 깎는 노력'이라며 비판하자,태영은 기업개선계획을 조정했다.계열사 매각 대금 전액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고,SBS 지분을 담보로 추가 자금을 조달했다.대주주의 지분을 100분의 1로 줄이는 무상감자를 실시해 손실을 떠안았다.무상감자는 자산 변화 없이 주주의 주식 수만 감소시켜 자본금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다만,태영건설에 대한 윤석민 회장의 경영권은 유지됐다.무상감자로 대주주의 태영건설 지분이 대폭 줄었지만,대주주가 태영건설에 지원한 자금 주식으로 전환하는 출자전환이 이 부분을 상쇄됐다.티와이홀딩스 등 대주주가 태영건설에 지원한 자금 7천억 원을 주식으로 전환하면,윤 회장 일가 등 대주주 지분은 현행 41.8%에서 60% 이상이 된다.
태영그룹과 채권단의 줄다리기는 6월 11일 사채권자집회로 사실상 마무리됐다.워크아웃 신청 이후 6개월 만이다.향후 전망은 엇갈린다.태영건설 측은 원활하게 워크아웃 협상이 마무리됐다며 조기졸업을 자신했다.
반면 태영의 워크아웃 개시가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전망도 있다.당장 태영건설의 반포동 PF 사업장은 채권단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정상화 수순에 있는 사업도 결국,마지막 분양의 고비를 넘겨야 한다.정부가 밝힌 국내 전체 PF 부채 규모는 230조 원에 이른다.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태영건설의 부도 위기를 면밀히 복기하고,PF 사업의 구조적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재벌 체제가 만든 한국형 PF
성수동 PF 사업은 태영건설 추락의 결정타였다.2022년 초,태영건설은 한 자산운용사와 손잡고 서울 성수동에 있는 공장부지에 지하 6층,지상 10층 규모의 오피스 빌딩을 짓는 사업을 추진했다.태영건설은 이 사업 추진 이전에도 성수동 오피스 건설 사업에 참여해 이른바 '완판'의 성적을 거둔 적 있었다.당시 언론들은 성수동 일대가 강남을 대체할 상업·오피스 지역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지역의 성장 전망세와 '완판'의 경험은 오히려 독이 됐다.태영이 성수동 사업을 추진한지 2년이 지난 현재,성수동 일대의 오피스·지식산업센터 분양 성적은 이전만 못하다.태영건설 사업 부지 인근에 있는 한 신축 오피스 건물은 지난해 말 준공했지만,여전히 절반 가까이 공실이다.인근 부동산중개업자는 많은 건설업체가 일시에 오피스 건설에 뛰어들면서 공급이 실수요를 웃돈다고 말했다.
태영건설 성수동 사업의 시행사 성수티에스2차PFV는 약 1,700억 원에 사업 부지를 매입하려 했다.평당 1억 5천억 원 수준으로,이전 시세의 2배가 넘는다.인근 부동산중개업자는 입지를 고려할 때 높은 비용이라고 했다.유명 회사와 주요 오피스가 지하철역 인근과 성수동 남쪽 지역에 모여있는데 반해,태영건설이 사들인 부지는 노후 주택이 밀집한 북쪽 지역이라는 것이다.결국 사업이 순항했더라도 분양 단계에서 큰 손실을 피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이 같은 태영건설의 PF 사업이 전국 60개 사업장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금융감독원 공시 등에 따르면,2018년에서 2022년 사이 태영건설의 부동산 사업 관련 보증액은 3조 9,925억 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2022년 말 기준,자기자본의 5배가 넘는 액수다.당장 태영건설의 장부에 부채로 잡히지 않지만,단 하나의 사업장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일시에 거액의 우발부채가 터져 나올 수 있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PF 사업의 우발부채 규모가 커질 수 있었던 배경에 이른바 '한국형 PF'가 있다고 말한다.PF는 담보가 아닌 사업의 미래 가치나 현금 흐름을 보고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 기법을 말한다.
국내 부동산 PF 사업의 경우,브릿지론과 본PF라는 두 단계 대출을 통해 진행된다.브릿지론은 말그대로 공사에 착수하기 전 토지 매입과 인허가를 위해 받는 1단계 대출을,본PF는 기존 브릿지론 상환과 공사 대금을 치르기 위해 받는 2단계 대출을 말한다.이 과정에서 시행사는 사업성 평가,자금조달,분양 등 사업 전반을 주도하고,시공사는 도급공사를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시행사가 개별 사업을 위해 세워진 형식 상의 회사인 경우가 대다수인 국내 건설산업 특성은 이러한 구조를 왜곡시킨다.대출 금융기관은 영세한 시행사 대신 그 사업에 참여하는 시공사,awf즉 건설사의 간판을 먼저 본다.그리고 해당 건설사로 하여금 시행사가 채무 이행을 못했을 경우 채무를 떠안는 보증 계약을 맺도록 요구한다.건설사가 PF 사업 도급공사를 수주할 때마다 보증계약으로 인해 숨은 빚,우발부채가 늘어나는 구조다.
시공사가 사업의 위험 전체를 떠안는 셈이지만,일부 대형 건설사들은 이러한 보증계약을 마다하지 않는다.오히려 동시다발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용하며 이윤을 극대화한다.보증계약은 기업 회계장부에 기록되지 않는 '부외부채'이기 때문에 당장 건설사의 재정이나 자금 흐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게다가 대형 건설사가 나서 시행사의 신용을 보강해 주면,awf사업성이 미심쩍은 사업조차 자금 조달이 쉬워진다.한국형 PF 사업이 처음 도입됐을 당시,업계에서 '천재적 발상'이라는 말이 돌았던 이유다.
일부 건설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간다.시공사의 역할에 머물지 않고 자회사 시행사를 설립하거나 시행사 지분 투자를 통해 사업에 더 깊이 관여한다.대형 건설사가 시공사인 동시에 시행사업 투자자인 격이다.전문가들은 이러한 건설업계 관행으로 인해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건설업계의 안전장치가 풀린 상황이라고 말했다.IMF 사태로 자기신용으로 직접 대출을 받아 건설 사업을 하던 건설사들이 연쇄 도산하자,정부는 위험 분산을 위해 건설사에 대한 대출 규제와 시행·시공 사업 분리 등의 조치를 단행했다.
태영건설은 이러한 한국형 PF 사업의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대표적인 건설사였다.금감원 공시에 따르면,지난해 말 기준 태영건설 57개 PF 사업장 중 38개 사업장은 태영건설의 종속회사나 관련회사가 시행사였다.문제의 성수동 사업에서도 태영건설은 시공사인 동시에 시행사의 지분 33.2%를 가진 투자자였다.
욕망이 키운 빚 폭탄,PF 위기라는 필연
2022년 9월 28일,이른바 '레고랜드 사태'가 터졌다.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관련 채무보증을 불이행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채권 시장은 혼란에 싸였다.지자체가 보증한 PF 사업까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금융권의 자금조달 창구가 막히고 금리가 치솟았다.
건설·부동산 경기도 급락세였다.전쟁 등 외부 충격으로 인해 건축자재비,금리가 오르며 사업성이 악화됐다.자산 가치 급등 이후 급락이 찾아온다는 것은 많은 전문가들이 예견한 일이었다.
한국형 PF는 위기를 심화시켰다.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자금조달에 실패한 시행사가 무너지며 전국의 PF 사업장이 멈춰 섰다.그간 건설사들이 동시다발 PF 사업을 하며 쌓아 올린 우발부채가 '빚 폭탄'으로 돌변했다.보증 계약의 연쇄고리를 타고 부채가 시행사를 넘어 시공사로,금융기관과 경제 전반으로 번졌다.전문가들은 호황기에는 이윤을 낳지만,불황에는 경제 위기를 만드는 한국형 PF의 필연적 결말이라고 했다.
태영건설의 PF 사업장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성수동 사업의 경우,awf토지 매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브릿지론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당초 잡았던 사업 계획보다 1년 이상 지체되고 있었다.자본금이 50억 원에 불과한 시행사는 치솟은 금리를 해결하지 못했다.태영건설이 400억 원 자금을 시행사에 대여해 3개월마다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 만기를 막았지만,끝내 채무 불이행에 이르렀다.
사업장이 성수동 하나였다면 태영건설 자력으로 어떻게든 부채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사업성이 악화되고 있는 것은 성수동 한곳이 아니었다.특히 PF 대출 규모가 큰 부천 오정동 군부대 이전 사업과 마곡 CP4 사업의 지연은 큰 손실을 낳고 있었다.결국 태영건설을 더 이상의 현상 유지가 의미가 없다는 판단하에 성수동 사업장 대출 만기가 다가온 지난해 12월 28일,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워크아웃 막전 막후,작동하지 않는 금융 경고음
취재진은 회계 전문가와 함께 워크아웃 신청 전후로 태영건설의 재무 공시자료를 분석했다.레고랜드 사태와 금리 인상,사업 지연 등으로 우발부채 위험이 시시각각 커지고 있었지만,이에 대한 회계 반영은 적절히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회계 기준에 따르면,건설사는 보증채무 등에 대한 위험을 평가하여 재무제표 본문과 주석에 반영해야 한다.보증 계약과 해당 사업의 위험성을 재무제표 주석에 인식(금융보증부채)하고 그에 따른 충당금(금융지급보증손실)을 장부에 반영해야 한다.하지만 레고랜드 사태 이후인 지난해 1~3분기 태영건설의 분기보고서 공시는 악화되는 PF 사업장의 위험이 적절하게 반영하지 않았다.
태영건설은 이 시기 금융보증부채 항목에 대해 동일한 값을 연이어 신고하고,충당금 성격의 금융지급보증손실을 공란으로 뒀다.2023년 이전까지 지속적으로 변동되던 해당항목 금액이 유독 워크아웃 위기를 앞두고 동일하게 유지되거나 보고되지 않은 것이다.전문가들은 태영건설의 부동산 사업 관련 보증채무가 꾸준히 늘어왔다는 점에 비춰볼 때,PF 사업의 위험이 회계적으로 적절하게 평가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사업이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건설업의 특성상 미래 가치나 위험을 반영하는 합의된 회계 기준은 없다.그렇다고 이 같은 태영건설의 재무 공시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태영건설의 재무 상황에 대한 투자자,수분양자들에게 오인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은 PF 위기로 인해 건설사의 우발부채 문제,사업 위험성 평가가 회계적으로 중요해진 만큼 시급히 우리 실정에 맞는 회계 기준을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태영건설 측은 금융보증부채는 회계기준에 의해 적정하게 기재됐고,금융지급보증손실은 해당 분기 새로 반영된 것이 없어 들어가지 않았다고 답했다.해당 분기에 포함되지 않은 사흥은 이후 공시에 반영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또 레고랜드 사태 등 갑작스러운 외부요인으로 인해 우발채무 위험이 커진 측면이 있다며,조직 개편 등을 통해 향후 PF 사업 문제에 대한 재발 방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크아웃을 앞두고 제 기능을 못한 것은 태영건설의 공시뿐만이 아니다.국내 신용평가사들은 나날이 커지는 건설사들의 우발부채 문제에 대한 여론의 지적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대형 건설사들에게 대해 높은 신용 등급을 매겼다.이로 인해 건설사들은 금융권으로부터 저리로 자금을 조달하며 꾸준히 PF 사업의 위험성을 키웠다.
금융권의 부실한 심사도 PF 위기를 키운 원인이다.PF 사업의 경우,기업과 사업에 대한 전문적인 평가를 근거로 대출 여부를 심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른바 한국형 PF 사업의 경우 이러한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재벌의 간판만으로 대출이 나왔다.사업 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시행사라도 대형 건설사만 끌어오면 보증계약을 토대로 대출을 실행하는 식이다.이러한 신용평가사,금융사의 부실 심사·평가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부른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230조 PF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비단 태영건설 만의 문제가 아니다.230조 원 PF 위기를 푸는 일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기업경영분석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국내 50대 건설사 중 9곳의 PF 차입금 규모가 자신의 자본총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금리과 부동산 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언제든 제2의 태영건설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건설업계의 회계 관행도 PF 위기의 뇌관이다.2018년 PF 사업의 위험 평가를 강화한 새 회계기준이 적용됐을 당시,전문가들은 건설사들의 우발부채 문제가 일시에 제기될 것으로 봤다.하지만 실제 공시 내용은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PF 사업과 우발부채 문제 등에 대해 건설사의 회계적인 평가가 관행적으로 적정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은 건설사 우발부채에 대한 회계 공시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나섰지만 여전히 빈틈이 있다.기업의 독점 정보에 대해서는 여전히 예외를 적용된다. 전문가들은 우발부채 위험이 큰 국내 건설업의 특수한 상황과 투자자·수분양자 권익 보호를 위해 해당 정보들까지 공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이어 PF 위기를 키운 부동산 투기 열풍과 수분양자 피해의 현장을 보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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