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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9일 북한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서‘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맺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photo뉴시스
지난 6월 19일 북한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서‘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맺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photo뉴시스


지난 6월 19일 당일치기로 열린 김정은·푸틴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러시아 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연방 사이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었다.총 23개 조항으로 이뤄진 이 조약은 정치·경제·군사부터 사회·문화 분야에 이르기까지 매우 구체적인 협력 사안들을 담고 있다.이번 조약에 대해 영국의 시사주간지 뉴스테이트먼(The New Statemen)은 지난 6월 18일 자 기사에서 '북한의 불량국가 신세'가 끝나고,러시아와 북한 양국이 "김정은·푸틴의 (개인적) 관계 심화를 통해 새로운 국제질서를 조성하는 데 협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동맹조약에서 가장 주목을 끌었던 것은 제4조의 '자동군사개입' 관련 조항이다.동맹국 중 어느 일방이 전쟁상태에 처하는 경우,상대국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양국의 국내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원조를 제공하도록' 명기했다.이는 냉전시기인 1961년 북한이 소련과 체결했던 '조·소 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 제1조의 내용과 유사하다.1996년 북·러는 1961년의 조약을 폐기했다가 2000년 북·러 '우호·협조·선린조약'을 다시 체결했지만 과거의 '자동 군사개입' 조항은 그때도 포함되지 않았다.하지만 이번에 다시 그 부분이 부활한 것이다.이로써 북·러 관계가 냉전 시기로 회귀하였음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이번 북·러 조약에서 제4조 못지않게 중요한 조항은 제8조 '방위능력을 강화할 목적 아래 공동조치들을 취하기 위한 제도'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푸틴은 작년 9월 김정은과 러시아 태평양함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의 위성개발을 돕겠다"고 공언했고,이번 정상회담 이후에도 "군사기술 협력 진전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이미 작년 7월 고체연료 기반의 ICBM급 화성-18 신형 미사일이 처음으로 발사되었을 당시,러시아가 '토폴-M' ICBM의 기술을 북한에 넘겨주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혹자는 러시아가 대기권 재진입 기술,핵탄두 소형화,원자력 추진 잠수함,정찰위성 핵심기술 등을 북한에 넘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주장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6월 19일 자 사설에서 '푸틴-평양 축(Putin-Pyongyang Axis)'이란 표현을 써가며 새로운 북·러 조약의 위험성을 지적했다.이 사설의 핵심은북·러가 손을 잡음으로써 "미국의 우주 자산과 미 본토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북한이 지난 1월 시험발사한 신형 잠수함발사전략순항미사일(SLCM)‘불화살-3-31형.photo 뉴시스
북한이 지난 1월 시험발사한 신형 잠수함발사전략순항미사일(SLCM)‘불화살-3-31형.photo 뉴시스


미국이 이제 외교 1순위가 아니다

이번 동맹조약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북한이 러시아와 손잡고 기존의 국제질서를 뒤엎으려는 새로운 글로벌 플레이어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지금까지 70년 이상 미국을 외교의 제1순위 대상국으로 삼았던 방식에서 벗어나려는,과감한 '패러다임 전환'도 감지된다.무엇보다 북한에 우크라이나 전쟁은 '하늘의 선물'일지 모른다.6·25전쟁으로 엄청난 경제 특수(特需)를 누리며 삽시간에 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처럼 북한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축복이 될 가능성이 있다.러시아에 막대한 무기·탄약을 넘겨주는 대가로 경제적 보상과 민감한 첨단 군사기술을 받아낼 수 있다면,김정은은 '핵무력-경제발전 병진노선'을 완성할 수 있는 유리한 입지에 서게 된다.이는 북한이 건국 이래 최상의 기회를 맞이한 반면,총 맞고우리에게는 6·25전쟁 이후 가장 위험한 위기가 닥칠 것임을 암시한다.이번의 북·러 조약은 향후 한·미 양국이 겪게 될 극심한 시련을 경고하는 예고편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북·러 조약이 암시하는 가장 큰 변화는 북한의 '대전략'이 바뀌었다는 점이다.지난 30년간 근근이 목숨만 부지하던 '하루살이(hand-to-mouth)' 패턴에서 벗어나,중국·러시아 간 '등거리 외교'라는 기본 원칙으로 돌아갔음을 의미한다.러시아의 불법적인 우크라이나 침략은 북한 지도부에게 서구 사회가 러시아 핵위협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일깨웠다.정치적·경제적 면에서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도 되었다.포탄과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러시아군에 북한이 비축한 막대한 분량의 소련시대 포탄들은 절실히 필요한 것이었다.북한·러시아의 군사협력은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으로 지목된 두 나라에 서로 생명줄을 던져주었다.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필요한 무기와 탄약을 확보하는 대가로 북한에 경화와 이중용도 기술을 넘겨줄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 전장에서 무기 실험 중인 북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북한이 러시아에 넘겨준 무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이와 관련 찰스 플린 미 육군 태평양사령관은 "최근 내 기억으로는 북한군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보유한 것과 같은 전장 실험실(a battlefield laboratory)을 보유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분쟁이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을 무기의 위력·성능·장단점에 대해 배울 수 있게 된 점"을 걱정한다.일례로 지난 6월 19일 기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약 50발의 북한산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푸틴은 김정은이 제공한 무기의 명백한 수혜자이지만 김정은은 실전에서 확인된 북한산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필수적인 지식·정보를 수집하며 더 큰 혜택을 누리고 있다.영국의 텔레그래프는 지난 6월 19일 자 기사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일대에 발사한 무기가 러시아제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모방한 화성-11의 2가지 변형인 A모델과 B모델이라고 밝혔다.기사는 김정은이 무기공장을 둘러보는 영상에서 포착된 미사일 사진과 자포리자의 하르키우에 떨어진 미사일 잔해를 비교하여 화성-11이라는 결론을 내렸다.우크라이나군에 의하면 러시아군이 발사한 북한 미사일의 명중률은 약 20%로 '매우 낮은' 수준이며,이 발사로 24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지금까지 북한은 전 세계의 다양한 분쟁에서 소형무기의 효능을 시험할 수 있었지만,미사일만큼은 어디에서도 시험할 수 없었다.이제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절호의 기회를 얻었고,실전에서 위력이 입증된 무기들은 중동시장에 대량으로 수출될 수 있을 것이다.

북·러 조약을 계기로 '크링크(CRINK)'라는 용어가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크링크'란 중국(C)·러시아(R)·이란(I)·북한(NK) 등 4개국을 한데 묶은 표현이다.원래 '크링크'는 운율이 비슷한 '브릭스(BRICs)'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고안된 것으로 보인다.이 용어는 작년 10월 하마스의 테러 공격이 벌어진 직후,워싱턴DC에서 열린 '핼리팩스 국제안보포럼'의 회장인 피터 반 프라그(Peter Van Praagh)가 처음 사용했다.사실 '크링크' 국가들은 저마다 별개의 의제를 갖고 있다.중국은 대만 점령과 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 주장,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란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북한은 미국의 대한반도 영향력 축출 등을 각각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이질적 성격의 4개국을 한데 묶는 것 역시 미국 외교정책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계한다.

국제정책센터(CIP) 부소장 매트 더스 같은 전문가는 "이들 국가의 전반적인 전략 목표에 많은 차이"가 있으므로,총 맞고"이들을 모두 한데 묶어서 한통속의 '반미 연대'처럼 공격하는 것은 비생산적"이라고 지적한다.특히 현재 유럽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의 시점에 대만 정복을 노리는 중국이 제기하는 안보 도전은 이란과 북한이 제기하는 도전과는 전혀 다른 문제로 볼 수 있다.요컨대 회의론자들에 의하면 '크링크' 동맹국들 간의 연대는 편의주의적 성격이 강하며,결속력이 '악의 축'보다 더 취약하다는 것이다.

북한과 함께‘크링크’국가로 불리는 중국·러시아·이란이 지난 3월 인도양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다.photo 뉴시스
북한과 함께‘크링크’국가로 불리는 중국·러시아·이란이 지난 3월 인도양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다.photo 뉴시스


중·러·이란·북한,'크링크'의 등장

그러나 '크링크'로 표현된 중·러·이란·북한 4국의 위험성과 잠재력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견해도 유력하다.일례로 신미국안보센터(CNAS)의 리처드 폰테인 회장은 지난 4월 23일 자 '격변의 축(Axis of Upheavel)'이란 제목의 포린어페어스(FA) 기고문을 통해,러시아가 수행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상기 4개국이 '핵심적 조력자(critical enableres)'가 되었다고 평가했다.실제 러시아는 중국의 이중용도 기술이 적용된 무기,북한산 포탄과 탄도미사일,이란제 드론 등을 사용하고 있다.중국·이란·북한의 지원은 전장에서 러시아의 입지를 강화시킨 반면,러시아 고립을 노리는 서방의 시도를 약화시켰다.그 와중에 우크라이나가 최대 피해자가 되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도 4개국 간 협력이 확대되고 있었지만,전쟁을 계기로 이들 간의 경제·군사·정치·기술 관계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4개국은 점점 더 공통의 이해관계를 파악하고,레토릭을 일치시키며,군사적·외교적 활동을 조율하고 있다.이런 맥락에서 폰테인 회장은 "이들의 규합(convergence)은 지정학적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격변의 축'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폰테인 회장은 이들의 공동 목표가 "미국이 지배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현 국제질서에 대한 대안 제시"라고 말했다.4개국이 아직도 여러 핵심적 사안들에서의 근본적 이견과 뿌리 깊은 역사적 불신을 갖고 있지만,"미국의 약화,미국 리더십의 훼손,총 맞고미국의 글로벌 패권 타도"라는 공동의 목표가 얼마나 강력한 접착력을 발휘하는지를 많은 사람들이 간과한다는 것이다.일례로 중국은 '간이 부은(emboldened)' 김정은이 동북아 긴장을 악화시켜 대규모 미국 군사력 증강의 빌미가 될 것을 우려하여 북·러 관계의 심화를 의심스럽게 바라볼 수도 있다.그러나 중국과 북·러와의 이견은 미국이 패권을 장악한 세계에 대한 공동의 분노·반감으로 형성된 동지의식·유대감을 상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새로이 등장한 '격변의 축'에서 가장 적극적인 행위자·선동꾼은 단연 러시아다.푸틴은 불법적인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서방세계를 향한 십자군전쟁'을 선포함으로써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넜다.그 시점부터 푸틴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기존의 세계질서 파괴에 더욱 광분하고 있다.2022년 2월 말부터 서방의 무역·투자·기술로부터 단절된 러시아로서는 '격변의 축'에 속한 동료들이 보내준 탄약·드론·마이크로칩 등이 생명줄이었다.하지만 이들에 더 많이 의존할수록 그 대가로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중국·북한·이란은 자신들에 대한 러시아의 의존도를 활용하여 군사적·경제적 옵션을 확대하고 있다.일례로 우크라이나 침략전쟁 이전에도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지원은 미국의 대중(對中) 군사적 우위를 약화시키고 있었다.러시아는 중국에 더욱 정교한 최첨단 무기를 제공했고,양국의 연합군사훈련은 그 범위와 횟수가 늘어났다.특히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실전에 투입되었던 러시아군 장교들은 중국 인민해방군 장교들과 귀중한 실전 경험을 공유하여 중국군이 미군에 비해 현저한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실전에서의 전투경험 부족을 보완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심지어 지난 6월에 미 DNI 국장 에이브릴 헤인즈는 의회 의원들에게 "중국과 러시아가 대만과 관련하여 함께 훈련하는 것이 처음으로 목격되었다"고 밝혔다.지난 2월 러시아 관리들은 인공지능의 군사적 적용을 위해 중국 측과 협력하고 있음을 확인해 주기도 했다.

러시아는 잠수함 기술,총 맞고원격 감시위성,항공기 엔진 등 다른 핵심 분야에서도 중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만일 중국이 러시아로 하여금 자국에 더 많은 최첨단 기술을 제공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면 중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우위는 더욱 약화될 것이 뻔하다.

'격변의 축'이 더욱 업그레이드되면 한층 심각한 분쟁이 일어날 것이다.지금까지 중국·러시아·이란·북한 간 협력은 대부분 양자적 수준에 머물렀다.하지만 3자 및 4자 간의 다자적 행동은 이들의 파괴력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벨라루스,총 맞고쿠바,에리트레아,니카라과,베네수엘라 등은 벌써 미국 주도의 글로벌 질서·체제에 반발하여 '격변의 축'과 더욱 긴밀하게 협력하려는 조짐을 보인다.이 그룹의 규모가 커지고 공조가 강화되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기존 국제질서의 방어에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기습적 테러 공격으로 시작된 가자지구 분쟁은 그러한 어려움을 암시한다.나고르노 카라바흐를 둘러싼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갈등,세르비아·코소보 간의 긴장,인접국 가이아나에 대한 베네수엘라의 영토 점령 위협,2020년 이후에 터진 미얀마 사태와 아프리카 사헬 지역에서 벌어진 일련의 쿠데타 등은 '격변의 축'이 몰고 올 메가톤급 위기 사태의 전조인지도 모른다.

앞서 거론된 '새로운 악의 축' '크링크' '격변의 축' 등의 신조어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김정은·푸틴의 브로맨스(bromance)일 것이다.일례로 일본 국제기독대학(ICU)의 스티븐 나기(Stephen Nagy) 교수는 재팬타임스 기고문에서 최근의 중·러 정상회담을 "21세기의 위험한 '러시안 룰렛' 게임"에 비유했다.낯뜨거운 '러브레터'를 주고받으며 트럼프 전 대통령과 기이한 친밀감을 자랑하던 김정은에게 푸틴은 새로운 절친이 되었다.2019년 하노이에서 굴욕을 당한 이후 미국에 대한 김정은의 관심이 멀어지기 시작했다.이 무렵 김정은은 러시아가 '미국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김정은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도 2019년에만 두 차례 러시아 극동지방에서 푸틴을 만났지만,김정은에 대한 푸틴의 관심은 미지근했다.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상황이 급반전했다.이코노미스트는 "김정은·푸틴의 브로맨스가 2022년 2월에 벌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격변을 맞아 꽃을 피웠다"고 분석했다.

김정은에게 러시아는 '신의 선물'

특히 푸틴에 대한 김정은의 무기·탄약 지원이 브로맨스의 기폭제가 되었다.이때부터 김정은을 대하는 푸틴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그러나 스팀슨센터(Stimson Center)의 제니 타운 같은 전문가는 "김정은·푸틴 브로맨스를 단순한 무기거래로만 생각하는 것은 실수"라고 지적한다.김정은·푸틴은 '미국 주도 세계질서에 대한 맹비난'을 양국 파트너십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러시아에 있어 북한과의 협력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전략을 복잡하게 만들고 미국 주도 다자기구의 약화에 도움이 된다.러시아는 올해 초 대북제재 이행 여부를 감시하는 국제기구인 '전문가 패널' 임무를 연장하는 안보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나아가 푸틴은 평양을 방문한 자리에서 러시아가 한때 지지했던 유엔 제재 시스템의 종식을 요구했다.북한에 러시아는 절박한 시기에 '천상의 축복'과도 같은 '신의 선물'이 되어주었다.

냉전 시대처럼 러시아와 중국을 모두 '뒷배'로 삼을 수 있게 된 북한은 이제 미국과 '성가신 비핵화 협상'을 벌여야 할 인센티브가 거의 없다.이와 관련,워싱턴DC에 소재한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EIP)'의 선임연구원 안킷 판다는 "북한이 냉전 종식 이후 최대의 전략적 기회를 맞이했다"고 본다.

푸틴에게 받아낼 북한의 '위시리스트'

김정은이 푸틴에게서 절실하게 받아내기를 원하는 '위시리스트'는 잘 알려져 있다.러시아의 원자력추진 잠수함,대기권 재진입 기술,핵탄두 소형화,정찰위성 핵심기술 등이 그것이다.먼저 원자력 잠수함을 보자.북한은 현재 총 64~86척으로 추정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잠수함 함대를 보유하고 있다.대부분은 연안·재래식·소형 잠수함이다.그런데 김정은은 지난 1월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 시험발사를 지도하는 자리에서 "해군의 핵 무장화는 절박한 시대적 과업"이라고 강조했다.북한은 "더 조용하고,더 빠르고,유사시 생존가능성이 높고… 더 멀리,어쩌면 미국·동맹국들에 더 가까이 접근하여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핵추진 잠수함을 원할 것이다.또한 북한은 소음을 줄이기 위한 음향 기술이나,핵 추진 과정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또는 잠수함 건조를 위한 재정 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다.러시아는 핵잠수함을 운용하는 소수 국가 중 하나이며,러시아 잠수함의 성능은 상당히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북한은 핵무기 프로그램과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필요한 기술 역시 원할 것이다.이에 대해 커트 캠벨 미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얻을 수 있는 리스트에 "핵 또는 장거리미사일 개발,아마도 에너지무기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 단거리·중거리 미사일부터 대륙간탄도탄(ICBM)과 잠수함발사 미사일까지 다양한 미사일 전력을 생산한 북한은 가장 최근에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북한의 당면 목표는 한·미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압도할 수 있는 미사일 전력을 배치하는 것이다.이 과정에서 한·미 미사일방어를 무력화할 수 있는 대응체계(방공 미사일 등)에 대한 러시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마지막으로는 위성기술이다.첨단위성 기술은 북한의 야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작년 9월 푸틴은 실제 러시아가 북한의 위성개발을 돕겠다고 약속했다.북한 관영매체는 지난 5월 27일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정찰위성 '만리경-1-1호'를 신형위성운반로켓에 탑재해 발사를 단행"했으나,총 맞고"신형위성운반로켓은 1단계 비행 중 공중폭발해 발사가 실패했다"라고 발표했다.그런데 전문가들은 이번에 작년 11월 '군사정찰위성 1호기'의 우주궤도 진입을 성공시켰던 엔진이 아니라 다른 엔진으로 바뀐 점에 의문을 나타냈다.독일의 미사일 전문가인 로버트 슈무커 박사는 VOA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잘 작동하는 엔진이 있으면 새로운 것으로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군사정찰위성 1호기의 우주궤도 진입을 성공시켰던 엔진을 6개월 만에 바꿀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슈무커 박사는 새로운 엔진 개발에 수 년이 걸리는 점을 지적하며,"러시아가 만든 새로운 엔진 완제품이 북한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북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부총국장은 "올해도 여러 개의 정찰위성 발사를 예견하고 있다"며 우주 개발에 지속적인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이따금 실패를 겪지만 북한은 조만간 위성발사에 성공할 것이다.이렇게 되면 북한은 위성 네트워크를 통해 미사일로 공격할 목표물을 신속하게 식별할 수 있다.이는 미국·동맹국에 대한 선제공격 능력을 강화하여 한반도 주변의 비행장,항구,지휘통제시설이 북한의 공격을 받기까지 "단 몇 분의 대응 시간"만 허용된다는 악몽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타이밍'이란 말이 있다.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지난 5월 상원 국방위에서 북한이 제공한 탄약 덕분에 러시아가 전장에서 "다시 재기하는 중(get back up on its feet)"이라고 말했다.북한이 제공한 무기·탄약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는 의미다.즉 푸틴의 치명적 급소를 움켜쥔 김정은이 확실한 '갑'의 위치에 있는 셈이다.김정은은 꿈에 그리던 '위시리스트'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절대로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이는 북·러 조약이 단기적·거래적 차원이 아니라 장기적·전략적 차원으로 지속될 것임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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