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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조응순 선생 조카 조순호씨 인터뷰
3년전 본보 최초 단지동맹 독립운동가 후손 조명
황병길 대장 이어… 두 번째 조응순 가문 만남
안중근 의사와 '단지동맹'을 맺었던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2021년 4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당시 경기일보는 기획 기사 <골목 안 단지동맹>을 통해 황병길 대장의 외손자를 소개했다.
3년이 지난 올해 7월,두 번째 '단지동맹 가문'이 나타났다.이번엔 조응순 선생의 조카다.제79주년 광복절을 맞아 단지회(斷指會)가 혈서로 쓴 대한독립의 뜻을 기리며 <다시,마이론 보아두골목 안 단지동맹>을 전한다.편집자주
지난 2021년 안산에서 황병길 대장의 외손자 박동일웅 씨(경기일보 2021년 4월12일자 1,마이론 보아두3면)를 만났다.단지회 후손이 직접 인터뷰에 참여한 건 국내 최초였다.감춰왔던 가족사를 공개한 이유는 단 하나,'나 같은 사람을 또 만나보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안양에 살다가 충북 단양으로 이사한 조순호 ㈜강농 연구소장은 꼬박 3년이 지난 올해 4월 저 인터뷰 기사를 처음 접했다.그리고 '마침내 내게도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 굵직한 정보부터 요약하자면 조순호 씨의 둘째큰아버지는 독립운동가 조응순 선생이다.
조응순 선생은 201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당시 국가보훈처(현재 국가보훈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대표 공적은 '이등박문(伊藤博文) 처단에 일조'로 축약된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조응순 선생은 안중근 의사와 함께 왼손 무명지 첫마디를 잘라 피로 대한독립을 이루자는 '단지동맹'을 맺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는 데 일조한 인물로 서훈됐다는 뜻이다.
다시 조순호 씨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1955년생 조순호 씨에게도 박동일웅 씨처럼 '비밀의 가족사'가 있었다.그 사연 속에는 할아버지 조태선(1850년대 중반생 추정),큰아버지 조응선(1871년생 추정),둘째큰아버지 조응순(1885년생),본인의 아버지 조응율(1905년생) 등이 나온다.
"올해 4월 우연히 경기일보 기사를 봤어요.단지동맹 후손이 또 다른 단지동맹 가족들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내용이었죠.그게 저희 같더라고요.저도 모르고 살다가 1974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말해줘서 안 이야기에요."
첫마디를 떼자마자 조순호 씨는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그동안 말할 사람도,말할 곳도 없었는데,이제야 풀어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저희 아버지(조응율)는 광산 책임자로 일했어요.연세가 드시면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몸이 약해지시다가 1974년,제가 갓 스무 살쯤 됐을 때 회사를 다녀오자마자 부르시더니 '이 얘기를 안 하면 세상에 묻힐 테니 한 마디는 해놓고 가겠다'며 '다락에서 항아리를 가져오너라' 하더라고요."
항아리에는 아버지가 광산을 운영했다는 서류,그리고 아버지가 5~6살쯤 됐을 때 찍었던 오래된 가족 사진 등이 있었다.조순호 씨가 의아해하자 아버지는 사흘에 걸쳐 차근차근 설명했다.
"할아버지(조태선)는 아버지를 고모네에 맡기고 만주로 가셨대요.그 전에 아버지 형제누이들과 가족 사진을 찍었다고 했어요.제가 봤던 사진 가운데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앉아있었죠.주변에 서있던 큰아버지(조응선)와 둘째큰아버지(조응순)는 양복을,형수들은 한복을,꼬마였던 저희 아버지는 하얀 저고리를 입었어요.그 흑백 사진이 액자로 있었어요."
생전 조응율 씨의 전언에 의하면,큰형님이던 조응선은 의병 활동을 하던 중 아버지 조태선에 의해 연해주로 보내졌다.당시 이 집안은 만주 외에도 원산,함흥,마이론 보아두황해 일대에서 인삼밭을 운영하며 상당한 부를 축적했는데,조태선은 인삼 장사로 생긴 수익을 전부 의병 활동에 전달했다고 한다.
이때‘인삼밭 독립자금’을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 등으로 옮긴 사람이 둘째형님 조응순이다.이 과정에서 안중근 의사를 만난 것으로 추정된다.그 후 조응순은 안중근과 형제처럼 지내며 1908년 왼손 넷째 손가락 첫 관절을 잘라 총 12명과 '단지동맹'을 맺는다.
그 뒤 블라디보스토크 한국독립단 결성(1920년),마이론 보아두하얼빈 한국의용군 결사대 결성(1921년) 등 한층 적극적인 독립 운동에 참여한다.실제로 이 결사동지 명단은 단지동맹기념비(斷指同盟紀念碑·러시아 크라스키노)에도 새겨져 있다.
“할아버지는 '나는 인삼 장사하는 사람이다' 하는 척만 했대요.절대 표면에 나서면 안 되고,은밀하고 철저하게 나서야 한다고 했어요.그래야 무사히 돈을 보낼 수 있으니까요.그 돈은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를 제공하고 식사를 마련하는 데 썼다고 했어요.그 은신처가 이북 땅인지,중국 땅인지,러시아 땅인지는 모르고 그저‘국경 옆’이라고만 알아요.그런데 스무 살이던 제가 이런 얘기를 들어봤자 뭘 제대로 알았겠나요.특히 이 얘기를 접한 1970년대 시대상황상 '공산당 때려잡자는데 괜히 우리 가족이 공산당으로 몰려 핍박 받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컸죠.그래도 아버지가 3~4일을 붙잡고 유언처럼 얘기하시니 가만히 들었던 거고요."
조순호 씨는 또다시 울컥하며 숨을 천천히 다듬었다.
"큰아버지와 둘째큰아버지는 '형제가 같이 있으면 위험하다'고 따로 다녔대요.여러 개의 이름을 바꿔 쓰고 다니며 가족과도 연락이 안 됐고요.저희 아버지(조응율)도 세월이 흘러 형님들을 찾아 나섰지만 동네마다 다른 이름을 썼던지라 도통 찾을 수가 없었대요.한참 지나 만주에서였나 둘째형님(조응순)을 힘겹게 만났는데 그때 그러시더랍니다.'나는 가슴에 태극기를 묻었으니 나를 다신 찾지 말아라'라고.그렇게 두어 번 보고 이후로는 못 봤대요."
할아버지 조태선부터 막내아들에 가까운 조응율에 이르기까지,모두가 독립을 꿈꾸며 항일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조응순을 제외하면 나라에서 인정한 독립운동유공자는 아니다.그도 그럴 것이 사회적으로 알려진 이름과 가족이 쓰던 이름이 다르다.가족끼리 조응순은‘조응택’으로,마이론 보아두조응율은‘조응열’로 불렸다.그만큼 가정 안에서도 비밀의 독립운동이 이어졌다.이 집안‘다락 항아리’속에 이에 대한 자료들이 있었다.
조순호 씨가 아버지로부터 이 얘기를 듣고 난 3년 후 1977년 7월8일.비극이 벌어졌다.안양 대홍수로 모든 것을 잃었을 때다.
“할아버지,큰아버지,둘째큰아버지,저희 아버지가 고이고이 모셔오던 독립 및 가족 자료들이 수해 때문에 전부 떠내려갔어요.그 대홍수로 저는 어머니를 잃었고 집도 떠나보낸 채 안양을 떠나 단양으로 왔습니다.저희 가족만의 이야기니까 지금은 증거라고 할 게 아무것도 없죠"라던 조순호 씨는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
“다만 큰아버지(조응선)와 둘째큰아버지(조응순)의 사망 시기가 아직 불분명한데 저는 아버지께 확실히 들었습니다.형제들끼리 1938년에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셨어요.큰아버지는 그 해 카자흐스탄에서,둘째큰아버지는 해방(광복·1945년) 7~8년 전쯤 돌아가셨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했습니다”라던 조 씨는 “근데 이걸 개인이 어떻게 알아봐요,국가가 도와줘야지.저희 가족에 대한 것 좀 알고 싶습니다”라며 기나긴 시간 소리 내 울고 눈물을 닦았다.
끝으로 그는 말했다.
“저는‘지금이라도 독립운동가 집안임을 인정해달라‘나라에서 보상을 해달라’이런 차원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둘째큰아버지가 건국훈장을 받을 때에도 저희는 전혀 몰랐고 연락받은 것도 당연히 없었어요.가족이라는 물증이랄 게 없으니까요.단지 내년에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20년이 되는 해라 군포지역에 가족 비(碑)를 세우려다가 문득 예전 얘기가 생각나서‘검색’하다보니 처음 알게 된 거에요.”
그러면서 목소리에 힘을 싣고 강조했다.
“우리 가족들이 이 땅에 묻힐 자격이 있잖아요.다른‘단지동맹’가족들도 나름의 얘기가 있을 거고요.그걸 하나하나 취합하다 보면 독립운동 관련한 여러 정보가 나올 거에요.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너라도 기억하고 있으면 훗날 말할 기회가 주어질 거다’하셨는데 저는 지금이 그 기회 같아요.용기를 낸 만큼 다른 분들과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저희 외에 다른 단지동맹 후손이 있다면 어디든 좋으니 꼭 한 번 뵙고 싶어요.”
한편,마이론 보아두경기일보는 조순호 씨와 황병길 대장 외손자 간의 만남을 시도했으나 수개월간 연락이 닿지 않았다.현재 외손자는 안산에서 시흥으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광복회 경기도지부 안산시지회를 통해 추후 상호 간의 연결을 시도할 계획이다.
광복회 경기도지부에 등록된 생존지사는 1명,유족은 1천768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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