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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24) 사이보그 비둘기 사건 1 시청 옥상의 비둘기.한겨레 자료사진.
“스페인에 사는 비둘기가 한국으로 이민오고 있습니다.그렇잖아도 비둘기 똥 때문에 도시가 엉망인데,이게 무슨 말이랍니까?당장 조사해주세요!” - 제보자‘한민족 평화의 비둘기’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은 곧바로 현장 조사에 들어갔어요.서울에서 비둘기가 많이 모인다는 남산공원,두산 엘지여의도공원을 찾아 헤맸지요‘구구구’하던 비둘기들은‘스페인 비둘기’이야기를 듣자‘그게 뭥미’하는 표정을 지었어요.
서울-오사카 비둘기 경주하던 시절
조사반은 한때 서울시청 옥상에 살며 서울올림픽 개막식에도 나갔다는 비둘기계의 대부‘호둘기’의 후손인‘뼈둘기’를 찾아갔어요.미국 백악관의 비둘기파와도 사돈 관계를 맺었던 뼈대 깊은 가문에서 자란 뼈둘기는 서울에서‘모든 비둘기 문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었죠.
“암,그렇고말고.우리 사돈은 맹금류인 매와도 맞장을 뜨는 훌륭한 비둘기들이었지.그나저나,비둘기가 스페인에서 날아온다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우리가 운영하는 피전피디아에 따르면,1931년 프랑스 아라스에서 베트남 사이공까지 왔다갔다 한 비둘기가 있어.자그마치 24일 동안 1만1600킬로미터를 비행한 거지.”
왓슨 요원이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믿기지 않는데요.”
“대단한 사례지.인간과 함께하는‘경주용 비둘기’가 수백~수천킬로미터를 비행하는 건 아주 드문 일은 아니라네.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만 해도 목포 유달산에서 서울까지,서울에서 오사카까지 비둘기 경주가 열렸어.어쨌든 스페인에서 한국까지 왔다 하더라도,두산 엘지인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건 사실일세.”
“제보자가 다른 비둘기를 보고 착각한 건 아닐까요?”
홈스 반장이 그럴 듯한 의문을 제기하자,왓슨이‘맞다’는 듯 손을 튕겼습니다.한국에 사는 비둘기가 우리가 공원에서 보는 집비둘기가 전부는 아니거든요.
먼저,도시에서 흔한 집비둘기(학명 Columba livia domestica)가 있죠.공원이나 광장에서 떼로 다닙니다.
반면 토종 비둘기도 있어요.산비둘기라고도 불리는 멧비둘기(Streptopelia orientalis)가 대표적입니다.얼핏 보면 집비둘기와 비슷하게 생겼는데,목 옆에 회색 바탕의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게 특징입니다.이 텃새는 무리지어 다니지 않고 동네 야산이나 공원에서 따로 다니는 경우가 많죠.
양비둘기(낭비둘기·Columba rupestris Pallas)도 있어요.서양에서 와서 양비둘기가 아니라 절벽이나 굴에 둥지(낭)를 지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어요.경기 연천의 비둘기낭 폭포애 수백 마리의 비둘기 둥지가 있었다고 하죠.지금은 전남 구례 화엄사와 고흥,경기 연천 등지에 140여 마리만 남은 멸종위기종(2급)이랍니다.옛날에는 전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번식력이 뛰어난 집비둘기와 교잡하고 경쟁에서 밀려났어요.
그리고 온몸이 까치처럼 검은빛을 띤 흑비둘기(Columba janthina Temminck)가 있어요.천연기념물 215호로 경북 울릉도와 제주 추자면 사수도와 무인도에 사는 덩치 큰 비둘기죠.
비행기를 타고 온 스페인 비둘기
조사반은 탐문을 계속했어요.하지만,모이 주워 먹느라 바쁜 비둘기들한테 번번히 퇴짜를 맞았지요.
“나야말로 스페인에 가고 싶군.바르셀로나 성가족성당은 그늘이 많아 둥지 치기도 좋다던데.”
“난 산비둘기야,집비둘기한테 물어봐.”
“난 한국 비둘기야.다른 나라 비둘기한테 물어봐.아!맞다.강남 자라 매장 앞에서 스페인 비둘기를 봤어!”
조사반은 곧장 한강을 넘어 강남으로 달려갔습니다.과연 자라 쇼윈도 앞에서 비둘기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혹시 스페인에서 오셨어요?”
자라 매장 앞에서 자고 있던 비둘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듯,날개를 퍼득거리며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아,우리는 이민단속반이 아닙니다.걱정 마세요.”
비둘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죠.
“네.우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왔어요.향수병 때문에 스페인 패션 브랜드 자라 매장 앞에 와 있어요.바르셀로나에는 먹이 주던 사람도 참 많았는데.한국은 참 매정하네요.”
스페인 비둘기는 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제가 스페인에서 여기까지 날아왔다고요?경주용 비둘기가 아니면 그렇게 귀소본능을 정확히 발휘해 먼 거리를 찾아갈 수 없어요.우리는 거리의 보잘 것 없는 청소부일 뿐일 걸요.사실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왔어요.비싼 카나리아인 양 온몸에 물감을 칠하고 비행기 화물칸을 탔죠.”
“왜 한국에 온 거죠?”
“어느날‘진짜동물해방전선’(Real ALF) 소속이라는 젊은 남성이 바르셀로나에 나타났어요.그는 인간이 몰래 불임약을 먹여 전 세계 비둘기 종을 전멸할 거라고 했어요.일단 안전한 한국으로 피하라고 했죠.서울과 부산의 공원에는 비둘기 모이 주는 착한 사람이 많다고…”
시간이 없었습니다.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은 그날 밤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7월8일에 이어집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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