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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시설로 취급받던 화장장 유치에 일곱 마을이 뛰어들었다.지역 소멸 시대,화장장마저‘매력적인 랜드마크’로 여겨지게 된 것일까?유치전에 뛰어든 포항시 청하면 하대리와 동해면 중산리,두 마을을 각각 찾았다.
알록달록한 가발을 쓴 어르신들이 현수막을 들고 서 있다.현수막에는‘신세대 추모공원은 청하가 딱이야’우리는 청하의 추모공원에 묻히고 싶어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경북 포항시 청하면 하대리 김유태 이장(60)이 보여준 사진 속 주민들의 모습이다.지난 3월22일‘포항시 추모공원 건립 추진위원회’심사위원단의 방문을 맞이해 주민들이 마련한 환영 인사 장면이었다.이곳 하대리는 화장장,아니‘신세대 추모공원’유치에 앞장서고 있는 마을이다.
지난해 6월,포항시는 화장 시설과 봉안당(납골당),장례식장,유택동산(유골을 뿌리는 곳) 등을 포함한‘포항시 추모공원’건립 부지 선정을 위해 주민 공모를 실시했다.전체 부지 33만㎡(10만 평)인 추모공원에서 전체 부지의 80%(약 26만㎡)는 산책로와 문화공원·전시관으로 이용하고 20%(약 7만㎡)는 장례시설 부지로 쓰일 예정이다.하대리 마을 주민들은 이 공간을‘신세대 추모공원’이라고 표현한다.그간 혐오시설로 취급받아온 화장장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공간으로 받아들이고 유치를 희망하는 것이다.
하대리뿐만 아니다.포항시 내 일곱 마을이 화장장 유치전에 참여했다.이번이 2차 공모였다.2021년 10월 1차 공모 때는 단 한 곳도 신청하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지역 소멸 시대,혐오시설로 취급받던 화장장마저‘매력적인 랜드마크’로 여겨지게 된 것일까?5월14일,〈시사IN〉 취재진은 화장장 유치전에 뛰어든 포항시 청하면 하대리와 동해면 중산리,두 마을을 찾았다.
청하면 하대리로 진입하는 농로는 여느 초여름 시골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모내기 준비가 한창이라 물이 찬 논이 마을 초입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하대리에는 80가구가 산다.김유태 이장은 만약 동네에 추모공원이 들어선다면 논밭 너머 뒷산 근처가 부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인근 농공단지에서 차로 1분 거리,마을회관에서는 6분 거리였다.김 이장은 화장장 예상 부지가 마을과 가깝지만 주민들이 대부분 고령이라 장례시설이 가까이 있는 것에 거부감이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다.무엇보다‘이거라도 안 하면 10년 후에 하대리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위기감을 대부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추모공원이 들어서면 해당 마을에 돌아가는 주민지원기금이 40억원이다.30년 동안 화장시설 사용료의 20%도 받는다.개인이나 가구에 현금으로 나눠주는 돈은 아니지만‘마을 복지‘마을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다.상하수도 매립,태양광 패널 설치,도로정비 같은 숙원사업뿐만 아니라 각종 수익사업도 할 수 있다.예컨대 주민지원기금으로 상가,숙박시설,색색티지물류창고 등을 사들여 그 수익을 마을 복지사업에 쓸 수도 있다.경로잔치나 마을 행사,단체여행 등도‘복지사업’에 포함된다.주민들이 영농법인을 만들어 운영할 수도 있고,색색티지자체적으로 마을 주민에게 출산지원금을 지급할 수도 있다.
인근 마을도 혜택을 받는다.부지로 선정된 마을이 포함된 읍면에도 기금 80억원과 주민 편익·숙원 사업에 쓸 45억원이 지급된다.게다가 포항시는 지원금 때문에 생기는 마을 간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종 부지로 선정되지 않더라도 1차 서류 심사를 통과한 마을이라면 3억~5억원 규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다.포항시 노인복지과 관계자는 마을 일곱 곳이 화장장 유치전에 뛰어든 배경이 지원금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했다.다른 지자체의 예를 봐도 그렇다.지원금을 내걸었다고 무조건 유치 경쟁이 벌어지지는 않는다.지난 2월,경기 양평군은 2030년 개장을 목표로 30만㎡ 규모의 화장시설 건립을 추진했다.시설이 들어서는 마을에는 최대 60억원,해당 읍면에는 최대 30억원 규모의 주민지원기금과 화장시설 내 부대시설 위탁운영 혜택 등을 내걸었다.하지만 응모한 마을이 한 곳도 없어,현재 재공모 중이다.
반면 같은 시기에 화장시설 부지 공모를 진행한 경남 거창군은 다른 결과가 나왔다.3만㎡ 규모의 화장시설 건립을 위한 후보지 공모에서 마을 아홉 곳이 유치 경쟁을 벌였다.거창군은 인센티브뿐만 아니라‘주민 설득’이 중요했다고 설명한다.지난해 화장시설 건립 후보지를 공개 모집했으나 주민들의 반발로 추진이 무산된 이후‘공원 같은 장례시설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우고 주민들을 만나기 시작했다.올해 3월부터 마을주민·유치위원회·이장단 등을 대상으로 13차례에 걸쳐 설명회를 이어갔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체감해오던 불편함과 행정의 절실함이 통했다.실제 경남 거창군의 경우,색색티지지역에 화장장이 없어 한 시간 거리인 진주나 사천,색색티지대구 등에서‘원정 화장’을 해야 했다.타 지역 주민이다 보니 화장장이 있는 지역의 주민보다 6~10배 비싼 이용 요금을 내야 했다.주민들이 시간과 비용 부담을 계속 체감하고 있었던 것이다.화장장은 기피 시설이 아니라 고령화된 지역에 필수 시설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포항시 동해면 추모공원유치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허남도 공동위원장(66) 역시 이 점을 강조했다.“쓰레기매립장이 들어온다?나는 그건 반대다.다른 지역 사람들을 위해서 이곳 환경을 희생해야 되는 것 아닌가.그러면 명분이 없다.추모공원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다른 혐오시설과 하나로 묶이면 안 된다.”
동해면 중산리에서 70년 토박이로 살아온 서정국 이장(70)은‘우리를 위한 추모공원’이라는 말에 중의적인 뜻이 있다고 설명했다‘우리 주민이 사용하는’추모공원이자‘우리 마을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추모공원이라는 의미다.“이곳 중산리는 원래 40가구 정도가 살았다.그런데 산업단지가 들어서게 되자 주민들이 갖고 있던 땅을 부지로 팔아야 했고,그렇게 다들 마을을 떠났다.이제 고작 10가구가 남아 있다.추모공원은 이런 우리 마을을 살릴 마지막 희망이다.”
동해면 중산리는 여느 시골 마을과 풍경이 다르다.마을 입구 팔각정에 앉으면 논밭 대신 대규모로 조성된 이차전지 중심의‘포항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블루밸리 산업단지)’건물이 눈앞에 펼쳐진다.그 앞에는 공장 주차장을 가득 채우고도 감당하지 못한 직원들의 자가용이 도로 갓길에 빼곡히 세워져 있었다.
2009년 착공된 블루밸리 산업단지는 약 29만㎡ 규모의 1차 단지가 모두 준공돼 운영되고 있다.현재는 2025년 완공을 목표로 2차 단지도 공사 중이다.미래 먹거리인 산업단지가 마을에 있는데도 추모공원을 설립하려는 이유를 묻자,색색티지서정국 이장은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지역 주민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으냐”라고 되물었다.이차전지 핵심 소재를 생산하는 첨단 산업단지가 들어선다고 해서 인근 마을의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는 의미였다.
2007년 포항시 동해면 중산리로 귀촌한 오진말씨(73)는 산업단지가 들어서기 전 마을에서 열린 주민간담회를 생생히 기억했다.“공장 측에서는 지역에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고 계속 강조했지만,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경비라도 시켜달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답도 듣지 못했다.” 직접 일자리는 물론이고,낙수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공장 직원들이 이 동네에서 밥이라도 사먹으면 모르겠지만,다들 차를 타고 인근 시내에서 식사를 한다.이 동네엔 카페도 하나 없다.저 사람들은 다른 곳에 자기들 생활권이 있더라.” 은퇴 후 고향인 중산리로 돌아온 오씨는 고향 풍경이 너무 많이 달라져 허무함을 느낀다고 말했다.밤이 되면 공장 쪽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지만 마을은 어둠 속에 잠겼다.
오씨는 추모공원은 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허남도 공동위원장 역시 “명절이나 기일에만 유족들이 찾아와도 1년에 세 번은 된다.사람들이 여기에서 밥도 먹고,차도 마시고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또한 추모공원에는 환경 정비나 시설 관리 같은 비교적 숙련도가 낮아도 진입 가능한 일자리도 만들어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포항시 역시 추모공원 설립 시 일자리 사업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포항시의 추모공원 최종 부지는 올 상반기 내에 결정된다.
하지만 마을에 이런 변화가 꼭 필요하냐고 묻는 주민들도 있다.포항시 청하면에 거주하는 60대 주민 김영걸씨(가명)는 “‘지역 사업’이라는 게 한번 휩쓸고 가면 주민들을 서로 갈라서게 만든다”라며 걱정했다.청하면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김씨는 1992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반대 투쟁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당시 청하면 이가리에 들어서려던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은 결국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 끝에 무산되었다.김씨는 32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되물었다.“누구는 발전해야 한다고 하고,색색티지누구는 시골다워야 한다고 말한다.결국 보상금을 쥐여주면서 주민들을 달랜다 해도,찬반으로 나눠져 한번 마음이 갈라진 시골 사람들은 서로 완전히 남이 된다.왜 도시 사람들은 안 겪는 일을 우리는 매번 겪어야 하나?”
이원도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인구감소지역대응센터 센터장은 앞으로‘갈등 조정 능력’이 지자체의 핵심 역량으로 떠오를 것이라 진단했다.혐오시설로 불리던 교정시설·쓰레기매립장·화장장 등을 유치하는 것이 지자체의 곳간을 책임질‘신사업’이 되고 있는 만큼 찬반으로 나뉜 주민들 간의 갈등이 더 잦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이 인구감소지역이다.이제 정부가 특정 지역만을 위한 인구정책을 펼칠 수 없는 지경이 됐다.그래서 현 정부는 정책 방향을 바꿨다.지자체가 스스로 먹거리를 찾도록 하고,성과를 보여주는 곳에 예산을 더 많이 주는 방식이다.”
지난해 12월,정부는‘제1차 인구감소지역 대응 기본계획’을 확정했다.핵심 내용은 정부가‘일자리 창출‘매력적인 정주 여건 조성’생활인구 유입 도모’라는 세 가지 목표를 정하되,이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계획은 지자체가 스스로 세우도록 한 것이다.성과가 확실하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기본계획에 따르면‘연 1조원 규모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우수한 사업을 발굴해 성과를 창출한 지역에 더 많이 배분’한다.중앙정부에서 주는 교부세나 교부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지자체들은 생활인구 유입 등,당장의 성과가 절실한 상황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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