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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 예술을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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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많은 이들의 화두입니다.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도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가만히 듣고 있으면‘그래,나도 이렇게 살아봐야지’하고 다짐하며 정말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러다가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 좋았던 말들이 내 삶에 쉽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환자분들과 지내다 보면,여러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잘 사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오히려 암 환자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여행과 스포츠를 좋아하던 30대 중반의 한 여성암 환자는 저와 함께하는 미술치료를 정말 좋아하셨습니다.자신이 다녔던 여행지를 그리거나 그 시절 행복을 떠올리면서 항암의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미술치료에 그 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걱정되는 마음에 병동으로 찾아갔습니다.침대에 가만히 누워계셨습니다.혹시 통증이 심해서 그러시느냐 물으니 아니랍니다.잠시 시간이 필요하신 것 같아 기다렸습니다.그러자 잠시 후 “사실 유튜브에서 암 치료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혹시 내가 여행을 다니며 먹은 기름진 음식들이 암을 부른 건 아닌지,여행할 짬을 내기 위해 야근을 하면서까지 몰아붙인 회사생활 탓에 몸에 불균형이 온 건 아닌지 자책감이 든다”고 했습니다.안타까웠습니다.

암이라는 병이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왜 하필이면 나인지,왜 하필이면 지금인지 하는 원망의 마음이 많이 듭니다.그러다가 암의 원인이 무엇일지 곱씹다보면 지난날의 행동,광교숲도서관생각,관계 등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집니다.여기에‘암을 유발하는 것들‘암을 이기는 방법’같은 내용의 강의라도 듣는다면 건강한 생활을 하지 못한 데 대한 후회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후회는 살아가는 데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저는 위의 환자분에게 잠깐 걷자고 했습니다.병원 작은 정원에 올라가 하늘을 보고 화단의 꽃도 보고 햇볕도 쬐었습니다.그리고 말했습니다.

어제는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해가 쨍쨍하네요.
이번 주는 지난주보다 나무가 더 짙은 초록빛을 띠고 있네요.

과거야 어떻든 간에 우리에게 중요한 건 지금,여기,오늘이라는 걸 깨닫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환자분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편해졌습니다.그러더니 “저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치료 잘 받고 계획대로 퇴원하는 거겠네요”라며 웃으셨지요.

의료진과도 거의 대화하지 않고,커튼을 닫아놓은 채 하루 종일 혼자서만 시간을 보내시던 70대 환자 한 분이 계셨습니다.제게 유일하게 한 가지를 허락하셨는데,자신이 휠체어를 탈 수 있도록 돕고 창밖을 보게 이동시켜드리는 일이었습니다.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기만 하던 그분이 어느 날은 예쁜 참새 두 마리가 통통 뛰는 모습을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으셨습니다.그 후 저는 가장 큰 창문으로,풍경이 가장 멋진 곳으로,노을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병원 곳곳을 그 분을 데리고 돌아다녔습니다.

하루는 제게 “지금 바깥의 계절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세요”라고 하셨습니다.푸른 녹음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창으로 모시고 갔습니다.한참을 창밖을 바라보시다가,지금 자신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달라 하셨습니다.사진을 찍어드렸고,그걸 물끄러미 바라보시고는 “한여름이 되었네요.제 겨울도 이제는 털어버려야겠어요”라고 나지막이 얘기하셨습니다.비로소 현재를 받아들이고,광교숲도서관지금 이 순간의 자신을 보살피기로 결심하신 겁니다.

어느 날은 비가 내리지만 어떤 날은 무지개가 뜹니다.몇 달 전에는 코가 시리게 추웠지만 지금은 장맛비가 내리는 여름이 됐습니다.연약하던 봄날 연둣빛 나뭇잎은 이제 짙은 녹음을 뽐내고 있습니다.모든 것들이 오늘을 살아갑니다.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잘 사는 방법이 거창하게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어제에 머물지 마세요.그저 자연스럽게,오늘의 나를 오늘에 맡기면 삶은 훨씬 행복해질 겁니다.

생각보다 많은 환자분들이 지금,여기,오늘을 살아가지 못합니다.아마도 괴롭기 때문일 겁니다.하지만 괴로울수록 지금,여기,오늘을 살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과거의 나에 사로잡히지 마세요.여러분은 지금,광교숲도서관여기에서,오늘 가장 빛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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