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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안정성을 다룬 신간 <나답게 산다는 것> 몇 가지 질문에서 시작해 볼까요?① 나는 비판에 매우 민감하다
② 나는 칭찬이나 아첨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③ 나는 내 능력에 자신감이 너무 없다
④ 나는 사회적 상황에서 자주 거북함을 느끼고 어떻게 해야 할 지 정말 모르겠다
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매우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
이 항목은 박은미 작가의 <나답게 산다는 것> 중 '나 자신을 생각해 보게 만드는 물음'에 나온 질문들입니다.인간은 1분에 100 단어를 말하거나 들을 수 있는데 생각은 400 단어를 한다네요.말 그대로 속도가 'LTE급'입니다.인간은 듣고 말하는 것의 세 배에 해당하는 것을 '생각'합니다.여기서 저자는 묻습니다.그 세 배에 달하는 생각이 과연 '적합'한 것이냐고요.
그 오만가지 상념에는 망집(妄執),이른바 나만의 소설이 들어갈 위험이 많다고 합니다.저 위의 질문들처럼 타인들이 나에 대해 하는 많은 말들,거기서 그치지 않고,상대방이 하지 않은 비난들이 솟구쳐올라 나를 상념에 빠뜨립니다.
작가 박은미씨는 자신이 기분이 자주 나빠진다고 하면 스스로에게 '내가 못났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합니다.이렇게 내 마음을 알아차려가는 과정,그것이 바로 '나로 살기'의 시작이라는 것이죠.
죽음에서 시작하는 알아차림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요?생면부지의 타인임에도 마치 내 오랜 지인인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사람 말이죠.세상이 더는 내가 사는 지리적 공간 안에 갇혀있지 않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직접적으로 알지 않더라도 '지인'인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대표적으로는 덕질의 대상으로 그의,혹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꿰게 되는 '최애 스타'를 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그런 스타가 아니더라도,작게는 책으로부터 시작해서 블로그,이제는 유튜브까지 내가 애독하는,애청하는 대상이 되는 인물은 비록 일면식이 없더라도 친숙하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이 장황한 서두의 주인공은 박은미 작가입니다.저는 그분을 네이버 프리미엄 채널 '일상을 위한 철학'에서 만나 뵈었습니다.조금 손쉽게 그 어렵다는 철학을 공부할 채널이 없을까 이리저리 찾다 만난 분입니다.
박씨는 철학 박사이자 철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시는 분으로,<삶이 불쾌한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아주 일상적인 철학>에 이어 이번에 <나답게 산다는 것>의 저자가 되셨습니다.
철학 서적답게 책은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로 시작됩니다.'인간은 피투(被投)된 존재다',토박이 토토피투,던짐을 당했다,즉 인간의 진실은,그리고 딜레마는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세상에 존재한다는 데서 시작됩니다.게다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가족,성별,외모 등의 조건이라니.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 남자와 여자가,과거와 현재가 뒤바뀐 영화를 흥미롭게 보지만 사실 본질적으로 영화 속 주인공들의 당혹감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감당하며 살아가는 삶에 내재된 불쾌감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래,던져졌대,근데 그래서 뭐
그런데 어디 그뿐인가요.원하지 않는 조건에 던져진 것도 황당한데,조만간 죽는답니다.시한부라는 무거운 진실,게다가 그 죽음 앞에서는 온전히 '혼자'입니다.그러니 공허감과 고독감이 콜라보로 업그레이드될 밖에요.불안한 게 당연한 겁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의 개념>에서 ' 불안해지는 방법을 올바로 배운 사람은 최고의 것을 배운 셈이다'라고 말했다네요.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이야말로 우리가 사람다운 결정적 징조라고 했다지만,대부분의 사람은 불안해질 용기가 없어서 '직면'하는 대신 '도피'를 택한답니다.
가끔 그런 경험이 있지 않으신가요?어떤 글을 읽거나,어떤 말을 듣는데 그 말들이 이전과 달리 무슨 의미인지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경험이요.오랜만에 읽는 박은미 작가의 책이 그런 느낌을 제게 주었습니다.
하이데거의 '피투성'이라는 개념은 대학에서 철학 개론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던 개념이었을 겁니다.그래,던져졌대,근데 그래서 뭐?했던 그런 개념이 세월을 돌고 돌아 나이가 들고 보니 새삼 회한의 단어로 다가옵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의 조건들을 헤치며 살아왔던 사람이라면 아마도 누구나 저 단어의 해석만으로도 마음이 스산해질 것입니다.
'불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찍이 불교 등 종교에서부터 비롯된 인간의 불안에 대한 탐구는 종교를 넘어 '알아차림' 등 명상 등의 마음 챙김 수련을 거쳐,이제 뇌과학의 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화두였습니다.
그런데,저자는 '답정너'와 같은 고전적인 정의를 통해 우리가 섭렵해 왔던 그 모든 상념들을 안착시킵니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안정성,먼 길을 물어물어 헤매었지만,어쩌면 우리는 애초에 우리가 불안정한고,불완전해서 불안한 존재라는 걸 외면하고 싶었다는 걸 저자는 콕 짚어 줍니다.
각자 저마다 각개전투하듯이 살아가야 하는 현대 사회는 마치 20세기 초 삶의 불가지함에 절망했던 실존주의와 맞닿아지는가 봅니다.최근 붐을 일으켰던 쇼펜하우어에 이어 박은미 씨의 삶의 조건과 죽음을 마주한 명징한 혜안이 망집에 사로잡힌 마음을 정갈하게 해 줍니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
책은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됩니다.첫째,피투성으로부터 시작하여,죽음을 홀로 마주해야 하는 존재에 대한 '내가 나를 만다다'입니다.
두 번째 '내 마음을 들여다보다'와 세 번째 '내가 모르는 나를 만나다'는 소제목 '논리와 심리 사이에서'처럼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각종 심리적 화두에 대한 철학적 소견을 밝히고 있습니다.여러 심리학적 주제에 대해 철학적 해석은 어떤가 궁금한 분이라면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네 번째 챕터 '나다움은 만들어 가는 것'.앞서 가족이 나에게 미친 영향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던 저자는,내면의 자기와 사회에서 요구하는 자기를 구분할 것을 요청하면서 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가짜 나'로 살게 될 거라고 말합니다.
안타깝게도 삶을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죽음에 이르는 길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토박이 토토가족이,사회가 만든 가짜 나를 넘어 나다운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에 게을리하지 않아야 공허와 고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밑줄까지 쫘악 그어주는 일타 강사의 족집게 강의 같은 책 <나답게 산다는 것>.이 책을 통해 삶의 본원적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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