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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본향'이 전부가 아닌 대구.책 <기억 도시,대구의 재구성>에 담았습니다
회상하는 것조차 민망한 시절이지만,지난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평양의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북한 주민 15만 명 앞에서 통일의 당위를 호소했다.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 함께 백두산 천지에 올라 손 맞잡는 장면에선 벅찬 감동에 잠까지 설쳤다.김정은이 '대한민국은 우리의 주적'이라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마당이지만,여하튼 '화양연화' 시절이었다.
그즈음 통일교육을 주제로 아이들과 동아리 활동을 참 열심히도 했다.들뜬 마음에 우리가 '통일 1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며 학교에서 통일을 준비하자고 했다.이후 김정은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계가 어그러지고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남북 관계가 파탄이 났지만,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마른 수건 쥐어짜듯 모든 걸 쏟아부었다.
"북한에 대해 알아갈수록 통일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이구동성 이렇게 말했다.상대방에 대해 모르면 온갖 오해와 억측을 낳고 종국에는 불신이 켜켜이 쌓이게 된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동아리에서 북한 주민의 일상생활을 담은 사진을 어렵사리 구해 복도에 전시했을 때,로즈 토토아이들의 반응은 뜨거웠다.그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북한에 대해 하나둘씩 알아가는 재미에 빠진 아이들은 북한 관련 뉴스에 귀를 쫑긋 세웠고,탈북 청소년들의 문제에까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북한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해 보고 싶다며 관련 학과로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도 있었다.교류를 통해 서로 알아가고,배움을 통해 정서적으로 가까워지는 게 통일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걸 공유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대구를 제집 드나들 듯 오가는 이유
뜬금없이 몇 해 전 통일교육의 기억을 떠올린 건,대구를 외국처럼 여기는 광주 아이들의 정서적 거리감이 남과 북의 그것만큼이나 멀다고 느껴서다.이대로 방치했다간 자칫 해묵은 지역감정으로 비화할 수 있겠다는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당장 자동차로 두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대구에 가본 적 있다는 아이가 반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다.
광주 시민이자 역사 교사로서 의무감이 발동했다.몇 해 전부터 오백 리 길 대구를 제집 드나들 듯 오가고 있다.시민단체 등에서 현대사 강의 요청을 받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대개는 대구의 역사 유적을 답사할 목적으로 간다.동아리 아이들과 함께 갈 때는 2~3일 머무를 때도 있다.
요즘엔 마실 가듯 대구의 도심 고샅길을 걷고,오며 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눌 만큼 익숙해졌다.이젠 옛 대구읍성의 성안은 대충 걸어서 둘러본 듯하다.장구한 대구의 역사를 품은 공간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 빠르게 뒤덮이고 있어 마음이 다급하다.가뭇없이 사라지기 전에 곳곳에 역사를 소개하는 조그만 표지석이라도 하나 세워두었으면 싶다.
이렇듯 대구에 정성을 들이는 건,광주의 아이들이 대구를 임의롭게 찾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다.그러노라면 머지않아 대구의 아이들도 광주를 거리낌 없이 찾아오는 때가 올 것이다.추후 학교 간 자매결연 등을 통해 교사나 동아리끼리 교류가 이뤄진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자주 만나는 것이야말로 오해를 풀고 편견을 깨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대구 시민도 낯선 대구 이야기
"뭐 볼 게 있다고 그렇게 자주 대구에 오시나요?"
남녀노소 불문하고 대구에서 만난 이들은 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한양,평양과 함께 조선시대의 3대 도시인 데다 현재 인구만 해도 250만 명에 육박하는 거대도시 아니냐고 반문해도 모두 부질없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누구 하나 예외 없이 조만간 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고 노인들만 남게 될 거라며 대구의 잿빛 미래만 되뇌었다.
모두가 대구의 인물 하면 박정희고,음식 하면 국밥과 막창,관광지 하면 서문시장과 팔공산,근대 골목을 전가의 보도처럼 읊었다.조선시대 이래 대구는 선진 문물의 결절점이었고,학문과 예술을 꽃피운 문화 도시였다.근대 언론과 민족 자본이 형성된 탯자리였으며,숱한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본향이었다.기실 대구가 배출한 역사 인물을 다 거론하자면 끝도 없다.
정작 대구 시민들은 대구의 이야기를 낯설어했다.지금껏 학교에서도 배운 기억이 없고,주위 사람들로부터 단 한 번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그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대구 역사의 시작점은 박정희였다.
이후 난 현대사를 개괄해 달라고 요청받은 강의에서도 줄곧 대구 이야기만 했다.국채보상운동과 2.28 민주운동으로만 두 시간을 보낸 적도 있고,희움 위안부 역사관과 조선은행 대구지점 터,대구 형무소 터,아시안게임 육상 100m경산 코발트 광산,가창골 민간인 학살터,최근 복원된 전태일 옛집 등 시민들이 낯설어하는 곳만 골라서 다루기도 했다.
광주 시민이 대구에 와서 대구의 역사를 강의하는 건,기실 주제넘은 일이다.그때마다 '명예 대구 시민'이라고 눙치며,'대구의 동생 같고 친구 같은' 광주에 찾아와 달라고 어리광 부리듯 부탁하곤 한다.만약 대구와 광주가 없었다면,교과서의 우리나라 근현대사 부분이 밋밋했을 거라는 이야기는 나의 단골 멘트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그때 보이는 건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 널리 알려진 조선 후기의 문인 유한준의 일갈이다.대구의 도심을 걷고,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새록새록 곱씹게 되던 글귀다.대구 시민들이 그들이 나고 자란 대구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을 깨닫게 된다면,박정희 외의 다른 인물에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물게 될 것이다.
그런데,대구를 오가면서 알게 된 안타까운 사실이 하나 있다.'대구 방문의 해','대구 시민 주간' 등을 지정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노력은 있어도,정작 시민들에게 대구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 그 흔한 인문학 책 한 권이 없다는 것!대구보다 훨씬 도시 규모가 작은 광주만 해도,당장 향토사를 주제로 한 인문학 도서가 차고도 넘친다.
지난여름 대구의 한 동네 책방에서 현대사를 강의하다 말고 이를 푸념하듯 토로했다.책방 운영자는 쇠뿔도 단김에 빼자는 듯 대구에서 활동하는 각 방면의 전문가를 모아 '대구 책'을 출간하자고 제안했다.책의 얼개를 짰고,대구의 토박이답게 전문 분야별로 저자를 금세 섭외했다.
대학에서 문학을 매개로 학생들과 소통하는 인문학자와 문화예술 정책 네트워크 대표,다큐멘터리 사진작가,지역 불평등과 소외 문제에 천착해 온 대학 연구원,그리고 도시 혁신을 주도하는 문화 기획자까지 같은 고민을 하는 전문가들이 모였다.대구의 역사 인물 꼭지를 쓴 나를 포함해,누구보다 대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대구가 보일 것 같아요"
'대구 책'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지난해 말,드디어 <기억 도시,대구의 재구성>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간되었다.대구라는 도시가 품은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시민들에게 다가가 귓속말처럼 조곤조곤 들려주는 내용이다.각 장마다 대구의 과거와 오늘을 담은 희귀 사진을 실어 놓아 가독성을 높였다.
"다시 대구로 답사를 간다면,새로운 대구가 보일 것 같아요."
책을 훑어본 광주 아이들의 반응을 통해 기대감이 생겼다.대구 시민의 대구 사랑을 위한 책이지만,대구를 그저 '보수의 본향'으로만 알고 있는 외지인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는 평을 들었다.한 지인은 '박정희에 대한 찬사가 일절 없는 대구의 첫 이야기책'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책 출간을 주도한 동네 책방 협동조합 책방 아이 대표님께 감사의 말씀 전한다.
사족.책날개의 '대구 시민보다 대구를 더 사랑하는 광주 시민'이라고 나를 소개한 글은 기실 '광주 시민보다 광주를 더 사랑하는 대구 시민'을 염두에 둔 것이다.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미성년자 토토 처벌 디시광주 시민과 대구 시민의 정서적 거리감을 좁히는 게 역사 교사인 내 필생의 과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