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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깨지고,손바닥 찢기고.두려움과의 싸움이지만 그만큼 가치 있습니다스코틀랜드로 온 지는 3년 되었습니다.틸리라는 조그만 마을에 영국인 남편과 세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국적도 자라 온 배경도,피부색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곳의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기자말>
과거 열두 살쯤이었을까.부산 사직 운동장으로 자전거를 타러 갔었다.대여 시간은 단 1시간.1초라도 땅에 두 발이 닿게 하고 싶지 않았다.운동장 옆으로 진열된 상점들,지나가는 사람들을 여유 있게 쳐다보면서도 자전거를 탔다.내리막길로 다달을 때면 두 발을 공중으로 번쩍 들고선 가속도의 짜릿함을 만끽했다.바람이 내 뺨을 스칠 때마다 씽씽 소리가 났었다.
당시 내가 어떻게 자전거를 배웠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자전거 타기는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그리고 그 뒤 33년이 지났다.세월만큼 자전거와의 거리는 멀어졌고 자연스레 내 몸도 그 기억을 잊어버렸다.
근 80 가까운 친구,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단다
평소 서로 안부를 묻고 지내는 백발의 친구가 어느 날 스코틀랜드 서쪽에 있는 아랜섬으로 일주일 동안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그 친구가 79살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왠지 모르게 그날은 나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것만 같았다. '너도 해 봐!지금부터 딱 30년만 타면 일흔에 자전거 여행쯤은 눈 감고도 갈 수 있어'라는 듯이.
그렇게 작년 가을에 시작된 '마흔다섯에 자전거 타기'.막상 까치발을 하고 간신히 자전거에 올라보니 왜 이리도 높던지.전봇대 줄을 타려고 올라 선 예비 곡예사라도 된 기분이었다.
9월의 따뜻한 바람에도 손과 발이 바들바들 떨렸다.깊게 숨을 한번 고르고 페달을 밟았다.하나.둘.셋.딱 세 바퀴만 돌렸을 뿐인데 숫자 삼을 그리면서 숲 속으로 나동그라졌다.오른쪽 무릎 청바지가 한 일자로 찢어졌고 붉은 피를 뚝뚝 떨구고서야 깨달았다.자전거를 배운다는 건 두려움과의 싸움이라는 걸.
그 가을 동안 나는 몇 번이고 자전거에 몸을 실었고 또 종종 떨어졌다.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서 세상 구경을 하지 못했던 자전거를 다시 꺼냈을 때 나는 마흔여섯이었다.
이제는 자전거 타는 게 제법 즐겁다.아마도 자전거를 타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치리치리' 들리는 새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 보기도 하고,시냇가로 나와 앉은 검은 소가 몇 마리인지 세어 보기도 한다.산책을 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 정도로 브레이크를 밟아가며 속도를 조절하기도 하고,내리막길에서 오르막길로 오를 때면 어디서부터 발을 재빨리 감아야 하는지 감이 오기도 한다.
자전거 타는 게 무섭지 않다는 얘긴 절대 아니다.할 수 있는 것만큼 할 수 없는 것도 여전히 많다.바람 때문에 앞머리가 눈 위로 떨어졌을 때가 곤혹이다.어째 머리카락 하나도 쉽게 넘기질 못 하니 어찌할꼬.어깨가 갑자기 간질간질거릴 때도 긁을 수가 없고,고개를 돌려 스쿠터 타는 아들이 나를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며칠 전에도 무서운 일이 있었다.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두 마리의 개와 산책하는 할머니가 앞에 걸어가고 있었다.검은 개 한 마리는 할머니 바로 왼편에서 걸었고 갈색 개 한 마리는 할머니 보다 두 걸음 앞에서 오른쪽 나무를 향해 킁킁거리며 걷고 있었다.잠깐 멈춰서 걸어갈까도 생각했지만,도로 폭이 내가 옆을 지나쳐도 괜찮을 것처럼 보였다.조심조심 페달을 밟으며 할머니 옆을 지나치는데,성남서고 야구갈색 개가 갑자기 내 쪽으로 몸을 확 틀어버리는 게 아닌가.
개가 치일 것 같아서 순간적으로 나는 자전거 바퀴를 틀었고,결국 숲 속으로 나가떨어졌다.왼쪽 손바닥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사실 왼쪽 손바닥은 저번주 토요일에 자전거를 타다가 이미 다쳤던 자리라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살점이 크게 찢어졌다.할머니도 놀랐는지 괜찮냐며 나에게 다가왔다.사람은 참 웃긴다.그렇게 아팠는데도 피가 나오는 손바닥을 허리 뒤로 감추고는 벌떡 일어나 괜찮다며 웃었다.
그 마력의 힘(?)으로 쓰러진 자전거를 발딱 일으키고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돌아왔다.솔직히 자전거 탈 힘이 하나도 없었다.왼쪽 복숭아뼈도 찌릇찌릇거리더니 거기서 피가 새어 나왔다.청바지 끝이 복숭아뼈에 닿을 때마다 얼굴이 찌푸려졌다.그래도 꿋꿋하게 걸었다.
차들은 많고 자전거 도로는 적은 한국
작년 이즈음,한국 서울에 머물렀을 때 17살 조카가 자전거를 타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보고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머리에 안전 헬멧도 없는 채로 산 꼭대기 우뚝 선 아파트에서 아래 경사진 도로로 내 달리는 것이 아닌가.나중에 위험하지 않았냐고 조카한테 물었더니,큰 도로 말고 골목골목 길을 따라 학교로 가면 안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불안한 게,한국 골목길에는 불법 주차된 차들이 많아서 길 폭이 더 좁아지는 데다가 쌍방향으로 오가는 사람을 피해서 가야 한다.모퉁이에서 불쑥 끼어드는 차량들도 예측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자전거를 잘 탈 수 있다는 말은,자전거에 아주 능숙한 사람이거나 겁이 별로 없는 사람일 거란 생각마저 든다.
2018년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만 12세 이상 69세 이하 자전거 이용 인구는 전체의 33.5%였다.2020년 영국 조사(National Travel Survey)에는 5세 이상 인구 중 47%가 자전거 이용,매일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은 인구의 20%였다.
자전거 타는 이용자의 수가 한국보다 영국에서 현저하게 많지는 않다.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성남서고 야구마흔이 넘은 나도 자전거를 다시 탈 만한 환경과 분위기가 잘 조성돼 있다는 점이다.
일단 자전거 도로.내가 사는 스코틀랜드 마을 틸리에서 다음 마을인 알로아로 가려면 자전거와 도보로 갈 수 있는 길이 차로와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아이들과 자전거 타기에도 안전하고 급경사가 적어서 나 같은 초보자가 시작하기에 딱 좋다. 피크닉 테이블이 있어서 도시락을 싸고 여유 있게 놀 수도 있다.A에서 B로 이동시,이 동네에서 알아야 할 역사나 만날 수 있는 동물들이 소개되어 있는 게시판이 있는 것도 흥미롭다.
또 하나,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이 빠지거나 구멍이 났을 때 이를 고치고 다시 탈 수 있도록 그림 설명서와 임시 도구들을 매달아 놓은 곳도 발견할 수 있다.시골 마을뿐 아니라 런던처럼 큰 도시에서도 대부분 '자전거 전용 도로'가 따로 있어서 출근길이 용이하다.기차 안에서도 자전거 전용 구간이 따로 있는 덕에,자전거를 가지고 다니는 자전거 여행이 한결 편하다.
마흔 다섯에야 다시 타기 시작한 자전거.어렸을 때 잘 탔으니 몸이 기억하지 않을까란 착각은,자전거를 탄 내가 내동댕이쳐질 때 내 몸과 함께 넘어졌다.정말 끔찍했다.사기당한 기분이었고 자전거에 바이러스라도 묻은 것처럼 만지기도 싫었다. 그러나 그 서러움과 미움,두려움을 이기려면 다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와 생각,작은 시작이나 도전에 두려움을 지닌 당신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싶다.79살 할머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우리 여든이 되도록 자전거 한번 기똥차게 타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