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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 갈등 1년] ③ <끝> 인하대병원 뉴노멀 적응 사례
전공의들이 지난해 2월 19일 집단 사직서를 내며 병원을 떠난 지 1년이 흘렀다.예상치 못한 의·정 갈등 장기화는 의료 현장을‘가보지 않은 길’로 몰아넣고 있다.번아웃을 호소하는 의료진과 수술이 미뤄진 환자들 사연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병원 현장에서 어떤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지 정확한 규모를 알기는 어렵다.지난해 2~7월 전국 의료기관에서‘초과 사망자’(통상 예상되는 수준을 넘어선 사망자)가 3000명 이상 발생했다는 추정 통계를 통해 엿볼 뿐이다.
다만 의·정 갈등 장기화가 어두운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의료 인력의 40% 정도가 전공의였던 상급종합병원은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큰 타격을 입고‘체질 개선’에 나섰다.병동 폐쇄와 무급휴가 등 자구책을 이어가던 시기를 지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이 모두 정부 구조전환 사업에 참여 중이다.평상시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일반 병상을 줄이고 중환자 중심 병원으로 기능을 강화하는 게 구조전환 사업의 핵심 내용이다.
상급종합병원이‘뉴노멀’에 맞춰 새로운 경영 전략을 짜는 등 길을 찾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인건비가 낮은 전공의에게 의지한 채 병상을 늘리는 과거의 시스템이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3차 병원 본연의 역할에서 답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인천의 상급종합병원인 인하대병원은‘달라진 병원’의 대표 사례 중 하나다.인하대병원 역시 전공의 이탈 직후 수술률(병원 내 수술실 가동률)이 40% 수준으로 떨어지며 비상이 걸렸다.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교수가 현장을 뛰고 간호사의 역할을 확대했다.과정이 쉽진 않았으나 발빠르게 인력과 업무를 재배치한 덕분에 수술률은 82%까지 올라왔다.정부가 구조전환 사업의 일환으로 중증 수술 수가 등을 올리면서 수익도 예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한 상태다.
“작년 2월 19일 저녁을 잊을 수 없어요.밤새 전화와 문자가 쏟아졌습니다.전공의를 지도하며 큰 결정만 내리던 교수들이 20~30년 만에 최일선에서 모든 걸 다 해야 하니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까.”


지난 23일 인하대병원에서 만난 최선근 진료부원장은 “변화한 병원 체계가 과거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전공의 이탈이 현실이 된 그날,이던인하대병원에선 전공의 130여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병원은 그야말로‘총체적 난국’에 빠졌다.최 부원장은 “비상 대응 프로토콜을 만들고 교수진의 당직 근무를 편성하는 등 인력을 재배치하고 조정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진료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우선순위는 중증 환자였다.인하대병원은 경증이거나 타 병원에서 회복이 가능한 환자를 분류해 적극적으로 이송 작업을 진행했다.병원 측은 지난해 초부터‘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던 터라 이미 2차 병원 등 진료협력병원으로 환자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진료협력 네트워크 강화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사업의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최 부원장은 “타 병원에서도 충분히 케어할 수 있다고 환자에게 알리고 설득하기 위해 200개 협력병원에서 어떤 수술이 가능한지 세분화해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PA 간호사’로 알려진 진료지원‘전담 간호사’의 역할이 컸다.인하대병원은 기존에 외래와 병동 업무를 보조하던 전담 간호사 인력을 필수의료 및 중환자 중심으로 재배치했다.경력에 따라 인턴과 레지던트 역할로 업무를 세분화하고,숙련도가 필요한 응급실·수술실·마취 모니터링·중환자실은 전담 간호사를 추가 채용했다.의·정 갈등 전 100명 초반이었던 전담 간호사는 현재 2배 가까이 늘었다.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사업에 참여하는 병원은 대부분 인하대병원처럼 전담 간호사를 확대하겠다는 인력 운영 계획을 세웠다.전공의를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은 사실상 전담 간호사가 유일하기 때문이다.그동안 전담 간호사는 의사의 일부 의료행위를 그림자처럼 대신 해왔지만 의·정 갈등이 터지고 나서야 직역에 대한 법적 지위를 보장받고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인하대병원 박은영 책임간호사는 “전공의 이탈 후에도‘원래 해오던 일이고 하던 대로 하면 된다’며 동료들을 다독였다”면서 “환자들에게‘남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꼈다는 간호사들이 많다”고 전했다.
29년 차 간호사인 김소희 수간호사는 전담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넓어진 만큼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김 수간호사는 “전국적으로 간호사가 많이 늘었는데 병원별로 정부 교육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전담 간호사는 매우 적다”며 “감염내과만 하더라도 파트가 여러 분야라 더 세부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전담 간호사 1인당 환자 분담수 기준을 마련해 업무 부담을 완화하고,전담 간호사 업무에 따른 적절한 보상 체계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전공의 공백으로 병원 전체가 흔들린다는 건 그만큼 많은 부분을 전공의에게 의지하고 있었다는 의미다.최 부원장은 이 문제를 인정하며 “교수들도 깨어났다”고 말했다.앞으로 병원 측도 전공의를 교육생으로 바라보며 수련 교육을 내실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얘기다.정부는 현행 최대 36시간 이내로 규정돼 있는 전공의의 연속근무 시간을 24~30시간 범위 내로 단축하는 시범사업도 진행 중이다.
향후 복귀하는 전공의가 늘면 전담 간호사와 업무가 겹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최 부원장은 “어떤 일이든 업무 분장이 명확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 분장 파악이 첫 번째”라며 “전공의가 30~40% 정도라도 돌아오는 상황을 항상 가정하고 준비하지만 과거로는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의료진 간에도 어느 정도 상호 이해도를 높이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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