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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중퇴 후 요리사 길로
페루·아르헨·알래스카 전전
개폐업 시행착오 거치며
'퓨전 일식' 신기원 열어
예부터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했지만 이젠 달라졌다.최근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집계가 시작된 196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요즘 사람들은 한 끼에 평균 밥 반 공기 정도로 버티고 있다.반면 돼지,소,닭고기 등 3대 육류 소비량은 지난해 기준 1인당 60.6㎏으로 쌀 소비량을 넘어섰다.
우리 경제의 산업화는 외식 산업의 발달과 함께 식생활의 서구화를 가져왔다.20년 전만 해도 식탁에서 볼 수 없었던 브로콜리,셀러리,파프리카가 등장하고 식당에선 부대찌개,LA갈비와 같은 정체가 모호한 음식들이 팔리고 있다.인스턴트 식품과 배달 음식의 소비도 날로 늘어가고 있다.
한 시대의 음식문화 발전에는 항상 그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인물이 존재한다.그들은 새로운 식재료와 요리법을 개발하고,그것을 즐기며 평가하는 사람들이다.편리한 식기와 식탁예절을 도입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다.오늘날의 음식문화를 만든 이들이 누구이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고 했다.이제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아볼 때다.
日 음식 전 세계에 알린 마쓰히사 노부유키
K-푸드의 열풍이 뜨겁다.미국 마트에 우리 라면이 쌓여 있고,냉동 김밥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유학 시절 김밥을 점심으로 도서관에 싸갔다가 냄새 때문에 무안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지금의 유행으로 자칫 우리 음식이 저렴한 이미지로 남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있다.그런 점에서 한국 음식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아야 할 인물이‘노부’가 아닐까 싶다.
그의 애칭이자 이제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노부’는 요리사‘마쓰히사 노부유키’(松久信幸,1949~)가 창업했다.그의 기여로 일본 음식은 세계적인 명성과 고급 이미지를 얻었다.1980년대만 하더라도 스시를 먹자고 하면 날생선이라고 기겁하던 서양 사람들을 이제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식당 앞에 진을 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노부는 2025년 2월 현재 뉴욕,라스베이거스,토론토 등 북미는 물론 유럽,멕시코와 카리브 제도,중동과 아프리카,토토 알림톡아시아 지역에 40개 호텔을 포함해 무려 76개 레스토랑과 12개 레지던스로 구성된‘호스피탈리티 제국’을 이끌고 있다.그의 사업은 날로 번창해 지금도 카이로와 로마,바카라 게임 사이트슬롯검증사이트마드리드 등지에 개업을 준비하고 있다.70대 후반에 접어드는 노부는 세계적인 기업가가 된 지금도 열정적으로 일한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이런 명성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그는 온갖 난관을 겪으면서도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섰다‘최고의 품질’이라는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최고급 식자재 사용과 완벽한 서비스,맛의 일관성 유지와 함께 새로운 맛과 프레젠테이션의 조합을 탐구해 왔다.노부는 끊임없이 학습하고 진화하며 혁신과 성장을 추구해 왔다.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신선한 재료와 마음을 담은 음식”이라고 했다.
베벌리힐스에 오픈한 스시 레스토랑‘마쓰히사’
노부는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고 어머니 손에서 컸다.문제아였던 그는 고등학교를 채 마치지도 못하고 도쿄 신주쿠의 초밥집에 수습생으로 들어갔다.그곳에서 청소와 설거지부터 시작해 7년을 수련했다.1973년,24세 되던 해에 청운의 꿈을 안고 미지의 세계 페루로 건너갔다.
그는 모험심이 가득하고 도전적인 인물이었다.리마에서 일본계 페루인과 동업으로 레스토랑을 시작했다.그러나 고급 재료 구매를 고집하던 노부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동업자와 불화를 겪다 결국 아르헨티나로 떠났다.그곳에서도 자리 잡지 못하고 다시 미국 알래스카로 가서 식당을 열었으나 개업한 지 15일 만에 불이 나 폐업하는 불운을 겪게 된다.빚더미에 앉은 노부는 거기서 굴하지 않고 1977년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식당을 전전하며 일했다.그러다 1987년 지인의 도움을 얻어 드디어 자신의 성인‘마쓰히사’를 상호로 내건 스시 레스토랑을 베벌리힐스의 유명한 식당 거리 라시에네가에 오픈하게 된다.
식당은 성황을 이뤘다.수많은 할리우드의 저명인사들도 드나들었다.어느 날 단골손님이었던 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뉴욕에 레스토랑을 열자고 제안했다.노부는 솔깃했지만‘마쓰히사’가 좀 더 탄탄하게 자리 잡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거절했다.5년을 기다린 드 니로가 1994년에 다시 제안하자,노부는 흔쾌히 동의했다.그렇게 해서 노부,드 니로와 영화제작자 메이어 테퍼가 합작하고 식당 경영의 귀재 드류 니포렌까지 참여해 맨해튼 트라이베카에 첫 번째‘노부’가 문을 열게 된다.실내장식은 무대 디자인으로 토니상을 받은 데이비드 록웰이 맡았다.
그곳에서 노부는 일본 음식의 신기원을 연다.그는 전통적인 일식을 고집하지 않았다.노부는 대단히 창의적인 요리사였다.그는 항상 현지의 최상급 재료에 페루,카뱅 미니 가능 토토아르헨티나,알래스카 등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터득한 다양한 요리법을 접목해 새로운 스타일의 일식을 선보였다.예를 들어 드 니로가 즐겨 먹는다는 노부의 대표 요리‘은대구 사이쿄 된장구이’는 알래스카의 재료와 일본 교토의 요리법이 만나서 탄생한 음식이다‘오징어 파스타 마늘 소스’나‘바닷가재 와사비후추’도 그런 결합이 이뤄낸 메뉴다.날생선 못 먹는 손님들을 위해서는 생선회에 뜨거운 올리브유를 끼얹는‘뉴스타일 사시미’를 고안해 냈다‘뉴스타일 사시미’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가 됐다.
첫 작품‘노부 뉴욕’은 대성공이었다.예약에 수개월씩 걸릴 정도로 손님들이 밀려들었다.레스토랑은 개업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 흑자로 돌아섰고,당시 단일 식당으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1000만달러의 연 매출을 올리기 시작했다.그런 급성장을 보이면서 지점들이 말리부,마이애미비치,라스베이거스 등 미국은 물론 런던,두바이,홍콩 등 전 세계로 앞다퉈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디에 있는‘노부’라도 그곳은 그 지역의 유명 인사들이 모이는 최고의 명소가 됐다.톰 크루즈나 제니퍼 로페즈,스티븐 스필버그,마돈나,기네스 펠트로,데미 무어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서슴지 않고‘노부’를 자신의 최고 단골집으로 꼽게 됐다.살림의 여왕으로 유명한 방송인 마사 스튜어트는 자신의 요리책에 노부의 레시피를 소개하고 그의 요리책에 추천사를 쓸 정도였다.최근에는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인공이자 최고의 야구선수로 손꼽히는 오타니 쇼헤이가 그를 찾았고,노부는 야구공 형상의 특별한 디저트로 그를 맞이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명사들은 투자에도 관심을 가졌다.노부 밀라노는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투자에 참여했고 케니-G는 노부 말리부에 함께했다.오라클의 설립자 래리 엘리슨도 투자자 대열에 합류했다.식당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노부는 호텔업 진출을 구상하기 시작한다.2013년 노부의 첫 번째 호텔‘노부 시저스 팰리스’가 기존 시저스 팰리스 호텔의 1개 타워를 개조해‘호텔 안의 호텔’이란 콘셉트로 라스베이거스에 오픈했다.호텔의 가장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노부 레스토랑 앤드 라운지’는 큰 규모로,노부 최고의 키친팀이 선보이는 각종 요리를 맛볼 수 있게 설계됐다.
2015년에는 노부 호텔 마닐라가 문을 열었고,호주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그룹 중 하나인 크라운 리조트 계열의 투자회사가 노부 기업의 지분 20%를 1억달러에 인수했다.노부 호텔 체인은 지구촌 곳곳으로 뻗어 나갔다.2022년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크라운 리조트를 인수하자 노부 기업의 지분은 그 계열사에 매각됐다.이제 노부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노부는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각고의 노력 끝에 자신의 왕국을 이뤘다.뉴욕타임스는‘노부’를‘세계 10대 레스토랑’에 선정하기도 했고 포브스는 그를‘가장 돈 많이 버는 요리사’4위에 올려놓기도 했다.심지어 미국 명사 리스트의 99위에 오른 적도 있고,어떤 매체는 그를 순자산 2억 달러의 세계 3위 부호 요리사로 발표한 적도 있다.
그의 성공은 이런 숫자로도 평가받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개인의 영광에 그치는 것이다.그의 진정한 승리는 일본 음식을 세계적인 요리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그것도 정상급 이미지로 최고가의 자리에 가져다 놓은 공로는 크다.그 비결은 요리가 패션이며 유행이라고 생각하고,보는 재미까지 고려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그의 철학에 있다.그는 세계를 돌며 얻은 다양한 경험을 자신의 요리에 반영했다.필요하면 일식의 전통적인 부분까지도 고객의 기호에 맞춰 현지화하는 과감성으로 큰 성취를 이뤄 낸 것이다.우리 K푸드에도 그런 노력이 보태져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