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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슬링’의 탄생지
국보로 지정된 래플스 호텔
래플스는 싱가포르 사람들에게 최고급 호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싱가포르 정부는 1987년 설립 100주년을 맞은 래플스를 국가기념물로 지정했다.래플스 투숙객은 국보(國寶)에서 자는 셈이다.
래플스는 아르메니아계 사업가 사키스(Sarkies) 형제가 1887년 열었다.탁월한 서비스와 시설로 빠르게‘동양 최고의 호텔’이란 명성을 얻었다‘정글북’을 쓴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은 “싱가포르를 방문하면 래플스에서 식사하라”고 했고,영국 작가 서머싯 몸은 “래플스는 동양의 신기한 우화를 모두 대변한다”고 썼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부터 팝 황제 마이클 잭슨까지 아시아를 찾는 유명 인사는 래플스에 머무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키플링과 몸,에바 가드너,찰리 채플린,엘리자베스 테일러,앙드레 말로,파블로 네루다,존 웨인 등 12명의 이름을 붙인‘퍼스널리티 스위트(Personality Suite)’는 얼마나 많은 명사가 래플스를 찾았는지 보여준다.
새하얀 래플스 본관은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대영제국 육군 제복을 갖춰 입은 인도계 시크교도 도어맨이 지킨다.용맹하기로 소문난 시크교도들은 군인과 경호원으로 인기 높았다‘도어맨은 반드시 시크교도여야 한다’는 규칙은 설립 때부터 이어져 온 래플스의 전통.결원이 생기면 인사 담당자가 시크교 사원 앞에서 신입 후보를 찾는다.
본관에 들어서면 3층까지 통으로 뚫린‘그랜드 로비’가 웅장하다.사키스 형제가 당대 최고의 건축가 R A J 비드웰에게 의뢰해 세웠을 때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안에는 최첨단 시설을 감추고 있다.조명,토토 hot커튼,yes 토토에어컨,천장 팬,TV 등 모든 객실 시설은 침대에 누워 태블릿PC로 통제 가능하다.
여기에 최고 서비스가 더해진다.래플스는 모든 객실이 스위트(suite)이다.스위트는 일반 룸보다 넓은 침실과 거실로 구성되는 형태의 객실.모든 스위트는 개별 버틀러(집사)가 맡는다.얼마나 단단한 베개를 선호하는지부터 실내 온도,커피에 타는 우유 종류와 온도까지 입안의 혀처럼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식음 서비스도 싱가포르 최고로 이름났다.식민지 시절부터 제공해온 그랜드 로비 애프터눈티는 여전히 최고로 꼽힌다.아침에 투숙객 조식 장소로 사용되는‘티핀룸(Tiffin Room)’은 1892년 문 연,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중 하나로 정통 인도 북부 요리를 선보인다.
중식당‘이(藝) 바이 제러미 륭’등 모든 식음 매장이 세계적 수준이지만,가장 유명한 건‘롱 바(Long Bar)’다‘싱가포르 슬링’칵테일을 맛보려고 거의 모든 관광객이 찾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래서인지 술 파는 바답지 않게 오전 11시 30분부터 영업하지만 늘 입장 대기 줄이 길다.
싱가포르 슬링은 이곳 바텐더 통 분(N Tong Boon)이 1915년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졌다.당시는 공적 장소에서 여성 음주가 금기시됐다.통 분은 증류주 진과 체리·쿠앵트로·돔 베네딕틴 등 리큐어에 파인애플·라임·그레나딘(석류 시럽) 같은 과즙을 섞어 여성들이 주스처럼 마실 수 있게 했다‘싱가포르 슬링’만큼 인기 있는 칵테일‘밀리언 달러’도 통 분이 1910년 개발했다고 전해진다.
롱 바에 들어서면 싱가포르에서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 펼쳐진다.바닥이 땅콩 껍질로 뒤덮여 있다.음료를 주문하면 땅콩을 한 포대씩 준다.과거 말레이 반도에는 땅콩 농장이 많았고,롱바는 농장주들이 모이는 장소였다.농장주들은 안주로 땅콩을 들고 왔고,땅콩을 까 먹고 껍질을 바닥에 버렸다.이게 롱바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싱가포르는 쓰레기 투기에 엄격하다.무심코 버렸다가 최고 2000싱가포르달러(약 214만원)의 벌금이나 3개월 이하 징역,또는 두 가지 동시 처벌을 받을 수 있다.사복 경찰과 단속원이 상시 감시하며,외국인도 예외가 아니다.이런 싱가포르에서 땅콩 껍질을 바닥에 마구 버리다니,묘한 쾌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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