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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공학자의 시선으로 본 핵
안전 문제서 자유롭지 않아
핵발전 원리도 쉽게 풀어내

서균렬 교수의 인문핵 표지.철수와영희 제공

“핵은 사양길에 접어들었습니다”

글 도입부부터 강렬하다.다른 사람도 아닌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출신 교수의 말이라 더욱 그렇다.저자는 왜 원자력 발전을‘사양산업’으로 규정할까.한평생 핵과 동고동락해 온 그는 어쩌다 핵과‘헤어질 결심’을 하게 됐을까.

<서균렬 교수의 인문핵>의 저자 서균렬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중학생 때부터 핵공학에 꽂힌 핵‘오타쿠’다‘엔지니어’라는 말에 끌렸다던 그는,1974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 입학해 공학자의 길을 걷는다.핵으로 부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꿈을 안고 미국 메사추세츠 공대(MIT) 유학길에도 오른다.인종차별과 핵공학의 폐쇄성을 극복한 그는,우여곡절 끝에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원자력 기업‘웨스팅하우스’에 발을 들인다.

9년간의 웨스팅하우스 근무 경험은‘핵은 곧 국력’이라는 생각을 지녔던 서 교수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당시 그는 원전의 한 종류인 비등형경수로의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업무를 맡았다.비등형경수로는 훗날‘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이어지는 원전과 같은 작동 방식의 모델이다.그는 “후쿠시마의 경우 가장 사고 확률이 높은 게 지진에 이은 해일이었다.해일 피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최소한 12m 높이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회사에서 비용 문제로 발표를 말렸다”고 회상한다.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실제로 일본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그는 회의감에 빠진다.

저자가 책의 앞부분에서 핵에 빠진 자기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면,뒷부분은 과감하게 핵의 어두운 면에 대해 써 내려간다.원전 사고 가능성부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 등 풀어내야 할 숙제가 산더미다.그의 고민은 원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지역인 부산의 고민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는 자신을 찬핵도,페도라모자탈핵도 아닌‘안핵(안전한 핵) 주의자’로 설명한다.핵이 미완의 기술인 것을 인정하고 안전하게 원자력 기술을 운용하자는 게 그의 논리다‘말은 쉽지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야’라는 의문을 품는 사람을 위해 약간의 해법도 제시한다.인구 전체를 수용할 수 있는 방공호를 보유한 스위스를 참고해,최소한 인구 절반이라도 대피할 수 있을 만한 시설을 확보하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핵발전을 당장 포기할 수는 없으니 안전을 강화하고,발전 비율을 유동적으로 조절하자는 취지다.핵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독자를 위해 비전공자도 이해할 만한 친절한 설명도 곁들인다.

그는 원전폐로,페도라모자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 등을 감안하면 원자력 발전의 경제성은 크게 낮아지고 있다고 강조한다.수조 원을 투입해 기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천연가스나 재생 에너지를 쓰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다.지금 당장 처리하지 못하는 핵폐기물 문제는 “미래 세대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라는 냉철한 평가도 빼놓지 않는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1986년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인류에게 적잖은 충격을 준 사건이다.그는 이에 대해 “감속 방식,설계 방식과 무관하게 사고가 난 것”이라며 “확률이 낮다고 해서 벌어진 사고가 없었던 일이 되진 않는다”고 일갈한다.지난 12일 전북 부안에서 규모 4.8의 지진이 발생해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끔찍한 상상은 그저 상상에만 그쳐야 할 텐데 큰일이다.서균렬/철수와영희/272쪽/1만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