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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만나면 수소가스 발생해 폭발 위험…기존 화재 진압과 완전히 다른 매뉴얼 만들어 대체해야
6월24일 오전,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의 리튬배터리 제조공장 '아리셀'에서 발생한 화재로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유해 화학물질인 리튬을 취급하는 곳이었던 만큼 대형 참사가 빚어졌다.이런 가운데 25일 SBS는 공장 화재의 첫 발화로 추정되는 현장 영상을 공개했다.CCTV 영상을 보면 공장 내부에서 연기가 피어오른 후 31초 동안 4차례의 폭발이 발생했다.
리튬배터리,파워볼 번호유독가스 '불화수소' 다량 발산
첫 폭발은 6월24일 오전 10시30분03초에 공장 3동 2층 배터리 포장 작업장에 쌓인 배터리에서 일어났다.이곳에는 3만5000개가 넘는 원통형 리튬배터리가 보관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폭발 전에 배터리에 외부로부터 충격이나 열이 가해졌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 23명 모두 여기에서 발견됐다.
화재를 인지한 직원들은 12초 만에 다른 배터리로 불이 옮겨붙지 않도록 불씨가 번질 수 있는 주변 물건을 치우려 했다.하지만 10시30분28초와 31초에 연달아 폭발이 일어났다.직원들은 곧바로 분말소화기로 불을 끄려 했으나 불길이 전혀 잡히지 않는다.세 번째 폭발 3초 후인 30분34초에 네 번째 폭발이 일어났고,또 30분40초엔 많은 배터리가 줄줄이 폭발했다.작업장 전체는 자욱한 연기로 뒤덮였다.결국 첫 폭발이 일어난 지 42초 만에 CCTV 화면이 까맣게 변했다.암전이다.그 후로는 더 이상 내부 상황을 확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화재 장소에 도착한 소방 당국은 물을 뿌리는 일반 소화 방법을 곧바로 쓸 수 없어 화재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그래서 일단 다른 건물로 번지지 않도록 방화선을 구축하고,리튬배터리의 에너지가 소진돼 자연 진화되기를 기다렸다가 오후 3시10분쯤 큰불을 잡았다.소방 당국은 왜 리튬배터리 화재를 쉽사리 진화하지 못한 걸까.
보통 화재가 발생하면 물을 사용해 발화점 이하로 떨어뜨리는 냉각소화나 이산화탄소를 살포하는 질식소화로 불을 끈다.질식소화는 대기 중의 산소 농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타고 있는 물질에 이산화탄소를 뿌리거나 화재가 난 곳에 모래를 뿌려 공기를 차단하는 방법이다.어떤 물질이 불에 타려면 산소가 필요하다.
하지만 리튬배터리 화재의 경우 질식소화와 냉각소화를 적용하기 힘들다.리튬은 화학 반응성이 강하기 때문에 물을 만나면 폭발하듯 맹렬하게 반응해 가연성(불에 타기 쉬운 성질)이 높은 수소 기체를 내놓는다.이렇게 발생된 수소가스가 폭발하면 화재 위험성은 배가된다.
물(H2O)은 산소(O)와 수소(H)로 이뤄져 있다.리튬이 물에 닿으면 전자 한 개를 떼어내 물에 주고 이 전자가 물속의 수소와 결합해 수소가스를 발생시킨다.이 과정에서 이온들이 서로 밀어내는 반발력으로 인해 폭발이 일어난다.아리셀 공장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로 추측된다.
또 마른 모래나 팽창질석 등을 사용하는 질식소화는 건물 외부에서 물을 쏘듯이 뿌리는 게 아니다.직접 건물 내부로 진입해 삽이나 장비를 이용해 모래를 퍼서 뿌려야 한다.하지만 리튬배터리 화재의 경우 연쇄적인 폭발 때문에 내부로 들어가기 어렵다.또 리튬배터리에 불이 붙으면 유독가스,특히 인체에 해로운 불화수소(불산)가 다량 발생한다.소방 당국의 초기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배터리 개발에 주로 리튬이 활용되는 것은 높은 에너지 밀도 때문이다.니켈배터리에 비해 같은 부피·질량 안에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데다 가벼워서 휴대성까지 올라간다.또 전자를 쉽게 내놓는 성질이 있어 화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에너지 변환 효율이 좋다.다만 리튬의 특성인 열 폭주(Thermal runaway)로 발화 가능성이 높다는 게 고민거리다.
열 폭주로 순식간에 1000도 이상 온도 올라
리튬배터리 화재의 대표적 원인은 열 폭주 현상이다.열 폭주는 배터리 내부 온도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으며 폭발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기온 상승으로 인한 외부 가열,외부 충격,과충전 등으로 배터리 온도가 올라가는 게 원인이다.이번 화성 공장 폭발 또한 리튬에 물이 닿아 일어난 폭발이라기보다 열 폭주가 대형 화재로 번졌을 가능성이 높다.
배터리는 화학 반응으로 전기에너지를 만드는 장치다.구성 요소는 크게 음극과 양극,파워볼 번호분리막,전해질 등 4개로 나뉜다.전해질 속에 두 종류의 금속판이 있고,금속판의 한쪽은 전자를 받아들이는 양극(+),파워볼 번호다른 한쪽은 전자를 내보내는 음극(-)이다.전해질은 양극과 음극 사이를 오가는 이온의 통로 역할을 하는데,두 금속판이 전해질과 화학 반응을 하면서 전기를 만든다.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이 직접 접촉하면 불이 나기 때문에 이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만약 강한 충격이나 고온으로 리튬배터리 온도가 올라가면 배터리의 부피가 풍선처럼 커지고 내부 압력 또한 커져 분리막이 손상된다.분리막이 손상되면 양극과 음극의 경계가 무너져 접촉하면서 과열돼 불이 붙고,열 폭주로 폭발이 일어난다.
열 폭주 현상이 일어나면 배터리 온도가 불과 몇 초 만에 400도,몇 분 만에 1000도 이상 올라간다.한번 발생한 열 폭주는 연쇄적 발화로 이어지며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불이 꺼진 것처럼 보여도 내부에서 계속 열이 발생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보통 배터리는 한 번 쓰고 버리는 '일차전지'와 충전해 계속 쓸 수 있는 '이차전지'로 나뉜다.일차전지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이차전지는 화재 위험 때문에 50% 정도만 충전해 출고하는 반면,일차전지는 100% 완충된 상태로 제조되기 때문에 에너지가 가득 차 있어 화재가 발생하면 그 위험성이나 폭발 가능성이 더 크다.아리셀 공장도 일차전지를 생산하던 곳이다.그러나 일차·이차전지 모두 리튬배터리이니만큼 화재가 발생하면 진화가 매우 어렵다.
이렇듯 리튬 등 금속화재는 화재의 양상과 진압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따라서 그동안 기업들이 배터리 기능과 산업에만 집중했다면,이번 참사를 계기로 안전대책을 세워야 한다.소화약제 보급을 서둘러야 하고,해외처럼 금속화재를 분류해 별도 소화기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특히 소방 당국은 배터리 특성에 따른 매뉴얼을 만들어 재난 대응이 취약한 중소기업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노트북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각종 생활용품에 배터리 사용이 보편화된 만큼 일반 국민도 배터리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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