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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 정상에서 경북 영주시 풍기읍 방향으로 내려다보는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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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이 힘들고 지친다면 어머니 품과 같은 소백산 정상 능선을 한번 올라 보시라.꽤 도움이 될 것이다.필자는 지난 6월 4일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에 25번째 올랐다."너 잘났다.산을 날아다니는구만"이라고 할지 모르겠다.하지만 어의곡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여 비로봉까지 5.1㎞의 등산로는 여전히 고난의 행군이었다.그래도 산을 묵묵히 올라갈 때 허벅지 근육은 단단해지고 허트러진 마음도 다잡아진다는 믿음으로 올라갔다.출발 지점부터 2~3㎞를 전후하여 돌계단과 나무계단이 나오고 경사도 매우 급해진다.이윽고 장대 같은 전나무 숲을 지나 4.2㎞ 지점에 도착하면 하늘이 활짝 열리고 나무 데크로 된 좁고 길다란 탐방로가 은하철도999처럼 비로봉까지 이어진다.

등산 왕초보이던 2013년 5월 11일 처음 비로봉에 올랐을 때,마치 에베레스트라도 정복한 듯 감격하여 친지들에게 휴대폰으로 '낭보'를 전했던 기억이 난다.그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 갔으니 쉬워질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안정형 협심증' 때문이다.경사도가 15%를 넘으면 숨이 심하게 가빠지고 50m를 올라가면 1분 이상 그 자리에 멈춰 숨을 골라야 한다.국립공원공단 측에서 제시하는 어의곡탐방지원센터~비로봉 코스는 평균경사도가 20.7%로 등산 표준시간이 2시간40분인데,이번에도 정확하게 1.5배 되는 4시간이 걸렸다.지금까지 지리산 천왕봉,설악산 대청봉,플렉스 홀덤월악산 영봉,치악산 비로봉같이 빡센 산들도 여러 번 올랐는데 모두 1.5배 시간 원칙을 적용했다.분명 같은 시간에 출발했는데,필자가 절반도 올라가지 않았는데 벌써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사람을 종종 본다."등산이 무슨 속도전인가,왜 저리 산을 즐기지 않고 급히 내려오나"라며 약간은 부럽고 약간은 초연한 척 바라본다.특히 소백산 정상은 정상 찍고 급히 내려오는 곳이 아니다.능선을 잠시라도 거닐며 어머니 같은 대자연(Mother nature)의 큰 마음을 느껴 보고 아래 세상을 향해 심호흡 한번 진하게 하는 곳이다.

물론 우리나라 산들의 정상에 오르면 어디 안 좋은 곳이 있으랴.지리산 천왕봉에서는 남한 땅을 발 밑에 내려다보는 호연지기를 느끼고,설악산 대청봉은 동해바다부터 시작하여 공룡능선과 천불동계곡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북한산 백운대에 오르면 거대한 인수봉을 마주하면서 서울 시내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주한 외국인들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한국의 알프스'

하지만 소백산은 전혀 다른 감동을 준다.정상 부근에 어머니의 품과 같은 부드러운 능선이 한없이 이어진다.여름이면 푸르른 대초원으로 사람을 안아주며 겨울이면 상고대(나무나 풀에 내려 눈처럼 된 서리) 가득한 설원(雪原)으로 사람을 흥분시키는 '한국의 알프스'다.그래서 소백산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고들 한다.산 정상에 고위평탄면(高位平坦面)이라고 부르는 널찍한 목가적인 지형은 우리나라에서 영남알프스의 간월재,덕유산의 덕유평전,황매산의 황매평원에서도 볼 수 있지만 소백산이 규모나 풍광에서 으뜸인 듯싶다.

소백산의 최고 정상인 비로봉 일대는 해발 1300~1900m의 전형적인 아고산(亞高山)지대다.바람이 세고 비나 눈이 자주 내리기 때문에 키 큰 나무는 없고 드넓은 풀밭만 조성되었다.철쭉을 비롯하여 수많은 야생화가 자라는데 에델바이스를 닮았다는 희귀식물인 왜솜다리도 눈에 띈다.어의곡삼거리나 천동삼거리에서 비로봉까지 올라가는 마지막 400~600m 구간은 시원하게 탁 트여 있어 연중 칼바람이 불어댄다.풍속이 초속 15m 이상을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비로봉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거나 계단을 내려올 때 몸을 가누지 못하기도 한다.그래서 한 번 세게 당해본 사람들은 분에 못 이겨 '칼바람'이 아니라 '똥바람'이라고 부른다.누구는 그때의 '똥'은 겨울 '동(冬)'자를 세게 발음한 것이라고 하는데,진실은 모르겠다.만일 그대가 소백산 비로봉을 올랐는데 너무도 고요했다면 행운이라고 봐도 된다.

원래 소백산은 5~6월이 되면 연화봉·비로봉·국망봉 부근에 '연달래'라는 고상한 연분홍 철쭉이 만발했다.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울긋불긋한 것이 꼭 비단 장막 속을 거니는 것 같고 호사스러운 잔치 자리에 왕림한 기분"이라며 소백산 철쭉의 아름다움을 묘사했으나,플렉스 홀덤훼손 지역이 늘어나고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갈수록 명성이 쇠퇴하고 있다.그래도 지난해는 모처럼 철쭉 대박을 보였으나,올해는 5월에 철모르고 내린 눈으로 인한 냉해 때문에 아예 철쭉의 흔적조차 발견하기 어려웠다.물론 눈부신 초록의 향연이 철쭉의 공백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지만 말이다.

소백산 비로봉 정상석
소백산 비로봉 정상석


우리나라 최대의 주목 군락지

소백산에서 철쭉과 함께 또 다른 명품은 주목(朱木)이다.'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간다'는 주목은 고고하고 은은한 자태를 드러낸다.제1연화봉에서부터 비로봉 사이의 북서 경사지역(해발 1200~1350m)에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보통 주목의 평균 수령(樹齡)은 350년인데,모두 3798그루가 있으니 우리나라 최대의 주목 군락지라고 할 수 있다.소백산 능선의 부드러운 멋,우아한 곡선미와 함께 주목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이다.

소백산은 소백(小白)이라는 이름 때문에 태백산의 동생쯤 되는 작은 산이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 사이에 걸쳐 322㎢의 면적을 지닌 큰 명산이다.지리산·설악산·오대산에 이어 4번째로 넓다.1987년 우리나라에서 18번째 국립공원이 되었다.한반도의 등뼈라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이 태백산을 지난 뒤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소백산을 조성했다.풍수에 조예가 깊었다는 조선 중기의 학자 격암 남사고는 소백산의 유순한 능선을 보고서 "사람이 살 만한 산"이라며 넙죽 절하고 갔다고 한다.

소백산의 능선을 이루는 봉우리는 여럿이다.가장 남쪽에 동떨어져 있는 도솔봉(1314.2m)을 시작으로,죽령을 건너가면 제2연화봉(1357.3m)→연화봉(1383m)→제1연화봉(1394.4m)→비로봉(1439.5m)→국망봉(1420.8m) 순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며 유려한 산세를 보여준다.설악산과 같은 돌산이 아니라 덕유산과 비슷한 흙산이어서,난이도가 높거나 위험하지는 않다.하지만 거리는 상당해 발과 다리가 아플 수 있다.

소백산에는 어의곡탐방지원센터~비로봉 코스(5.1㎞) 못지않게 천동탐방지원센터~비로봉 코스(6.8㎞)도 인기가 높다.줄곧 계곡을 따라 진행하며 평균경사도 16.21%의 비교적 온건한 탐방로이다.다만 길이가 길어 지루하고 노면에는 돌이 많아 발목 접질림이나 무릎관절 통증을 유의해야 한다.관절보호대나 등산 스틱을 지참하는 것이 좋다.꾸역꾸역 오르다 보면 4.2㎞ 지점에 천동쉼터가 나타난다.예전에는 이곳에서 라면을 끓여 파는 매점이 있었으나,지금은 없어졌다.지쳤을 때 한 젓가락 먹던 라면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비로봉에서 바라본 소백산 능선.
비로봉에서 바라본 소백산 능선.


사실 우리나라 산들의 대피소는 갈수록 서비스의 범위가 축소되고 있다.일본이나 유럽의 산악 대피소를 갔는데 모든 것을 구비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이제 우리나라에서 등산은 전문산악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레저나 체력단련을 하려는 일반 국민의 일상사가 되었다.설악산 중청대피소를 새로 짓는데 숙박 기능을 없앤다고 해서 논란이 많았다.일반인이라면 힘들게 대청봉을 올랐다가 탈진할 수도 있는데 근처에 편히 쉬고 잘 수 있는 대피소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굳이 희운각대피소나 소청대피소까지 가파른 길을 내려가야만 하는가.소백산만 해도 그 넓은 산지에 대피소는 제2연화봉 쪽에 있는 게 유일하다.필자 의견으로는 비로봉 아래에 있는 주목감시초소나 천동쉼터를 대피소로 바꾸면 어떨까 싶다.그리고 우리나라 대피소에서는 왜 에너지바를 비롯해 등산에 도움되는 각종 행동식(산행 중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갈수록 없애고 햇반이나 생수 정도만 파는지도 모르겠다.모든 등산객의 체력이 뛰어나지는 않다.힘들게 산을 오르는 국민이 대피소에서 과자나 간식을 사면 안 되는 것일까.굳이 무겁게 배낭에 담아 와야 하는가.왕초보일 때 탈진한 적이 있는데 하산하는 사람들에게 행동식을 '구걸'했던 기억이 떠올라 하는 말이다.

비로봉을 오르는 코스 중 경북 영주 쪽에서 곧바로 올라가는 삼가탐방지원센터~비로봉 코스(5.5㎞)는 필자가 예전에는 자주 이용했으나 요즘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예전에는 비로사 부근 달밭골 입구에 주차를 허용하여 비로봉까지 거리가 3.4㎞로 가장 짧았으나,2021년부터 주차 무질서를 이유로 차량 진입을 통제하면서 삼가탐방지원센터에서 달밭골 입구까지 2.1㎞ 포장도로를 걸어가야 한다.등산화를 신고 포장도로를 걷는 것은 지루하기도 하거니와 발목에 또 다른 부담을 주어 등산을 시작하기도 전에 에너지 소진이 크다.

소백산에는 비로봉 외에 여러 봉우리가 있는데,거기만 단독으로 올라갔다 내려와도 좋다.희방탐방지원센터~연화봉 코스(3.7㎞)는 매년 5월 말에서 6월 초 철쭉 시즌에 인기가 높다.연화봉 정상에서 소백산 천문대까지 펼쳐지는 연분홍빛 철쭉 군락은 한때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다만 이 코스는 경사가 급한 곳이 있다.희방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여 높이 28m의 웅장한 희방폭포를 지나면 희방사가 나타나는데,거기부터 시작되는 900m 구간은 깎아지른 듯한 길 위에 돌계단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지옥의 깔딱고개로 악명이 높다.평균경사도가 37%나 된다.이미 악명을 자랑하는 설악산 오색~대청봉 5㎞ 구간이 26.3%,더 악명 높은 비선대~마등령 구간도 초반 1.5㎞가 35.2%에 나중 2㎞가 25.3%이니 희방사 깔딱고개의 위세에 한번 도전해 보시라.

입구에 유명한 관광지인 죽계구곡(竹溪九曲)이 자리 잡고 있는 초암탐방지원센터~국망봉 코스(5㎞)도 인기가 높다.초암사를 지나면 원시림을 산책하는 듯한 고즈넉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에 완만한 경사가 이어진다.그러다가 봉두암부터 갑자기 급경사로 바뀌므로 주의해야 한다.국망봉까지 마지막 1㎞ 정도는 '자비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급경사가 이어지는데,이 구간의 평균경사도는 29.3%나 된다.여자 권투선수인 이시영 배우도 이 길을 오르면서 "끝이 없는 듯한 계단 때문에 너무 힘들어,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라고 외쳤다.하지만 국망봉 능선에 도착하면 천상의 놀이동산 같은 널찍하고 푸른 공원이 반겨준다.

천동삼거리에서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길.
천동삼거리에서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길.


경사도가 낮은 추천 종주 코스

"소백산을 한 번 종주하고 싶은데,거리는 좀 길더라도 경사도가 낮으면 좋겠다"는 사람을 위해 추천하는 종주 코스가 있다.바로 죽령휴게소에서 출발하여 비로봉을 거쳐 천동탐방지원센터로 하산하는 방법이다.

5번국도 죽령옛길에 위치한 죽령휴게소에서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한다.평균경사도 16.4%인 콘크리트 길을 따라 4.5㎞를 오르면 제2연화봉에 도착하면서 능선에 올라 붙는다.제2연화봉에서는 국립공원 최고 높이에 있는 산상 전망대에서 소백산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편안해진 몸과 마음으로 2.5㎞를 더 걸어가면 소백산 천문대와 연화봉이 나온다.능선 산행은 크고 작은 오르내림이 있으니 마냥 쉽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이제 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 4.3㎞,평균경사도 14.5%의 능선을 걷는다.다소 빡센 느낌이 들기도 한다.그때마다 능선 오른쪽으로 경북 영주시 풍기읍,왼쪽으로 충북 단양군의 시원한 풍광을 번갈아 내려다보면 힘이 난다.특히 지리산의 세석대피소와 장터목대피소 사이에 있는 연하선경에 필적하는 소백산 연화선경이 예쁘게 펼쳐지면서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고위평탄면을 가로지르는 오솔길의 흔적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그렇게 비로봉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본 뒤,천동탐방지원센터까지 총 6.8㎞를 하산하면 된다.하산길의 평균경사도는 18.2%로 조금만 주의하면 큰 위험은 없으나 잔돌이 많고 거리가 길어 발바닥이 아플 수 있다.

어쨌든 이 코스는 소백산 전체를 제대로 섭렵한다는 의미가 있다.다만 전체 거리가 18.1㎞에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정한 표준 등산시간이 7시간40분에 이르는 긴 구간이므로 자신의 체력과 인내력을 미리 점검해야 한다.능선 구간은 거의 그늘이 없으므로 맑은 날이라면 체력이 크게 소진될 수 있다는 점도 잊으면 안 된다.

소백산 정상 능선에 올라 맑은 하늘이든 안개 자욱한 하늘이든 뚜벅뚜벅 걸으면서 자기 삶을 돌아보고,철쭉이나 야생화나 주목 같은 자연의 친구를 보면서 인사하는 건 인생에서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만일 당신이 소백산을 한 번도 와 보지 않았다면 올해는 결심하고 실행에 옮겨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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