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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
한국인이라면 클리셰처럼 되뇌었던 말이다.아직까지는 희망사항이지만,이 문구는 사라질지 모른다.대신‘산유국 대한민국’이라는 단어가 교과서에 실릴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경상북도 포항 영일만에 140억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하며 온 나라가 술렁인다.아직까지는 가능성일 뿐이다.과거에도 석유 매장 가능성을 언급했다 무산된 사례가 있어 성공을 장담하기 이르다.또한 매장을 확인한다 하더라도 상업적인 개발과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다는 점은 국민을 들뜨게 만들기 충분했다.그는 “1990년 후반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로,석유는 우리나라 전체가 최대 4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판단한다”며 기대감을 부풀렸다.한편,설익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섣불리 나섰다며 정치 이슈로 비화하는 분위기도 있다.
최대 140억배럴 추정…성공 확률 20% 도전
한국은 그간 꾸준하게 바다에서 석유·가스 탐사를 해왔다.이번에는 심해 탐사기술 평가사인‘액트지오(Act-Geo)’에 의뢰해 자원 매장 유망 구조를 도출했다.석유공사는 가스전 발견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추정되는 7개 해역을 정해 각각 해양 생물의 이름을 붙였다.대왕고래는 이 중 가스와 석유가 가장 많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우선 시추 후보 해역이다.다른 곳에는‘오징어‘명태’등의 이름을 붙였다.석유공사는 액트지오 분석을 토대로 오는 12월부터 내년 3월까지 4개월간 1차 탐사에 돌입한다.내년 상반기 1차 시추 결과가 나올 것으로 봤다.이후 잔여 유망 구조에 대한 순차적 탐사 시추를 실시한다.
액트지오가 대왕고래 프로젝트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한 천연가스와 석유는 각각 최대 29년,최대 4년 넘게 쓸 수 있는 규모다.지난 1990년대 후반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다.동북아 지역에서 이례적으로 많다.21세기 최대 규모인 남미 가이아나 광구(110억배럴)보다 많다.정부는 삼성전자 시가총액 5배,야구 엄지보호대1조4000억달러(약 1927조3800억원) 가치가 있다고 추정했다.매장을 확인하는 경우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시설을 설치해 생산을 개시하기까지 약 7~10년이 소요될 듯 보인다.실제 생산 시점은 2035년쯤이 된다.
액트지오의 회사 규모,체납 여부 등 각종 논란이 있지만 비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 고문이 석유·가스 탐사 전문가인 것은 분명하다.그는 엑손모빌에서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선임기술고문으로 일하며 지질그룹장을 지냈다.엑손모빌에서 퇴사한 뒤 2016년 지질 탐사 컨설팅 기업 액트지오를 설립해 가이아나 해역 유망 구조 평가 업무를 이어서 수행했다.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에 따르면 성공률은 20%다.상업적인 성공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지질학적인 성공률 20%는 낮은 확률은 아니다.에너지 전문가들은 “10%만 넘어도 시추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데 추정 근거가 확실하다면 20%는 상당히 높다”고 입을 모은다.또한 인근에 동해 가스전이 있었던 만큼 석유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최경식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도 “교차 검증을 통해 의혹 부분이 해소된다면 높은 확률”이라고 했다.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은 “영일만 7개 유망 광구처럼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기 위한 구조물인 기반암,저류층,덮개암,야구 엄지보호대트랩 등 4대 요소가 모두 입증돼 있는 지형은 매우 드물다”며 “유망 구조 7개가 인근에서 함께 발견돼‘자원 밀도’면에서도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그는 이어 “4개 구조를 모두 갖춰도 석유·가스가 생성된 시기와 이를 가두는 구조 생성 시기가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석유·가스가 고여 있을 수 없다”며 “이 같은‘타이밍’까지 더해 5대 요소를 충족했다”고 말했다.영일만은 석유·가스를 생산하는 근원암이 800만년 전부터 존재해온 것으로 나타나 타이밍에 있어서도 문제가 없다는 분석이다.근원암은 유기물 함량이 높아 압력과 열에 의해 석유나 천연가스를 생성할 수 있는 퇴적암을 말한다.
호주 최대 석유개발회사 우드사이드사가 동해 해저를 15년 조사하고도 유망 구조를 발견하지 못한 것과 관련해선 “우드사이드는 그간 많은 조사와 작업을 진행했다”며 “액트지오는 우드사이드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이번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그는 “우드사이드가 급하게 철수하며 조사해놓고도 분석하지 못한 데이터가 많았고,야구 엄지보호대여기에 더해 석유공사가 별도로 확보한 자료를 종합해‘순차층서 해석’기법을 적용,7개 유망 구조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순차층서 해석 기법은 심해 퇴적물에 쏜 탄성파를 분석해 지질 구조를 분석하는 기법을 말한다.
희망을 가져본다면,영일만 일대는 21세기 최대 유전으로 평가받는 가이아나‘스타브록(Stabroek)’광구와 상당히 유사하다.수십 년간 탐사에도 번번이 좌절을 맛봤던 역사부터 그렇다.
엑손모빌이 가이아나 스타브록의 심해유전을 발견한 건 2015년이지만 그 역사는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가이아나는 글로벌 기업 도움으로 1975년부터 2014년까지 약 40개의 탐사정을 이용해 가이아나와 수리남 연안 탐사에 나섰으나 발견에 실패했다.메이저 석유개발기업인 셸(shell)은 10년간 탐사를 이어오다 2014년 손을 뗐다.
한국도 포항 영일만 일대 탐사가 시작된 건 1960년대부터였다.우드사이드가 철수하기는 했으나 가이아나와 영일만 일대 모두 해저 1000m 이상의 심층 지층을 뚫고 내려가야 한다는 점과 유사한 트랩(석유·가스를 가두는 구조) 유형을 갖고 있다는 점은 비슷하다.엑손모빌 재직 당시 가이아나 리자 광구의 시추 과정에 참여했던 아브레우 고문은 “지질학적인 세팅은 다르지만,트랩 자체는 동일한 유형의 트랩이 발견됐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석유 탐사 역사가‘잔혹사’인 것만도 아니다.박정희정부 시절인 1975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포항 영일만 인근에 시추공 3개를 뚫다 2공구에서 드럼통 한 개 분량 검은 액체를 발견한 바 있다.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듬해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영일만 부근에서 처음으로 석유가 나왔다”고 직접 말했다.그러나 원유라고 청와대에 보고된 물질은 이후 경유로 확인됐다.발견 지점 인근에서 원유로 추정할 수 있는 물질이 발견되지 않았다.결국 시추 작업이 중단되며 박 대통령 발언은‘해프닝’으로 끝났다.
‘진짜’가스가 발견된 건 김대중정부 시절이다.1998년 울산 앞바다에서 양질의 가스층이 발견됐다.이듬해 평가 시추에서 경제성이 최종 확인됐다.당시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현 삼성E&A) 컨소시엄이 설비공사를 수주했고 2002년 착공에 나섰다.동해 가스전은 2004년 11월 상업 생산을 시작해 4500만배럴 가스를 생산하고 2021년 매장량 고갈로 문을 닫았다.동해 가스전은 한국이 세계 95번째로 산유국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는 의미가 있다.당시 천연가스와 초경질유 24억달러 수입 대체 효과를 냈다.
산업자원통상부는 “탐사 기술 자체가 과거보다 많이 올라왔는데,한국은 탐사 결과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이 부족하다”며 “이전부터 자료를 축적했고,최근 분석에서 성공률이 높게 나와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 탐사에 나서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석유 탐사에는 한·일 간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이 숨어 있다.지난 2022년 일본은 30여년 만에 동해에서 석유·가스 개발에 나섰다.일본이 자국 인근 바다에서 해양 가스전 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니가타현 앞바다에서 1990년 생산을 개시한 이와후네오키 유전·가스전 이후 30여년 만이었다.일본이 시굴하는 곳은 야마구치현에서 북쪽 방향으로 약 150㎞,시마네현에서 북서쪽으로 약 130㎞ 떨어진 동해로 수심은 약 240m다.이곳은 한국 8광구·6-1광구와 인접한 지점이다.일본이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선 안쪽이라고 주장하는 곳에서 유전·가스전을 발굴한다면 한국은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다.
한 해양 전문가는 “바다는 통해 있는데 일본이 한국 영해에 있을 수 있는 석유·가스까지 몽땅 가져가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며 “일본이 동해에서 시추에 들어갔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도 일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시추에 들어가는 게 맞다”고 해석했다.
한일 바다 자원 탐사와 관련해 7광구도 재조명된다.7광구는 한일공동개발구역(JDZ)과 겹치는 해역이다.제주도 남쪽 200㎞ 지점에 있는 대륙붕이다.7광구가 처음 알려진 것은 1969년 발표된 유엔(UN) 아시아극동경제개발위원회 보고서에서다.보고서는 “한국의 서해와 동중국해 대륙붕에 바다 기준 세계 최대 매장량의 석유가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2004년 미국 국제 정책연구소‘우드로윌슨센터’보고서에서는 동중국해 천연가스 매장량이 사우디아라비아의 10배에 달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추정 매장량이 나오기도 했다.이에 한국과 일본은 1974년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협정을 맺고 개발에 나섰다.
협정 종료 시점은 2028년 6월이지만,종료 시점으로부터 3년 전인 내년 6월,야구 엄지보호대한·일 중 한쪽이라도 종료를 통보하면 협정이 끝난다.한국은 그동안 일본 측에 공동개발을 요구해왔으나,일본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소극적으로 대처했다.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없었던 이유는 협정 조항에‘반드시 양국이 공동으로 개발을 수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서다.
일본이 소극적으로 나오는 또 다른 이유는 1982년의 UN 국제해양법이 일본에 유리하게 채택된 탓이다.이 법은 대륙붕이 어느 나라와 연결됐는지를 따지는 기존 방식이 아니라,200해리까지를 EEZ로 정하는 방식을 따른다.이대로 협상이 종료되면 7광구의 90%가 일본에 속해 일본으로선 공동개발을 할 필요가 없다.
양국이 손을 놓은 사이 7광구와 가까운 중국 해안에서는 중국 정부가 무단으로 설치한 수십 개의 원유 시추 시설이 운영 중이다.2028년 6월까지로 정해진 한·일 양국의 7광구 공동개발 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7광구 개발에 정부의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이탈을 막기 위해 7광구의 북단과 맞닿은 5광구에 대해 탐사 시추를 독자적으로 추진 중이다.한국의 5광구 개발이 본격화하면 7광구의 석유가‘빨려 나갈’우려가 있어 일본이 7광구 공동개발에 적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
산유국으로 가는 과정은 멀고 험하다.무엇보다 돈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수면에서 1㎞ 들어간 심해에 매장된 만큼 1공 시추에 최소 1000억원 넘게 필요하다.최소 5공이 예정된 만큼 만만치 않은 자금이 필요하다.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영일만 석유 시추 계획 발표를 대통령의 국면 전환용으로 의심하고 공세에 나서고 있다.타당성을 철저하게 따져보고 예산 배정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라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
상업화는 오래 걸리고 수익성도 생각보다 낮을 수 있다.1998년 당시 동해-1 가스전은 탐사 성공 뒤 개발 타당성 평가,계획 수립,채취권 허가 등의 단계 등을 거쳐 2004년에서야 상업 생산이 개시됐다.이후 동해-2 가스전도 2005년 가스전 발견 이후 11년 뒤인 2016년 본격적으로 생산했다.상업 생산에 돌입하더라도 우리가 거둘 이익은 예상치보다 적을 수 있다.우리나라는 심해 시추를 해본 경험이 없다.기술력이 부족한 탓에 해외 투자가 필수다.해외 기업이 지분을 챙겨가면 한국이 얻는 이익은 크게 줄어든다.
[명순영 기자 ]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4호 (2024.06.19~2024.06.25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