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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지법,물류센터 노동자 일방적 계약만료는 '부당해고'
-152명 집단감염 초래한 2020년 코로나19 방역 부실도 인정
-해고 노동자들,쿠팡의 사과와 복직 요구.쿠팡 “항소 예정”
2020년 7월 31일자 해고는 무효임을 확인한다.
- 서울동부지법 제15민사부(재판장 조용래) / 2024.6.13.
쿠팡의 코로나19 방역 실태를 알리고 비판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 2명이 쿠팡을 상대로 낸 해고 무효 확인 소송에서 1심 승소했다.노동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4년 만에 나온 결과다.법원은 노동자들의 부당해고를 인정하고,쿠팡 측에 노동자 복직과 해고 기간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뉴스타파는 2023년 8월 <쿠팡은 바뀌지 않는다> 기획보도를 통해 쿠팡이 회사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물류센터 계약직 직원들을 자의적 기준으로 계약 만료해,부당해고가 의심된다고 보도했다.올해 1월에는 쿠팡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제기한 해고 무효 소송에서 법원이 1심 선고를 3번이나 연기하는 등 석연찮은 이유로 재판이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동부지법,1심 선고 3번 연기 끝에‘부당해고’인정
서울동부지법 제15민사부(재판장 조용래)는 지난 13일,쿠팡 부천물류센터에서 일했던 계약직 노동자 강민정 씨와 고건 씨에 대한 쿠팡의 해고는 무효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강 씨와 고 씨는 2020년 쿠팡 부천 신선센터에서 3개월 계약직으로 일했던 노동자다.이들은 2020년 5월,해당 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쿠팡 측의 부실한 방역 실태를 외부에 알리고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모임'을 만들어 사측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이후 재계약 평가에서 계약 갱신 기준을 훨씬 웃도는 점수를 받고도 같은 해 7월 계약 만료를 통보 받았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2020년 9월,물류센터를 운영하는 쿠팡 자회사인‘쿠팡풀필먼트서비스(이하 쿠팡풀필먼트)’를 상대로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쿠팡 측은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했다.이 과정에서 1심 선고만 3번이 연기되는 등 재판 지연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1심 법원은 4년 만에 노동자들의 손을 들었다.재판부는 “이들의 근로 계약에 대한 갱신권이 인정됨에도 쿠팡이 이를 거절한 것은 합리적인 사유가 없으며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라며 “원고인 노동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쿠팡의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수립 등을 요구한 것은 근로자의 정당한 활동 범위에 속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쿠팡 측에 노동자들이 해고기간의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재판부는 강 씨와 고 씨의 미지급 임금에 선고일까지 연 6%의 이자를,판결 다음 날부터 돈을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이자를 계산해 복직하는 날까지 지급하라고 했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이번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쿠팡 물류센터 계약직 노동자에게 계약‘갱신기대권’이 인정되는지 △갱신기대권이 인정될 경우,노동자가 쿠팡의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비판한 것이 갱신 거절의 합리적 사유가 될 수 있는지다.
법원은 우선 원고들의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고 봤다.갱신기대권이란 노동자 입장에서 근로계약,취업규칙 등을 통해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계약이 갱신될 거라고 기대할 수 있는 권리다.대법원 판례는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는 상황에서 회사가 합리적 이유 없이 갱신을 거절하면 부당해고로 본다
쿠팡풀필먼트는 2020년 당시 계약직 노동자들의 계약 기간을 3개월,9개월,12개월,무기계약 순으로 정한 뒤 평가를 통해 계약을 연장했다.3개월에서 9개월로 갱신되는 기준 점수는 60점이었다.강 씨는 88점,고건 씨는 90점으로 계약 갱신 기준을 훨씬 넘었다.이 같은 평가 기준은 쿠팡풀필먼트 내부 규정에 따라 모든 물류센터에 동일하게 적용됐다.
당시 쿠팡 물류센터 전체를 통틀어 평가 점수 60점 이상 취득자의 계약 갱신율은 90.5%,원고가 속한 부천 신선센터는 95.6%나 됐다.근태 점수가 특별히 나쁘지 않으면 대부분 계약이 갱신되는 분위기였다.원고들도 당연히 재계약이 가능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쿠팡 측은 같은 내부 규정을 근거로 이들에게 갱신기대권이 없다고 반박했다.쿠팡풀필먼트의‘기간제 직원 계약관리 규정’에는‘기간제 직원의 근무평가 결과 기준점 이상인 경우에도 회사가 근로계약 갱신 제안을 할 의무는 없으며,근로계약 갱신 제안 여부는 업무상 필요에 따라 회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고 돼 있다.이 규정에 따라 계약 갱신을 거절한 건 쿠팡의 정당한 인사권 행사라는 입장이었다.
재판부는 쿠팡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재판부는 “당시 근로계약 갱신율 및 갱신 거절 사유 등을 고려하면,원고들로서는 근로계약이 갱신되리라는 기대를 충분히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의 갱신기대권이 인정되고,갱신 거절이 부당해고여서 무효라고 보는 이상 원고들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을 것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복직 시까지 미지급 임금은 지급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갱신기대권이 원고뿐만 아니라 쿠팡의 모든 물류센터 노동자에게 적용된다고도 봤다.판단 근거로는 쿠팡이 자사 뉴스룸 홈페이지에서 △‘계약직 노동자에게 월 3회 이상 상시직 제안을 하고 있다’고 홍보한 점 △쿠팡 물류센터의 비정규직 비율을 비판하는 기사에 대해‘재계약 비율 역시 80% 이상임’이라는 반론을 게시한 점 등을 들었다.
즉,쿠팡풀필먼트 본사 차원에서 계약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기회를 홍보한 만큼,pr이란갱신기대권도 개별 센터가 아닌 모든 물류센터에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본 것이다.
두 번째 쟁점은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했던 물류센터의 코로나19 방역 실태를 알리고,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 해고의 합리적 사유가 될 수 있는지다.
쿠팡 측은 2020년 5월 부천 신선센터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을 당시,회사가 방역 조치를 충실히 했음에도 원고들이 허위 사실을 유포해 직원 간 분란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이에 따라 계약갱신권이 인정되더라도,사측이 재계약을 거절할 합리적 사유가 있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쿠팡 측이 방역 조치를 충실히 하지 않았다는 점을 하나하나 지적하며,이를 문제 삼은 노동자의 행위 역시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쿠팡 측이 △확진자 발생 사실을 모든 근로자에게 알리지 않거나,다수의 접촉자가 파악되지 않는 상황에서 업무를 재개한 점 △물류센터 폐쇄나 재개장 여부에 대해 공지를 원활히 하지 않은 점 △보건당국에 배송 요원의 명단을 늦게 제출한 점 등을 부실 방역의 근거로 인정했다.이로 인해 부천 센터에서 직원과 가족을 포함해 152명이 확진되는‘집단감염’사태가 발생했다고도 봤다.
그러면서 “원고가 기자회견에서 피고의 사과,재발방지 대책 수립,피해 보상 등을 요구한 것은 피고를 비방하거나 손해를 입힐 목적 보다는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과 근로자 복지 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근로자의 정당한 활동 범위에 속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원고들이 산업 재해 요양 중에 해고된 점,국회의원실에 공익 신고한 이후 불이익을 당한 점을 이유로 500만 원의 위자료를 청구한 것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고 노동자들은 4년 만에 받은 1심 승소 판결에 울기도,화내기도 했다.현재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강민정 씨는 해고 이후 암 진단을 받았다.건강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생계 유지를 위해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을 한다.강 씨는 지난 2월 대법원에 재판 지연에 대한 민원을 제기할 정도로 1심 판결을 손꼽아 기다렸다.하지만 정작 선고 기일에는 일하느라 참석하지 못했다.
강 씨는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일하던 중간에 승소 소식을 듣고 혼자 밖에 나와 엄청 울었다”며 “내가 올바른 일을 했다는 것,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한 것 같아서 너무 기뻤다.하지만 1심 판결이 왜 4년이나 걸렸는지 여전히 의아하다.지난 4년을 버티는 동안 건강도,pr이란경제 상황도 너무 안 좋아졌다”고 털어놨다.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쿠팡대책위)는 지난 17일 쿠팡 본사 앞에서 쿠팡의 사과와 노동자 복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또 다른 해고 노동자 고건 씨도 “지난 4년은 너무 길고 억울한 시간이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4년 전 쿠팡은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사실을 숨기고 저와 동료 노동자들을 생명의 위험에 빠트렸습니다.너무도 위험천만한 순간이었습니다.저는 제보를 통해 실상을 알리는 작은 일밖에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조만간 빠른 시일 안에 모든 것이 좋아지리라 생각했습니다.피해 노동자들에 대한 사과와 성의있는 조치를 기다렸지만 제게 돌아온 것은‘해고’노동자라는 이름표였습니다.지난 4년은 너무도 길고 억울한 시간이었습니다.이제는 해고노동자가 아닌 쿠팡 노동자로 돌아가겠습니다.(쿠팡은) 이제라도 당신들이 붙인‘해고’라는 꼬리표를 스스로 떼어내는 양심을 보이십시오.
- 고건 씨 / 부당해고 당사자(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모임 대표)
이번 소송을 담당한 조영신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이번 판결은 법원이 모든 쿠팡 물류센터 계약직 노동자의 갱신기대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쿠팡에 정당한 문제제기를 했다가 해고된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좋은 선례와 지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대책위의 권영국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쿠팡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도 주목할 지점이 있다고 했다.권 변호사는 “쿠팡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원고들의 사유는‘허위사실 유포’였다”며 “이번 판결로 쿠팡 블랙리스트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행위임에도 사측의 편의와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작성됐음이 더욱 분명해졌다.노조 간부 등 블랙리스트에 오른 다른 노동자들의 부당해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뉴스타파는 쿠팡 측에 이번 판결에 대한 입장과 해고 노동자 복직 계획 등을 물었다. 쿠팡 측은 “해당 건은 원고들의 계약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계약이 종료된 것이며,당사는 이 부분에 대해 항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