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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여행 일본 후지산②
갑자기 내린 비,바람에 휘청이며
다시 마주한 3710m 산정 화구
3776m 미지의 겐가미네봉으로
서늘한 바람 부니 붉은 모래 먼지가
3합목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저 멀리 방울 소리를 내며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간격을 좁혀 그에게 다가갔다.오늘 날씨가 좋다고,몇시에 어디서 출발했냐고,2022년 fifa 월드컵 대진표먼저 갈 테니 조심히 오라고 그를 뒤에 두며 안심했다.나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을 만나 반가웠다.그러다 머지않아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과 만났다.그는 하산 중이었다.빠르게 지나가는 통에 말을 나눌 수는 없었다.다만 그저 그가 어디에서 오는지,2022년 fifa 월드컵 대진표그의 정상은 어디였을지,그가 사라진 길 위에서 그가 오고 갔을 길에 대해 짐작해볼 뿐이었다.
후지산을 오르는 동안 무너져내린 과거의 신사와 마주쳤다.에도 시대 당시 후지산 신앙을 따르던 수행자들이 걸었던 길.한때는 성행했으나 이제는 쇠잔해진 풍경을 보며 지나간 한 시절의 영광에 대해 생각했다.영원할 것 같아도 결국에는 끝이 있는 모든 일들.하지만 그 순간에는 최선이었을 모든 일들.마치 영원할 거라 믿는 지금 이 시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다.궁극의 목표를 향해 극진히 오르고 올랐을 선대의 사람들과 지금의 내 모습은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을 따라 서둘렀다.갈지자로 하염없이 뻗어가며 꾸준히 고도를 높여가는 산길 위에 나의 거친 숨을 보탰다.길 위에서 낯선 숨과 숨이 스쳤다.그러다 멈춰 서서 위아래로 까마득히 펼쳐지는 풍광을 번갈아 바라봤다.지금부터 걷는 모든 길은 그 자체로 거칠 것 없는 야생 전망대였다.왜냐하면 5합목부터 정상까지 후지산에는 나무가 단 한 그루도 없기 때문이었다.고산의 화산인 후지산에는 수목한계선(고산 및 극지에서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경계선)이 있고 나무나 풀,꽃 등의 생명은 그 너머에서 살 수 없다.
고지대의 서늘한 바람이 불 때마다 후지산의 붉은 모래가 먼지처럼 일어났다.그것은 마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는 것 같았다.나무 한 그루 없는 이 텅 빈 산이 무엇도 숨길 수 없고 감출 수 없는 내 마음의 배경이라면,그 속에서 차츰차츰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붉은 모래는 내 마음에 숨어 있던 어떤 상처 같았다.숨길 수 없고 감출 수 없는,그래서 결국 작은 바람 앞에서조차 견디지 못하고 끝내 흘러내리는 나의 오래된 상처 속을 한동안 말없이 비척대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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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길을 저벅저벅
잠시 벤치에 배낭을 벗어두고 지금까지 올라온 길을 내려다봤다.켜켜이 쌓여 있는 안개가 걷힐 때마다 세상이 열리고 또 닫혔다.있는 것이 돌연 거짓말처럼 없는 것이 됐고,그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저 그 시간에 익숙해지려고 했다.그러다 보면 보이지 않았던 것이 희미하게 보이기도 했고,없는 것이 돌연 있는 것이 되기도 했다.한데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사방이 환하게 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터져버리는 감탄은 도무지 막을 도리가 없었다.나는 아름다운 것을 선명하게 보고 싶었다.
모래와 자갈뿐인 불모의 산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중심을 잡았다.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잠시 흩날리는 비바람에도 아찔하게 휘청거렸다.하지만 이번에는 7년 전처럼 쉽게 물러서지 않으리라.방수 재킷의 모자를 정수리까지 단단히 뒤집어쓰고 정상에서 내려오는 비바람을 뚫으며 바윗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그리고 이윽고,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감이 강하게 밀려오는 순간,9합목의 관문을 지나 후지산 산정 화구(해발 3710m)에 도착했다.돌연 화창한 하늘 아래 어디선가 올라온 무수한 사람들이 산정 화구에 도달한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화구 근처로 다가갔다.7년 전 처음 마주했던 이곳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의 아득한 소행성 같았다.저 멀리 반대편으로 후지산 정상인 해발 3776m 겐가미네봉이 보였고,또 그쪽으로 부지런히 이동하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였다.7년 전 그날의 장면이었지만 오늘 이 산은 나에게 새로운 산으로 다가왔다.다시 시계를 확인했다.오후 3시,아직 시간이 있었다.신발 끈을 고쳐 묶고 겐가미네봉으로 향했다.여기서부터는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미지의 땅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장보영 등산여행가
스물다섯 살에 우연히 오른 지리산에 매료된 이후 히말라야와 알프스,아시아의 여러 산을 올랐다.그러다 산을 달리기 시작했고 산악 잡지도 만들었다.지은 책‘아무튼,산’은 산과 함께한 청춘의 후일담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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