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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당 주최‘피해자와 함께하는 교제폭력 처벌법 정책 간담회’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해서 수사해야”
“피해자에게 원인 찾는 분위기도 문제”
“1997년 제정된 가정폭력처벌법 개정 선결 필수”
'교제폭력' 피해자 가족과 피해자 유가족이 7일 여성의당 정책위원회가 주최한 '피해자와 함께하는 교제폭력 처벌법 정책 간담회'에 참석했다.ⓒ여성의당 "저희 딸이 신고를 11번 했습니다.신고만 11번이지 친구들이 (폭행을) 말린 횟수는 더 많고,
상혁신고를 하지 않은 것도 많습니다.가해자가 저희 딸의 얼굴을 주먹으로 서너 차례 때리고,
상혁발로 배를 가격했습니다.그런데 저희 딸이 한 대 때렸다고 쌍방폭력으로 처리됐습니다.이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거제 교제살인사건 피해자 유가족의 말이다. 7일 서울 동작구에서 개최된 '피해자와 함께하는 교제폭력 처벌법 정책 간담회'에 참석한 교제폭력 피해자 가족과 유가족은 교제폭력의 입법공백을 지적하고,
상혁관련 법체계 마련을 호소했다.
이날 이 자리에는 거제 교제살인사건 피해자 유가족,바리깡 폭행남 교제폭력사건 피해자 가족,
상혁인천 스토킹살인사건 피해자 유가족 등이 함께했다.
교제폭력과 관련된 법안은 지난 19대 국회 때부터 몇 차례 발의된 적 있으나 번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다만 최근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에서 조금씩 교제폭력 대책 마련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성가족부 역시 교제폭력 발견부터 피해회복까지 연계한 유기적인 서비스를 제공,피해자의 빠른 회복을 돕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범정부 차원의 협력이 부재한 탓에 대응 방안의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간담회 참석자들 역시 교제폭력을 둘러싼 정부와 정치권의 소극적인 대응,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미비한 법체계를 지적했다.
박진숙 여성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여성들이 교제폭력으로 일상의 위험에 노출되고 동료 시민의 죽음에 비통해하고 불안해하는 동안 정부와 국회는 소극적인 대처로 일관했다"며 "얼마 전 여가부에서 대책을 내놓았으나 수년간 이어진 논의를 반복하거나 부실한 대응책을 내놓는데 그쳤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교제폭력으로 검거한 피의자 수는 2020년 8951명에서 2023년 1만3939명으로 급격하게 늘었다. ⓒ여성신문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해서 수사해야"
교제폭력은 '친밀한 관계 또는 친밀했던 관계였던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가리킨다.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를 다루는 별도의 법률이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이로 인해 교제폭력은 일반 폭행 등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교제폭력은 스토킹이나 가정폭력과 달리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된다.이 때문에 보복에 대한 두려움 혹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아울러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분리하고 보호할 수 있는 보호 장치가 미비한 실정이다.
거제 교제살인 사건 피해자 유가족은 "가해자가 앞에 있으면 경찰에게 처벌해 달라는 말을 할 수 없다.집 주소와 연락처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보복이 두려워 처벌해달라는 말을 하기 어렵다.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출동했을 때는 반드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한 다음에 조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제폭력을 연인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소한 일로 치부하거나 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에게서 찾는 분위기 역시 피해자의 죄책감을 키우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이 밖에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친밀한 관계였다는 점을 악용해 선처와 합의를 종용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바리깡 폭행남 교제폭력사건 피해자 가족은 "(가해자 측에서) 결혼을 약속한다고 주장한다.(피해자는) 학업을 이어가고 있고 꿈이 있는 아이인데,(상대방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저희는 그쪽 부모의 연락처도,부모가 무슨 일을 하는 지도 모르는데 사건이 발생한 뒤 밀접한 관계였고,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식으로 방향성을 잡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천 스토킹 교제살인사건 피해자 유가족도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왜 도망가지 않았냐','왜 남자친구가 문을 열 수 있도록 비밀번호를 알려줬냐'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다"며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분석해서 이에 걸맞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가운데)이 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제폭력 처벌을 강화하는 '가정폭력 및 친밀한 관계 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발의하고 있다.ⓒ정춘생 의원실 "1997년 제정된 가정폭력처벌법 개정 선결돼야"
현재 교제폭력을 법적으로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나뉜다.
먼저 별도의 법률을 제정하는 것보다 가정폭력처벌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해 교제폭력 조항을 포함해야 한다는 제언이 있다.하나의 사건 안에서 교제폭력과 스토킹,
상혁가정 폭력 등 여러 유형의 범죄가 교차해서 발생한다는 이유에서다.아울러 폭력 유형에 따라 이원화된 지원체계가 피해자에게 혼선을 주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은 "교제폭력을 새로운 법안으로 만드는 방안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며 "교제폭력이 다른 양태로 발전돼 나갈 수 있다.이 외에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형태의 폭력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를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소장은 먼저 1997년 제정된 낡은 가정폭력처벌법을 대수술하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가정폭력처벌법으로 가해자가 처벌받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무력화된 법안"이라며 "가정폭력처벌법으로 기소되는 비율이 최근 5개년 6~8% 정도에 불과하다.유죄 비율도 아닌 기소 비율이 이 정도 수준에 그친다면 법이 제대로 된 처벌의 기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서 비롯된 특수성을 반영해 교제폭력과 관련된 별도의 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이예은 여성의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인식의 전환 차원에서 교제폭력 처벌법이라는 별도로 필요하다"며 "스토킹범죄처벌법의 경우에도 20년간 국회에 계류됐다 제정된 이후 스토킹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이 대두되기 시작했다.교제폭력도 마찬가지다"라고 주장했다.
이 의장은 이어 정부 차원에서의 교제폭력 인식 전환을 위한 대국민 캠페인 및 국회에서의 교제폭력 법안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을 제안했다.그는 "국회에서 벌써 (교제폭력 관련 법안을) 발의했는데 이를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해야 한다"며 "젊은 여성이 죽어가는 동안 국회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밖에도 이 자리에서는 수사기관이 교제폭력을 단순히 쌍방폭행으로 처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사 매뉴얼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이경하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쌍방폭력으로 처리돼 피해자 보호의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수사 매뉴얼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교제폭력 신고가 접수되면 주 가해자가 누군지 판단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의무적으로 작성하도록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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