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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미조직·비정규직' 삼중고 이주노동자들."노조 없어 목소리 없고,표 없어 대표 없다"
"평소에 화성에서 외국인 한 두 명 죽는 건 뉴스로도 안 나와요." - 정경희 화성노동안전네트워크 상임대표
23명 사망자 중 18명이 외국인이었던 경기도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는 2024년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이들은 어느 변방 구석이 아닌 수도권 도시에 있었음에도 한국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었다.목숨이 위험해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동조합이 없고,'표'도 되지 않아 정치·행정으로부터 소외돼있기 때문이다.
28일 지역사고수습본부 발표에 따르면 아리셀 참사 사망자 23명 중 17명이 중국 국적,5명이 한국 국적,1명이 라오스 국적이었다.외국인 사망자 대부분이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조차 들지 않은 상태였다.이들을 아리셀에 알선한 곳은 무허가 업체였다.
제조업에서 파견 계약은 불법이고 도급 계약이라면 업무지시가 불법인데,아리셀 측은 대표이사가 직접 나온 공식 기자회견에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들과의 관계가 '파견'인지 '도급'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했다.불법에 무감각했다는 얘기다.위험 물질인 리튬을 취급하는 공장임에도 불구하고 노동부나 화성시청은 안전 점검을 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그나마 아리셀은 규모가 있는 회사라고 입을 모은다.노동부 자료에 의하면 아리셀의 상시근로자는 43명이었다.아리셀 측에 따르면 이외 외국인 비정규직은 53명에 달했다.아리셀의 모회사인 에스코넥은 삼성전자와 삼성SDI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사로 알려져 있다.이용근 더큰이웃아시아 상임이사는 "산업단지가 몰려있는 화성에는 아리셀보다 작은 중소 영세기업이 훨씬 많다"면서 "그쪽은 문제가 더 심각할 것"이라고 했다.
참사 현장 주변에서 만난 한 자동차 부품업체 노동자(55·여)는 "아리셀 공장뿐만 아니라 이곳 전곡산업단지 대부분이 최저시급"이라며 "나이가 아주 많지 않은 이상 한국인은 잘 오지 않는다"고 했다.실제 전곡산단에서는 어딜 가나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의 모습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아리셀 인근 한 금속 가공업체 소속 노동자(60·남)는 "화학물 등 위험한 걸 다루는 공장이 많기 때문에 산단이 외진 곳에 있는 것"이라며 "이번에 많이 죽어서 그렇지,외국인 한 둘 죽는 건 일도 아니다"라고 했다.
이는 통계로도 증명된다.지난해 전국에서 일하다 사고로 죽은 노동자는 총 812명이었는데,이중 10%가 넘는 85명이 외국인이었다.전체 취업자(2841만 6000명) 중 외국인이 3%(92만 3000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사망 비중이 4배 가까이 높은 것이다.
"노조 없어 '목소리' 없고,표 없어 '대표자' 없다"
"외국인 없으면 경제 안 돌아가는 걸 국가가 뻔히 알잖아요.그냥 쓰고 버리는 거죠." - 박유리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사무국장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각지대에 머무는 이유는 그들에게 발언권이 없기 때문이다.참사가 난 아리셀 공장은 물론 전곡산단 전체에 제대로 된 노동조합이 없었다.조직이 없다는 건 참사가 나도 정부나 사측에 의해 정보가 통제된다는 것을 뜻한다.정경희 화성노동안전네트워크 상임대표는 "노동조합 같은 조직이 없어 사고 후 실태 파악이 불가능했다"라며 "대형 산재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초기 증언 수집이나 피해자 권리 홍보가 중요한데,이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박유리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사무국장은 "한국 사회 노조 조직률이 13% 정도지만,대공장이 아닌 중소영세 공장들,2023 G70 슈팅브레이크그 중에서도 외국인들은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불안정한 지위에 있어 노조 조직률이 극히 미미하다"라고 했다.그는 "과거 이천 화재 참사 이후에도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 유가족들이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는데,외국인 입장에선 다른 나라 정부(한국)와 싸워야 해 일찌감치 포기하기 때문에 추후에도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했다.지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땐 외국인 노동자가 13명 사망했고,2020년 이천 물류창고 화재 땐 외국인 노동자 3명이 사망한 바 있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이주노동자들도 노조를 만들고 단체 활동을 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돼야 산재도 줄일 수 있다"라며 "정부는 물론 한국의 노동조합과 시민사회가 이주민 조직에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김 대표는 "이주노동자들은 지금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국민 밖의 국민,내부 식민지 상태"라며 "우리 사회는 이들을 계속 이대로 둘 건가"라고 했다.
"'외국인 밀집' 화성에서 한둘 죽는 건 뉴스도 안돼.이대로 둘 건가"
이용근 상임이사는 "외국인 노동자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이 '표'가 되지 않는 집단이기 때문에 정치권과 정부·지자체로부터 경시되는 측면이 있다"고도 지적했다.열악한 처지에 내몰린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정작 투표권이 없어,이들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공적 자원이 충분히 배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경희 상임대표는 "화학 물질을 사용하는 기업이 많아 그간 화성시에 안전 점검과 시정 조치를 수도 없이 요구했지만,예산 부족 핑계를 대며 공허한 메아리만 울렸다"면서 "하지만 화성시는 재정자립도 1위를 기록할 정도의 부자 도시"라고 했다.실제 화성시는 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를 제치고 전국에서 가장 높은 재정자립도(60.4%)에 오른 바 있다.화성시는 전국에서 이주노동자가 가장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화성시 등록외국인은 4만 7999명으로 전국 최다였다.2022년 기준 화성시 산재사망자는 42명으로,역시 전체 1위였다.
이용근 상임이사는 "당장 정부나 지자체의 전향적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환경 분야에 민간 환경감시원 제도를 두듯 노동 현장에 대해서도 민간이 보다 적극적인 감시자로 참여하는 제도가 필요해 보인다"라며 "민관 협력 거버넌스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참사 후에도 밤늦도록 불 밝힌 화성 공장들… '뉴 한국인력 355-XXXX'
발언권도,2023 G70 슈팅브레이크대표하는 정치세력도 갖지 못한 외국인 피해자들은 참사 후에도 우왕좌왕해야 했다.올가을 결혼을 앞뒀던 39세 딸을 잃은 중국 동포(조선족) 채성범(73)씨는 참사 후 이틀 동안 정부와 회사로부터 그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대신 중국대사관으로부터 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먼저 들었다고 했다.지난 26일 밤에야 처음 당국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27일 딸의 시신을 확인한 채씨는 "몽땅 다 타버렸다.내 딸이 아닌 것 같다.믿을 수 없다"며 오열했다.
채씨는 "내가 할 수만 있다면 거기 아직 남아있는 모든 외국인들 보고 다 떠나라고 하고 싶다"고 했다.아리셀 공장 참사 다음날에도 전곡산단 내 주변 공장들은 밤 10시 넘어서까지 불을 밝히고 있었다.창 속으로 보이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외국인들이었다.전곡산단 공장 담벼락과 전봇대엔 '뉴 한국인력 355-XXXX' 같은 전단지가 수도 없이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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