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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삶도’시즌2 : 실패연대기]
시나리오 작가 정서경①
‘친절한 금자씨’부터‘헤어질 결심’까지
박찬욱 감독과 함께한 시나리오 작가
한예종 땐 “회생 불가 각본” 평 듣기도
‘첫 시나리오’두 편 묶어 책으로 출간
정서경 작가를 21일 서울 한남동 작업실에서 만났다.그는 2005년‘친절한 금자씨’부터 2022년‘헤어질 결심’까지,박찬욱 감독 영화의 각본을 박 감독과 집필했다.최근에는 드라마로 지평을 넓혔다.정다빈 기자‘여기서 웃어야 하는데···’
싸늘한 객석 분위기에 정서경(49) 작가는 당황했다.영화‘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개봉 때다.그가 박찬욱 감독과 함께 각본을 쓸 때 “떼굴떼굴 구르며 웃었던” 대목이었다.
그런데 웃는 사람은 오로지 한 명.옆에 앉은 자신의 친구뿐이었다.관객은 영화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느낌”,그것이었다‘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그가‘친절한 금자씨’(2005)에 이어 박찬욱 감독과 함께한 두 번째 작품이다.정신병원이 배경인 로맨틱 코미디.자신이 사이보그라고 믿는 영군(임수정)과 남의 특징을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순(정지훈)이 주인공이다.
돌아와 포털 사이트의 관객 평점을 봤다.주인공 이름이 영군과 일순인데,평점도 0과 1이 대다수였다‘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관객 수는 결국 73만 명에 그쳤다.
“괴로웠어요.하지만 이유를 알고 싶었어요.그래서 댓글까지 다 읽고,생각하고 또 생각했죠.정말로,
슬롯 타이 산이유를 알고 싶었거든요.”
왜 관객의 마음에 다다르는 데 실패했는지,그땐 몰랐다.그러나 이것만은 알았다.괴롭지 않고서는 알아낼 수 없다는 것.그는 괴롭기를 포기하지 않았다.그렇기에 지금의 정서경이 될 수 있었다.그가 걸어온 길은 순탄했으리라 예상했다.실패나 절망이 얼룩덜룩한 여정이리라고는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개봉일 기준 데뷔작인‘친절한 금자씨’부터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은‘헤어질 결심’(2022)까지,탄탄한 성공이 정서경을 만들었을 거라 여겼는데.
“지금도 (시나리오를 쓸 때) 날마다 실패해요.내가 알고 있는 모든 길을 다 탐색했는데도 모두‘별로다’싶으면 정말 절망스럽거든요.그런데 그렇게 깊이 절망하고 나면 길이 생기더라고요.”
길을 찾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그에겐 그렇다.이제껏 걸어온 길은 모두 부수고 매번 다른 길을 개척해,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여정이었으니.“박찬욱 감독님과 시나리오를 쓸 때도 이런 원칙만이 있었어요‘그 어떤 클리셰(상투적인 표현)와도 비슷하지 않게 쓴다.”
드라마라는 새 장르에 도전한 이유도 그 연장선이다‘박찬욱 감독의 정서경’이 아닌 자신의 이름 석 자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장르였다.“사춘기가 지나면 인간은 독립하고 싶어지잖아요.”
그는 드라마‘마더’(2018)로 틀에 박힌 모성을 전복하고‘누구나 엄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작은 아씨들’(2022)에선 돈이라는 세속적 욕망의 도구와 맞물려 성장하는 자매들의 서사를 그렸다.이제 정서경은,그 자체로 하나의 역동적인 장르다.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내년 초 디즈니+(플러스)에서 방영될 그의 세 번째 드라마‘북극성’에선 그 장르가 어떻게 진화할지 기대되는 이유다.
정 작가를 21일 서울 한남동 작업실에서 만났다.손엔 막 인쇄소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책이 들려 있었다.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영상원 졸업 작품인 시나리오 두 편을 묶은‘나의 첫 시나리오’(돌고래)다.23년 전‘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정서경’이 이 책 속에 있다.그는 “시나리오를 어떻게 쓰는지는 설명만으로 절대 알 수 없고,알려줄 수도 없기 때문에 정말 부끄럽지만 내가 나의 첫 시나리오를 보여준다”고 서문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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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를 너무 못 써서 다른 길을 찾았다
그는 웃음이 많은 사람이다‘실패의 기억’을 말하면서도 조곤조곤하고 다정한 톤을 잃지 않았다.정다빈 기자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진로를 철학과로 정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어감이 멋지고 품위 있으며 중성적이라서.그렇게 들어간 서울대 철학과를 4학년 때 그만두고 한예종 영상원 시나리오과에 들어갔다.
-철학과를 택한 결정이 실패였나요.
“저는 철학을 공부하기에 논리적 사고력이 부족한 사람이었어요.인간과 세계를 둘러싼 비밀을 알게 될 것 같았는데,실제 다녀보니 아니더라고요.특히 비트겐슈타인!저는 그것을 통과하지 못했어요.논리철학이 전공필수였는데,영원히 통과할 수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 뒤 시나리오를 전공한 이유는요.
“어릴 때부터 막연히 뭔가를 쓰면서 살게 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글이 아닌 다른 일을 할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은 것 같아요.영화를 좋아하기도 했고요.”
-대학을 그것도 4학년 때 그만두기는 쉽지 않은데.
“이렇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걸 알지만,저는 인생의 여러 선택을 대부분 충동적으로 정하면서 살았어요.시나리오도 그렇게 쓰죠.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쓰지 않으면 재미가 없어요.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면 늘‘우대’해요.”
-시나리오 전공은 어땠나요.
“힘들었어요.내가 과연 여기에 맞는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죠‘아,이거 큰일 났는데’싶었으니까.어떤 것들은 노력하면 될 수 있을 거 같잖아요.그런데 시나리오를 쓰는 일은 그런 차원이 아닌 너무나 막막한 세계였어요.”
그는‘나의 첫 시나리오’에서 이런 일화를 들췄다.영상원 첫해였다.교수는 모든 학생 작품 중 그의 것만 콕 짚어서 “회생 가능성이 없으니 처음부터 다시 쓰라”고 했다.
-이유가 뭐였나요.
“제가 쓴 이야기에선 뭘 찾아낼 수 없다는 뜻인 것 같았어요.말하자면,진실이 없다는 거죠.저의 인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의미 아닐까 싶어요.이 시나리오는 버려야 한다고 하셨죠.”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한동안은 빨리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했어요.제가 공부엔 자신이 있었거든요‘나는 공부를 잘하는데 왜 시나리오를 쓰려고 여기에 왔지’싶었죠.그래서 미술사나 예술사를 공부하려고 하기도 했어요.시나리오를 너무 못 쓰니까‘시나리오 작가를 지망한다’고 마음먹거나 말하기조차 쑥스럽더라고요.”
휴학 후 떠난 어학연수가 의외의 전환점이 됐다.
-미국에서 어땠나요.
“정체성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죠.나를 아는 사람도 없고,한국어도 쓰지 않았죠.꿈도 영어로 꿀 정도였어요.이렇게 말하면 미국에 한 3년은 산 사람 같지만,
슬롯 타이 산고작 3개월이었는데 그랬죠(웃음).저를 둘러싼 모든 게 사라지고 하나만 남았어요,시나리오‘빨리 한국에 돌아가서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나는 시나리오를 써야지만 한 인간이 되겠구나’싶더라고요.”
-돌아와서 다시 쓰기 시작한 건가요.
“아침저녁으로 식탁 앞에서 시나리오만 썼어요.그 기억 때문에 지금도 글은 불편한 의자에서 잘 써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죠.허리를 자기 힘으로 세워 앉아야 하는 의자요.”
그의 작업실엔 편안한 소파가 마주 보고 있다.그러나 책상 앞은 쿠션이 없는 딱딱한 의자가 놓여있다.자기 힘으로 허리를 세워야 앉을 수 있는 의자,그가 글을 쓰는 곳이다.정다빈 기자자연스레 그의 작업실 의자들에 눈이 갔다.이른바‘시스템’의자가 아닌 딱딱한 기본형 의자였다.그 시절 식탁 앞에서 쓴 작품이‘나의 첫 시나리오’에 실린‘불쌍한 우리 아기’와‘대전 일기’다.그는‘불쌍한 우리 아기’는 자신의 엑스레이 사진에‘대전 일기’는 스냅 사진에 빗댔다.역시 엑스레이 사진이 다소 난해했다.그렇지만 두 작품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여성이 주인공이며,전형을 깨는 엄마가 등장한다는 것.현재의 그가 쓰는 시나리오의 원형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작가 정서경의 눈으로 두 작품을 보면,미진한 대목이 보이겠죠.
“미진한 정도가 아니라 영화가 될 수 없는 시나리오죠.특히‘불쌍한 우리 아기’가 그래요.시나리오는 (이 글이 영화가 돼서) 관객이 있을 거라고 가정하고 쓰거든요.관객에게 익숙한 장치들이 있어야 이해가 되는 장르예요.그런데‘불쌍한 우리 아기’는 그런 걸 하나도 넣지 않고 써보려고 했던 기억이 나요.”
-왜 그랬나요.
“다른 사람이 좋아할지,안 좋아할지 생각하지 않고 썼거든요.쓰고 나서 성공했다는 느낌이 들었죠‘내가 이걸 끝까지 다 쓰다니 대단하다.내가 정말로 썼구나’싶었어요.물론 단행본으로 발간돼 누군가가 볼 걸 생각하면 부끄럽지만,저 자신한테는 그런 적이 없죠.애초에 남한테 보여주려고 쓴 시나리오가 아니니까‘내가 나에게 보여주려고 이걸 썼어’라는 생각에 참 좋았어요.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죠.”
-엑스레이 사진보다는 스냅 사진인‘대전 일기’가 더 이해하기 쉽더라고요.
“처음으로 구조를 세워두고 쓴 시나리오죠.실제 대전에 사는 사촌 동생들을 돌보러 간 적이 있기도 했고요.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간 뒤에 가장 마지막에 주인공의 서사가 나오죠.결국 이것이 다 자신의 이야기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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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은 실패했지만,
슬롯 타이 산두 남자를 만났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다닐 때 졸업작품으로 쓴 시나리오 두 편을 처음으로 공개했다.27일 발간된‘나의 첫 시나리오’(돌고래)에서다.그의 앞에 책이 놓여있다.정다빈 기자-단편‘전기공들’도 보고 싶었는데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만약 있다면 찾아가서 파괴할 거예요.제 것도 없앴지만,혹시 누가 갖고 있다면 가서 망치로 VHS 테이프를 부술 용의도 있어요.그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제가 실패한 일이 많네요.다 잊어버리고 있던 거였어(웃음).”
‘전기공들’은 그의 유일한 연출작이다.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 지원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갖고 있던 테이프도 다 없앴다니.
“한예종 영상원을 졸업하려면 연출을 해야 했어요.나중에 시나리오과가 없어지고 영화과가 됐거든요.그래서 4학년까지 장편 시나리오만 쓰다가 단편 시나리오를 써서 공모에 낸 거예요.(이스트만 단편영화 지원작으로) 당선이 돼서 지원도 엄청 받았죠.그런데 저는 영화를 찍는다는 게 뭔지 전혀 몰랐어요.”
-어떻게 했나요.
“한예종 친구들에 다른 학교 출신들까지 훌륭한 스태프와 배우들을 모아서 영화를 찍었어요.저만 문제였죠.정말 죽어버리고 싶었어요.현장에서 다 저만 쳐다보는데 정말 무섭더라고요.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데.화장실에 가서 이대로 저 창문 밖으로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렇지만 그 영화 덕분에 그는 두 남자를 만났다.박찬욱 감독과 남편이다.박 감독은 이스트만 공모전의 심사위원이었고,남편은‘전기공들’촬영을 도와주러 온 동국대 연극영화과 출신 스태프였다.
-그래도‘전기공들’시나리오를 보고 나중에 박찬욱 감독이 연락을 했다고 들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전기공들’을 보신 뒤에,제가 졸업작품으로 쓴 두 작품도 구해서 보셨더라고요.박 감독님은‘전기공들’을 좋아하셨어요.언젠가는 스태프들하고 모여서 보고 계시더라고요.제가 당황스러워하니까‘재미있는데,왜’그러시더라고요.”
-박 감독의 연락을 받고서 어땠나요.
“그때 저는 박 감독님을 잘 알지 못했어요.마침‘올드보이’가 한창 상영될 때인데 영화도 보지 않았고요.감독님을 만나기 전날 하필 작업실에서 잔 거예요.옷도 리본에 레이스가 달린 치마 같은 걸 입고 있었고요.잠시 고민했죠.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을 것인가,그 시간에‘올드보이’를 볼 것인가.영화를 택했죠.엄청 재미있었어요.그래서‘재미있는 영화를 찍는 감독이구나’했어요.만나서‘영화 잘 봤습니다’라고 했죠(웃음).그때 박 감독님은 지금의 박 감독님이 아니었어요.칸영화제에서 상을 타기 전이기도 했고요.그때 감독님이 제게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제안하셨죠.”
‘박찬욱 학교’에 입학한 순간이다.
-그런 표현을 한 적이 있죠‘나는 박찬욱 감독 학교의 학생’이라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감독님을 만났으니까요.박 감독님의 놀라운 점 중 하나는 원하는 게 뭔지 즉시 알아낸다는 거예요.제가 시나리오를 써가면 그중에서 재미있는 건 바로 골라내시죠.그렇지 않은 것엔 무관심이에요.감독님은 제가 써간 여덟 개의 신(scene) 중에 한 신만이 괜찮아도,그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식이었죠‘내가 너보다 잘 알아’라는 태도를 보인 적도 없고요.뭘 어떻게 쓰라고 먼저 제시하시지도 않아요.컨펌 속에서 자연스레 배워나가는 거죠‘아,감독님은 이런 신을 마음에 들어 하는구나’하고.좌절감이 들게 하지 않으셨죠.그래서 끊임없이 다시 쓸 수 있었어요.제가 지닌 장점을 잘 알아봐 주신 분이죠.”
◇“박찬욱 감독과 공유한 원칙,무조건 다르게”
그는 "살면서 대부분의 결정을 즉흥적으로 했다"고 말했다.등장인물의 이름도 그가 나오는 장면을 쓸 때 순식간에 정한다.보조작가가 "언제 이름을 정해두셨어요"라며 깜짝 놀랄 정도로.그가 내년에 방영될 드라마‘북극성’의 대본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정다빈 기자한때 그와 박 감독은 컴퓨터 하드 디스크 하나에 모니터 두 대와 키보드 두 대를 각각 연결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뇌는 하나에 팔다리가 네 개’인 셈이었다.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관계였다면 불가능한 방식이다.
-‘박찬욱 학교’에서 배운 건 뭔가요.
“관성적으로 쓴 건 하나도 채택되지 않았어요.그러니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지 모르는 채로 한 신,한 신 써나갔죠.마치 세상에 시나리오 쓰는 방법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비슷한 정신을 가진 두 사람이,어떤 장르적인 클리셰와도 비슷하지 않은 걸 쓰자는 원칙을 공유하면서 써나간 거죠.그런‘2인조 시나리오단’같았어요.”
그렇게‘친절한 금자씨’(2005)부터 시작해‘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박쥐’(2009)‘아가씨’(2016)‘헤어질 결심’(2022)의 각본을 함께 썼다.
-영화‘아가씨’가 시나리오 작가로서 또 한번의 전환점이었을 것 같아요.
“많은 게 달라졌죠.시나리오를 대하는 태도도,쓰는 방식도요.그때는 감독님과 마주 앉아서 함께 쓰기보다는 이메일로 주고받으면서 시나리오를 고쳐나갔어요.”
-어떤 것들이 달라졌나요.
“그즈음이 시나리오를 쓴 지 10년이 됐을 때예요‘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게 있다는 걸 체감했죠‘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쓸 때만 해도‘내가 끝까지 쓸 수 있을까’두려움이 있었거든요.도망가지 않고 완성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싶었죠.그런데‘아가씨’때는 제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더라고요.일단 내가 끝까지 쓸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알았어요.또 내가 원하는 걸 쓸 수 있더라고요.근육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느낌이었죠‘아가씨’는 사실 몇 번 거절하다 쓰게 된 작품인데,쓰기 시작할 땐 어떻게 써야 할지 경로가 보이더라고요.”
한창 설명하던 그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저에게 실패가 있다면,그건‘싸이보그지만 괜찮아’예요.”
그의 작업실 곳곳엔 지금까지 쓴 시나리오들,그걸 단행본으로 엮은 각본집,드라마에 등장하는 소품들이 있었다.책상에 드라마‘작은 아씨들’의 주요 소재인 푸른 난초가 놓였다.정다빈 기자※’정서경의 실패연대기②’는 6월 28일 금요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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