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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에만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두 편이나 등장했다.'범죄도시4'야 그렇다 치더라도 오컬트 장르인 '파묘'의 흥행은 이례적이다.그것은 우리 사회가 무속이나 풍수를 호의적으로 널리 수용한다는 방증이다.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점을 보러 다닌다.묘에 주술을 가하는 사건도 빈번하다.이렇듯 점복은 우리의 삶 속에서 여전히 커다란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어두운 현상을 흥미롭게 파헤친 인상적인 문화비평이 있다.바로 조현설의 '신탁 콤플렉스'(2024)이다.신탁은 신이 내리는 명령이나 예언이다.사실 인간의 삶은 늘 불안하다.그런 불안이 신탁을 찾고 신탁은 다시 불안을 키운다.이때 신탁을 절대화하여 거기에 매달리면,신탁이 일상을 방해할 정도로 강하게 작동한다.이런 병적인 상태가 '신탁 콤플렉스'다.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그런 콤플렉스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인간의 불안은 이성이나 이념으로 치료할 수 없는 심리적인 징후다.그래서 불안은 귀신을 부르게 된다.조선의 유학자들도 사적인 영역에서는 은밀하게 점복에 매달렸다.일반 민초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실제로 우리 민속사회는 귀신과 신탁의 문화를 빼면 남는 것이 별로 없을 정도다.그래서 일제도 전문가들을 내세워 우리의 점복 문화를 채취·연구하였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서구 합리주의의 세례를 받고도 점복 문화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사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점술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요즘은 점복 문화가 아날로그 공간뿐만 아니라,블로그·웹사이트·유튜브·챗봇·앱 등 디지털 공간에서도 엄청난 성시를 이루고 있다.이를 통해 젊은이들도 아무 거부감 없이 주술 문화를 수용한다.
심지어 부적 굿즈나 주술놀이용 용품도 인기다.점복시장의 규모가 대략 6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점복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실험자가 임의로 그럴듯한 성격진단표를 만들어 피험자들에게 각각 보여준다."사람들은 당신을 외향적인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로또 요일별 당첨사실 당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내성적인 면도 있다"는 식이다.피험자들은 그것이 자기에게 80~90%는 들어맞는다고 끄덕인다.본래 사람들에게는 여러 성향이 어느 정도 혼재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뻔한' 말을 해주는 심리학자나 점술가를 '족집게'로 믿는 경향성이 있다.우리의 이런 심리적 특질이 신탁이 힘을 발휘하는 기름진 토양이다.더구나 신탁이 권위 있는,즉 '내가 의뢰하기로 마음먹은' 사제의 입을 통해 나올 때 그 신탁은 진리가 된다.물론 모든 신탁이 신탁 콤플렉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다만 그것에 얽매여 그것이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로 작동할 때 신탁 콤플렉스는 마침내 실체를 얻게 되는 것이다.
신화의 주인공들은 대개 불안하다.불안을 없애려고 신탁을 받지만,신탁이 되레 불안을 키운다.신탁을 무시하고 도망해 보지만,
로또 요일별 당첨도피가 불안을 가중시켜 더욱 신탁에 얽매인다.이처럼 신탁에 집착하면서도 그것을 회피하다가,오히려 신탁을 실현시키는 것이 신탁 콤플렉스의 특성이다.이것이야말로 신탁이 의뢰자의 '집착하는' 마음에 달려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신탁 콤플렉스의 고전적 사례는 오이디푸스다.테베 왕(라이오스)은 끔찍한 신탁을 받는다."아들이 태어나면 너를 살해하고 네 아내와 결혼한다." 그는 아내와 관계를 극도로 피하다가,어느 날 술에 취해 그만 동침하고 만다.왕은 아들(오이디푸스)이 태어나자,
로또 요일별 당첨그를 깊은 산속에 유기한다.그는 목동에게 구출되어 코린토스 왕에게 입양되어 훌륭하게 성장한다.그러다가 자신이 코린토스 왕의 친자가 아니라는 소문을 듣고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구한다."고국으로 돌아가지 마라.고국으로 가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 그는 코린토스로 돌아가지 않고 테베로 향한다.테베 어귀에서 라이오스 일행과 마주쳐 다투다가 라이오스(친부)를 죽인다.결국 그는 어머니와 결혼한다.신탁을 믿고 그것을 피하려고 한 부자의 행위가 오히려 신탁을 완벽하게 실현시켜 주고 만다.
인간이 무조건 신탁 콤플렉스에 굴복만 하지는 않는다.대표적인 것이 중국 나시족의 홍수 신화다.홍수가 나서 모두 죽고 남매만 살아남는다.둘은 결혼 여부를 놓고 신탁을 구한다.신성한 산정에 올라 맷돌을 각각 굴려 합쳐지면 결혼하기로 한다.그들은 맷돌이 합쳐질 때까지 계속 굴린다.남매는 그들이 원하는 신탁을 구할 때까지 신탁을 묻고 또 묻는다.이들은 신탁을 겸손하게 기다리고 그 절대성에 복종하는 대신,신탁을 심문하는 주체가 된다.
우리 전승 신화에도 신탁 콤플렉스를 탈출하려는 서사 전략이 깃들어 있다.대표적인 것이 '손님굿'이다.역병이 창궐할 때 중국 남방에서 온 손님신을 환대하면 그들이 역병을 막아준다.반면 그들을 홀대하면 그들이 자신들을 홀대한 사람을 역병으로 공격한다.한마디로 환대냐 적대(박대)냐에 따라 손님신의 성격과 의미가 재구성된다.이처럼 신탁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조절하려는 탈 신탁 서사 전략은 다양한 신화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민중 사회에서 영웅적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경계된다.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으면 불로 지진다.결국에는 유기 또는 살해되기 일쑤다.급기야 이런 종류의 신탁은 풍수사상과 조우하게 된다.조상묘에 있는 바윗돌을 파괴하여 아이의 영웅적 기상을 꺾는다는 설화가 대표적이다.이를 통해 당나라 때 전래된 풍수사상은 강고한 풍수적 신탁 콤플렉스를 만들어낸다.
풍수적 신탁에도 예언형과 금지형이 있다."장수바위는 장수를 낳는다,명당은 발복을 부른다." 이런 예언형 신탁은 대개 금지형 신탁과 짝을 이룬다."장수바위를 깨지 마라,명당을 훼손하지 마라." 인간이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은 상식이다.다만 그 정보가 맹신·혹신의 대상이 되면,정보는 신탁으로 전환되고 신탁은 일상을 교란하는 콤플렉스로 작동한다.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주인공들은 가혹한 운명을 향해 폭주한다.신탁에 포획된 오이디푸스 부자는 그것을 피해 보려고 한다.하지만 그런 시도가 도리어 신탁을 실현시키는 통로가 되고 만다.반면 동양의 무교 신화는 신탁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조작하여 피하기도 한다.이런 피방(避方)이 바로 무업(巫業)의 존재이유다.즉 그것이 무업의 비즈니스 기회다.아울러 피방은 신탁이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성경에도 인간의 회개와 기도로 수명이 연장되고 징계가 철회된다는 기사가 나온다.엄격한 일신교인 기독교에서 야훼 하느님의 뜻은 절대적이다.그럼에도 야훼는 인간의 참회와 기도에 응답하여 자신의 뜻을 바꾸기도 한다.그것은 절대자와 인격적 소통을 통해 삶과 역사는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다.그래서 '점을 보는 행위'는 무엇보다 큰 죄악으로 질타된다.
액을 없애고 복을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은 자연스럽다.다만 이에 사로잡혀 점복이나 풍수가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훼손해서는 곤란하다.'파묘'의 관객 1000만 돌파가 자랑스럽다.한편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다.우리의 부박한 세태가 반영된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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