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리튬전지 공장 참사]
리튬전지 공장‘소방안전 사각지대’
청주 29개-구미 24개-충주 16개… 방화벽 등 국제기준,
고디탕국내서는 외면
“불나면 전소할 때까지 볼 수밖에”…‘열폭주’법안,국회서 논의도 안돼
리튬전지 제조업체인 아리셀의 경기 화성시 공장에서 불이 나 23명이 사망한 가운데 국내 일차·이차전지 공장 상당수가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특히 화성시뿐만 아니라 충북 청주 등지에도 리튬전지 공장들이 모여 있는 경우가 많아 동시다발로 화재가 발생할 경우까지 감안해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25일 찾은 아리셀 공장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였다.특히 불이 난 3동(공장)에서 불과 10m 떨어진 8동엔 배터리 완제품을 30만 개 이상 만들 수 있는 리튬 2t이 있었다.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8동으로 불이 옮겨붙었으면 리튬을 저장하는 탱크가 터졌을 것”이라며 “(소방관들이 뿌리는) 소화용 물이 리튬에 닿았다면 초대형 화재가 발생했을 수 있다”고 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리튬 등 일차·이차전지 공장은 현재 화성시에만 18개가 건립됐다.충북 청주(29개),경북 구미(24개),충북 충주(16개) 등 일부 산업도시에도 밀집해 있다.반면 리튬전지 공장 밀집 지역에서 불이 나도 뾰족한 진압책이 없는 상황이다.리튬전지는 물과 결합하면 수소가 발생해 더 큰 폭발을 일으키기 때문에 마른 모래 등 특수한 진압 시스템이나 금속화재 소화약제 등 전용 장비가 필요하다.하지만 아리셀 공장이 있는 전곡산업단지 등 화성 일대에는 소방당국과 업체 측 모두 전용 진화 장비가 없었다.다른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한국산업단지공단에 등록한 일차전지 공장의 84.3%가 연면적 기준 미달로 소방당국의‘화재안전 중점관리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대처 방안이 없다 보니 리튬전지 화재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일차전지 업체 비츠로셀의 충남 예산 공장도 2017년 4월 화재로 전소되기도 했다.당시 공장과 가까운 아파트 유리창 30∼40개가 파손됐고,주민 200여 명이 긴급 대피했다.유해물질인 아황산가스를 마신 주민들은 치료를 받아야 했다.이후 비츠로셀은 공장을 재건하면서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적용하며 특수 스프링클러를 설치했고,배터리를 옮길 때 사용하는 트레이를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 소재로 사용하는 등 안전설비를 대폭 강화했다.
생산 현장의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는 공장도 많다.한국화재보험협회에 따르면 △90분의 내화 성능(화재에 견디는 성능)을 가진 방화벽 △20m 안전거리 확보 등을 통해 리튬전지를 분산 보관하는 게 국제 표준이다.그러나 전곡산업단지 입주 업체 관계자는 “이번에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일차전지 업체는 중소기업이 많아 화재 대응 능력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아리셀 공장도 연면적이 2300㎡에 불과해 3만 ㎡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화재안전 중점관리 대상’에서 빠졌다.한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대기업은 안전시설을 완벽하게 꾸며놓지만,중소기업은 갖출 수가 없다”며 “한번 불이 나면 전소할 때까지 속절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아리셀) 근방의 다른 일차전지 업체들도 2010년대 중반 화재로 줄도산했다”고 했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이차전지는 각종 규제에 따라 보호장치를 다수 적용하지만,일차전지는 안전기준 등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지난해 7월 국회를 통과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은 전기차 배터리를 만들거나 수입할 때 안전성 인증을 받게 하고 성능 시험에서 배터리 제조사에 핵심 부품 결함조사를 요구할 수 있게 했다.하지만 배터리 제조 과정 관련 내용은 담고 있지 않다.21대 국회에서‘열 폭주’현상에 대비해 소방 훈련을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원회 소위에서 한 번도 논의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22대 국회에서도 일차전지와 관련한 화재 방지나 안전 강화 법률은 발의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