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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살리자” 중학생도 벌떼처럼 붙어 강바닥에 삽질
모내기철 대구서 4만여 명 구슬땀…경주에선 마른 논에 호미로 심기도
태풍‘죤’북상,애타는 마음에 화답
1962년 6월 29일,현재의 대구 달서구 호림동 상공 2군 항공기에서 화원(왼쪽) 방향으로 본 낙동강.극심한 가뭄에 넓디넓은 백사장 사이로 강물이 실오리처럼 흐르고 있다.강 앞쪽 메마른 논은 현재 성서공단으로 탈바꿈 했다.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토론토 캔자스시티대구중 학생들이 삽과 괭이로 강 오른편 마른 논에 용수할 물길을 내고 있다.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style="display: block; margin: 0 auto;">
한발(가뭄)이 극심하던 1962년 7월 1일 대구 동구 아양교 하류 금호강에 나온 경상중,대구중 학생들이 삽과 괭이로 강 오른편 마른 논에 용수할 물길을 내고 있다.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2년 7월 1일 대구 동구 아양교 하류 금호강에 나온 경상중,대구중 학생들이 삽과 괭이로 강 오른편 마른 논에 용수 할 물길을 내고 있다.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2년 7월 1일 극심한 가뭄에 공무원과 초등학교 교사들이 대구 신천 용두방천 부근 강바닥을 파헤치며 인근 고산골 다락논에 용수할 물을 모으고 있다.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2년 7월 1일 극심한 가뭄에 공무원과 초등학교 교사들이 대구 신천 용두방천 부근에서 강바닥을 파 물을 모으고 있다.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2년 6월 26일 대구고 학생들이 앞산 고산골 자락 다랑논 묘판에 물을 주기 위해 신천 용두방천에서 릴레이로 물통을 나르고 있다.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2년 6월 26일 대구고 학생들이 앞산 고산골 자락 다랑논 묘판에 물을 주기 위해 신천 용두방천에서 릴레이로 물통을 나르고 있다.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2년 6월 26일 대구고 학생 1천300여 명이 앞산 고산골 자락 다랑논 묘판에 물을 주기 위해 500m나 떨어진 신천 용두방천에서 릴레이로 물통을 나르고 있다.당시 고산골 일대에는 계단식 다랑논이 즐비했다.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2년 6월 29일,모내기 철 윤기가 흘러야 할 논바닥은 바싹 말라 뽀얀 먼지가 일고,비만 오면 넘쳐 흐르던 금호강·동강 물줄기도 멈춘 지 오래.40여 일 계속된 한발(旱魃·가뭄)에 29일 현재 전국 모내기 진척도는 65.6%.가뭄이 제일 심한 경북은 겨우 35%.수일 내 비가 안 오면 모가 말라 죽어 비가 와도 모내기를 못할 지경에 처했습니다.
"공무원,학생,군인,민간인 등 가능한 손은 모두 동원하라".이날 중앙한해대책위는 최후의 수단을 긴급 하달했습니다.모내기가 어려운 곳은 가식(假植),물이 있는 논에 모를 임시로 심었다가 비가 오면 다시 제 논에 옮겨 심고 이마저도 힘든 곳은 대파(代播),대체 작물을 심도록 했습니다.
"10일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묘판의 모를 없애라" 7월 1일,거도적 가뭄과의 대결이 시작돼 대구 아양교 하류 금호강에 학생들이 떼로 나왔습니다.이들은 경상중 1천900명,대구중 1천500명 등 모두 3천400명.강물이 말라 멈춘 아양교에서 양수기가 설치된 대구선 철교 부근까지 300m 구간에 바글바글 붙었습니다.
학생들의 작업은 강 오른편 20정보(6만평)의 마른 논에 양수할 물길을 내는 일.전날 208공병대 그레이더 한 대가 급히 파헤쳐 놓고 간 강바닥에 벌떼처럼 달라붙어 삽질을 해대자 그럴싸한 물길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날 공무원과 교사(2천600명)들은 신천 용두방천에서,공산초(300명)·공산중(200명)·동중(500명) 학생들은 동화천에서,대륜중·고(900명)·중앙상고(500명) 학생들은 연못과 우물을 파며 물을 찾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4일에는 대대적인 동원령이 내려져 대륜중 1천500여 명이 군인들과 신천 상류 가창 일대 하천을 4km나 파는 등 21개교 9천100여 명이 물을 찾고 모를 냈습니다.이날까지 동원된 대구시내 학생들은 연 4만300여 명.시골 학생들은 볼 것도 없었습니다.
경주에선 전국에서 처음으로 '호미모'가 등장했습니다.물이 없으니 호미로 마른 논에다 흙을 파고 모를 심었습니다.20일 내에 비가 오면 평년작의 80%는 건질 수 있다 해서 가뭄이 심한 경주 남산리(동) 들판에 4일까지 심은 호미모는 무려 50정보(15만평).여기엔 경주 초·중학생이 2천300명이나 거들었습니다.이 무렵 아이들은 삽질에 호미질은 다반사여서 너나없이 한몫하는 일꾼들이었습니다.
그러던 4일 밤,
토론토 캔자스시티남쪽에서 애먹이던 장마전선이 올라와 비를 뿌렸지만 도내 평균 강우는 겨우 16.2mm.이틀 후에 또 찔끔 내려 평균 5mm.농민들 속을 뒤집어 놓더니 마침내 태풍 '죤'이 비구름을 왕창 몰고 왔습니다.12일 새벽부터 대지가 흠뻑 젖도록 쏟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좋다" 도내 4천281정보(4천200ha)에 심은 가식묘가 본답으로 재이앙되고,1만265정보(1만ha)의 대파 지역 일부도 갈아엎고 다시 모를 냈습니다.가뭄으로 망칠뻔 했던 1962년 모내기는 학생들의 손과 태풍 덕에 겨우 마칠 수 있었습니다.(매일신문 1962년 6월 30일~7월 13일 자)
한해 전인 1961년 딱 이 무렵(7월 11일),영주에 200mm가 넘는 폭우에 대홍수가 일어나 인명과 재산을 앗아갔는데 이번엔 태풍이 농민을 살렸습니다.우연치곤 너무 공교롭고 자연의 희롱이라면 하늘은 너무도 짓궂기만 합니다.
1962년 7월 경북의 한 시골 농민들이 극심한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논밭에 물을 대기 위해 웅덩이에서 두레질로 물을 퍼 올리고 있다.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2년 7월 대구 인근 농민들이 극심한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논에 공급할 물을 찾기 위해 웅덩이를 파고 있다.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2년 7월 4일 대륜중 학생들이 달성군 가창면 일대 신천 상류에서 삽과 괭이로 강바닥을 파 물길을 내고 있다.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2년 7월 4일 2군 사령부 장병들이 달성군 가창면 일대 신천 상류에서 강바닥을 파 물길을 내고 있다.오른쪽 세번째는 박경원 경북도지사.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2년 7월 10일 서해상에 상륙한 태풍 '죤' 영향으로 대구에도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태풍이 몰고 온 비로 두 달 가까이 이어진 가뭄이 해갈돼 겨우 모내기를 마칠 수 있었다.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2년 7월 1일 대구 동구 아양교 하류 금호강(위).60여 년이 흐른 지금은 강에 들어선 수중보가 연중 물을 가두고 주변 논밭은 택지로 변했다.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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