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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세계여행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아득한 절벽과 기묘한 형상으로 솟은 바위산,높이가 500m에 이르는 진바르폭포Jinbar Waterfall,가슴에 하트 모양의 털을 가지고 있는 개코 원숭이,카리나 언더붑멸종 위기의 야생염소 아이벡스를 비롯한 시미엔 여우,에티오피아 늑대 등은 시미엔국립공원의 또 다른 매력이다.1978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트레킹 최적 시기는 건기인 12~3월.트레커를 위한 편의시설이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텐트와 취사도구를 가지고 가야 한다.셀프 트레킹은 불가하다.이정표가 없어서 길 찾기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야생동물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 반드시 가이드와 총을 든 스카우트를 고용해야만 입산이 허가된다.
에티오피아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미엔 트레킹에 관한 정보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결국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해서 발품을 팔았지만 그마저도 소득이 없었다.구글링으로 찾은 여행사 중 많은 곳이 문을 닫았다.어렵사리 연결이 된 투어사에서는 제2봉인 브와히트Mount bwahit(4,430m)까지 일정을 추천했다.제1봉인 라스다쉔까지 가기엔 일정이 여유롭지 못하고,제2봉인 브와히트까지 가면서 가장 멋진 풍광은 모두 즐길 수 있다고 나를 설득했다.결국 브와히트까지 다녀오는 시미엔 트레킹을 3박4일로 예약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곤다르까지는 비행기로,곤다르에서 시미엔국립공원 사무소가 있는 데바르크Debark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했다.데바르크에 도착해 시미엔국립공원 사무소에서 입산 퍼밋을 받고 가이드와 스카우트를 배정받았다.
드디어 그렇게도 목마르게 걷고 싶어 하던 시미엔국립공원이다.가는 길의 풍광을 보며 연신 감탄사를 쏟아내니 옆에 있던 가이드가 웃는다.그네들에겐 참으로 평범한 자연이겠지.역시 높고 큰 산은 보여 주는 것이 남다르다.해발고도 3,000m 가까이 되는 산중에 초가지붕의 붉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이런 고원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모습이 신기하다.아이도 어른도 지팡이를 어깨에 메고 다니는 모습도 생경하다.걷다가 힘들 때는 스틱으로 사용한다.대중교통 수단이 열악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그들만의 지혜이다.아이들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소와 염소 등을 몰며 지나갈 때는 마음 한구석이 저린다.
고소적응을 위해 산카베르Sankeber 캠핑사이트 도착 전 약 5km 지점에서 차를 내렸다.이곳의 해발고도는 3,200m.넘실넘실 산이 겹겹이 쌓여 있어서 첫날부터 에티오피아 산의 웅장함을 제대로 느끼는 데 부족함이 전혀 없다.한쪽은 평범한 산책코스인데 반대편은 깎아지른 절벽이다.협곡과 절벽의 대비가 멋지다.성채처럼 보이는 절벽이 아름답다.
산카베르 캠핑사이트에 도착하니 이미 텐트와 간식이 준비돼 있다.잠시 쉬면서 티타임을 즐기고 나니 저녁식사 시간.그야말로 황제트레킹이다.정성스럽게 준비해 준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잠이 스르르 밀려든다.
고산이라서 코스가 조금 험난할 줄 알았는데 산책코스다.약간의 오르내림이 있지만 걷기 편안하다.날씨만 더워지지 않으면 좋겠다.북쪽 절벽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카바계곡Kaba Valley으로 깊이 내려갔다가 시미엔 산기슭의 장엄한 전망을 즐기고 다시 능선을 넘어서 절벽을 따라간다.가까지른 절벽에 불쑥 솟아오른 봉우리들이 마치 종이를 접었다가 펼쳐놓은 것 같다.
길이 없을 것만 같은 계곡으로 점점 내려간다.조금 더 계곡으로 내려가니 500m 깊이로 심연 속으로 떨어지는 진바르폭포를 마주한다.화산의 융기로 생겨난 폭포다.지금은 건기라 물은 거의 없어서 흔적만 볼 수 있지만 우기에 굉음을 쏟아내며 떨어지는 거대한 물줄기가 상상된다.하늘에는 까마귀의 일종인 팬 테일드 레이븐Fan-tailed raven이 계곡을 힘차게 날아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시 완만한 경사가 계속된다.올라갈수록 절벽 아래로 펼쳐지는 협곡은 더욱 광활해진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바위가 붉은색과 석회암 회색으로 알록달록하다.모두 오랜 세월을 지나온 화산 흔적이다.
시미엔국립공원에만 산다는 겔라다 개코원숭이Theropithecus gelada 무리를 만났다.가슴에 붉은 하트를 달고 있는 모습도 특이하다.머리 부분은 털이 엄청 복스럽게 길다.다른 원숭이랑은 다르게 기품이 느껴진다.수컷은 마치 새끼 사자처럼 보인다.새끼를 등에 업고 달리는 어미는 정말로 한 몸처럼 느껴질 정도로 가볍게 달린다.곁으로 다가가니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쏜살같이 달아난다.겔라다 개코원숭이는 한 마리의 수컷에,카리나 언더붑여러 마리의 암컷과 그들의 새끼로 구성된 일종의 작은 하렘에서 생활한다.이 작은 집단들은 연합해 350마리 이상까지 큰 집단을 형성하기도 한다.
숲 사잇길을 걷고 이어지는 오르막을 오르니 거대한 자이언트 로벨리아가 듬성듬성 자라는 초원지대가 나타났다.그 언덕 위가 오늘의 숙영지 기치Gich이다.
바로 이곳이 신들의 체스 말이 놓여 있다는 케다디트Kedadit(3,762m).시미엔국립공원에서 가장 경치가 뛰어나다는 바로 그곳이다.이멧고고Imet Gogo(3,925m)가 한눈에 들어왔다.엄청난 스케일로 펼쳐진 협곡,절벽,산줄기들의 행렬… 무어라 형용할 단어조차 떠오르질 않는다.애니메이션의 배경처럼 몽환적이다.
해 떨어지면 기온 뚝
해가 지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바람이 심해지면서 기온이 뚝 떨어졌다.다운 재킷을 입어도 춥다.해넘이가 시작되면서 온 세상이 주홍빛으로 물든다.
황홀한 일몰에 취해서인지 편안한 밤을 보냈다.아침 식사를 하려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스카우트가 부른다.자칼jakal이 나타났다고 한다.이럴 때는 무조건 뛴다.자칼이 나를 쳐다보고 나도 자칼을 쳐다본다.내가 조금 앞으로 가면 자칼은 조금 더 멀리 도망간다.최대한 가까이 가서(사실 5~6m는 된 거 같다) 자칼을 사진에 담았다.
이멧고고를 향해 다시 길을 떠난다.해발고도 3,카리나 언더붑800m 정도에 다다르니 케냐산,카리나 언더붑엘곤산과 비슷한 풍경이다.끝없는 자이언트 로벨리아 평원이다.시원하게 펼쳐진 평원을 만나면 눈도 마음도 시원해진다.작은 야생화들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아프리카 산행 중에 자주 만났던 모습이라 식물도 산도 참으로 반갑다.평원이 끝나니 이멧고고.우뚝 솟은 절벽이 내 눈앞에 당당하게 서있다.가까운 것처럼 보였는데 한참을 잔지바르강 계곡을 따라 이멧고고와 숨박꼭질하며 걷는다.강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절벽 길로 올라서니 드디어 이멧고고이다.
이멧고고를 내려와 절벽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다.바로 곁은 수백 미터에 이르는 깎아지른 수직에 가까운 절벽길이다.숨이 막힐 만큼 멋진 절경이지만 긴장 또한 늦출 수 없다.오늘의 피크인 4,070m까지 올랐다가 내려서니 길이 편안해진다.풀이 폭신폭신한 양탄자처럼 깔려 있다.이 풀은 현지인들이 땔감으로 사용한다.
이른 시간부터 걸었더니 배가 고프다.양지바른 편안한 장소를 물색해서 자리를 정했다.식사 후에는 넉넉하게 쉬어간다.점심식사 후 가파른 길을 따라 첸넥Chennek으로 향한다.
테이블마운틴처럼 펼쳐진 봉우리의 끝은 절벽이다.그 절벽 아래로는 굽이굽이 협곡이 펼쳐진다.딱 사람이 설 수 있는 바위가 정 가운데 있어서 스카우트를 주인공으로 아주 멋진 사진을 남긴다.사진 포인트에 서서 내 앞에 펼쳐진 협곡을 바라보니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초록 옷을 입은 깊은 협곡의 향연이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 오늘의 캠핑사이트인 첸넥을 향해 절벽을 따라 내려간다.
왈리아 아이벡스 무리를 만나다
오늘은 시미엔산의 제2봉인 부와히트를 오르는 날이자 시미엔 트레킹 마지막 날!꼭 보고 싶은 왈리아 아이벡스Walia ibex를 만날 가능성이 높은 날이다.
이른 새벽의 날씨는 생각보다 쌀쌀하다.부와히트로 올라가는 길에 가끔씩 뒤돌아보며 내가 걸었던 길들을 다시 눈으로 즐긴다.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 곁으로 난 트레일은 한 번씩 도로와 만난다.이럴 때면 어김없이 차가 지나가고 먼지를 뒤집어 써야 한다.힘들어도 산길이 좋은데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옛길이 중간에 없어진 곳이 많다.고무줄을 뛰어넘듯 도로와 산길을 번갈아 왔다 갔다 한다.
느슨하게 오르던 길이 갑자기 경사도가 심해진다.산길이 완전 돌길에 너덜길이다.살짝 숨은 차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가이드는 뒤따라오면서 내게 고소가 올까봐 걱정하는 눈치이다.천천히 오르라고 조언한다.몸이 데워지면서 추위도 사라지고 해발고도는 점점 올라가지만 컨디션은 더 좋아진다.부와히트는 어디에 숨었는지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이제 하산이다.하산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야 하는데 주변을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왈리아 아이벡스는 그림자도 안 보인다.이젠 마음에서 지우기로 결정하고 시미엔의 풍광을 두 눈으로 마음에 가득 담는다.앞서서 걷던 가이드가 나를 향해 연신 손을 흔든다.뛰어 가서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앗!왈리아 아이벡스이다.세상에나 간절히 원하니 이루어지는구나~.정말로 젖먹던 힘까지 보태서 뛰었다.드디어 왈리아 아이벡스와 조우했다.왈리아 아이벡스를 만나고 나니 숙제를 해결한 느낌이다.한두 마리가 아니라 열 마리가 넘었다.아침산책을 나온 가족 같다.수컷의 뿔이 참으로 멋지다.염소와는 차원이 다른 왈리아 아이벡스이다.'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첸넥 캠프로 하산하는 발걸음이 날아갈 것만 같다.첸넥 캠프에 도착해서 무사히 사미엔 트레킹을 마쳤다.차량으로 곤다르로 복귀하다가 시미엔 여우까지 보았다.마지막 선물도 멋진 시미엔이다.
▶시미엔 트레킹
1일차(5km) 산카베르 캠프 5km 전방지점(3,200m)~산카베르 캠프(3,250m)
2일차(15.4km) 산카베르 캠프(3,250m)~기치(3,600m)~케다디트(3,762m)
3일차(16km) 기치(3,600m)~첸넥(3,600m)
4일차(9.4km) 첸넥(3,600m)~브와히트(4,430m)~첸넥(3,600m)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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