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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청역 앞 차량 돌진 사고
운전자,차량 급발진 사고 주장
차량 결함 아닌 역주행 과실 땐
‘고령 운전자 논쟁’재점화할 듯
지난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9명을 숨지게 한 대형 교통사고를 두고 고령자 운전의 안전성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사고 차량 운전자가 68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 고령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의견들이 나왔다.전문가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고령 운전자 안전 대책을 마련할 필요는 있지만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번 사고 원인을 고령으로 속단해선 안된다고 밝혔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사고를 낸 제네시스 차량은 일방통행 도로를 역주행하다 다른 차량을 들이받은 다음 횡단보도와 인도로 돌진하면서 보행자를 친 것으로 보고 있다.운전자 A씨는 차량 급발진을 사고 원인으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경찰은 A씨가 간이 음주·약물 검사에서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고 밝혔다.음주·약물 등의 영향이 없었다면 사고 원인을 A씨 주장대로 급발진 등 차량 결함 또는 A씨의 운전 미숙·부주의 등으로 추정할 수 있다.
급발진 등 차량 결함 여부를 밝히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다만 일반적인 급발진 사고와 달리 이번 사고를 일으킨 차량은 스스로 속도를 늦춘 다음 멈춰섰다는 점에서 급발진일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 많다.이런 의견에 따르면 A씨가 과실로 역주행을 하다 다수의 사상자를 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특히 A씨가 68세라는 점에서 고령자의 운전 자격을 얼마나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재점화되는 모양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사고는 지난해 3만6914건으로 전년 대비 14.3%(4962건) 증가했다.이러다보니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 사망자는 되레 늘었다.2013년 5092명이던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023년 절반 수준인 2551명으로 줄어들었지만,고령 운전자가 낸 사고의 사망자 수는 같은 기간 737명에서 745명으로 늘었다.
실제로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는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지난 2월 서울 은평구 연신내역 인근 도로에서 70대 남성이 몰던 SUV가 9중 연쇄 추돌 사고를 내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다쳤다.당시 운전자는 음주 상태가 아니었지만‘사고 당시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서울 강남구 양재대로 구룡터널 교차로 인근에서 80대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7중 추돌 사고를 냈다.지난 4월에는 경기 성남 판교노인종합복지관 주차장에서 90대 운전자가 운전 미숙으로 행인 4명을 덮쳐 1명이 숨졌다.
정부는 만 75세 이상 운전자의 운전면허 갱신 주기를 3년으로 하고 면허 갱신 시 인지능력 검사와 교통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고 있다.각 지방자치단체는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률을 높이기 위해 교통비 지원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하지만 면허 반납률은 매년 2% 안팎에 그친다.정부는 고령자 등 고위험 운전자를 대상으로 운전 능력 평가를 하고,그 결과에 따라 일정 조건을 붙여 운전을 허용하는‘조건부 면허제’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년층의 운전을 무조건 금지하기보단 면허 제도를 촘촘히 해 고위험 운전자를 가려내야 한다고 말했다.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고령 운전자의 취업 비율이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아 이동권을 막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고령자라고 기기 조작이나 판단력이 떨어져서 사고가 생긴다고만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10년 뒤에는 고령 운전자 비율이 더 높아질텐데 운전 금지만을 논의해선 안 된다”며 “긴급 제동장치를 의무화 하고 쉽게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시스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석 도로교통공단 안전교육부장은 “68세 운전자가 사고를 냈다면 나이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지만 운전 당시 몸 상태나 피로가 더 결정적이었을 수도 있다”면서 “운전이 위험한 사람들을 분류해 야간 운전이나 장거리 운전을 제한하는 등 강화된 면허 제도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