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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대탈출···코리안 엑소더스가 온다]
1부.늙어가는 기업 - <상> 해외로 짐싸는 슈퍼인재
AI·반도체 등 글로벌 경쟁 치열한데
10년간 이공계 두뇌 34만명 유출
처우·연구환경 격차 갈수록 심화
R&D예산 삭감·의대선호도 한몫
[서울경제]
인공지능(AI)을 연구하는 서울 소재의 한 이공계 대학원은 최근 2년간 교원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지원자 수 자체가 이전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심지어 과거 이공계 교원 인력 풀의 주류를 차지해왔던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 지원자는 2년 동안 한 명도 없었다.해외 대학의 교원 자리를 노리거나 아예 연봉 경쟁력이 높은 미국의 구글·애플 같은 빅테크로 우후죽순 떠나버린 결과다.
이 연구실을 이끌고 있는 A교수는 “예전에는 해외 대학의 교원으로 간다고 해도 다들 기회를 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분위기가 확 바뀌어서 이제는 해외 임용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다”고 말했다.
교원뿐 아니라 학생들도 마찬가지다.국내 대학원에서 전기전자공학 석박사 학위를 따고 올해 실리콘밸리에 있는 미국 빅테크 기업에 취직한 B(30) 씨는 “제가 있던 연구실에서는 해외 취업이 절반 가까이 된다”며 “미국에서의 엔지니어에 대한 대우는 한국과 차이가 큰 데다 한국 기업에는 아직도 너무나 수직적인 문화가 팽배하다고 생각해 해외 취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유럽 등이 AI·반도체 분야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있는 인재마저 해외로 떠나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이공계 학생 유출 현황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3~2022년) 이공계 인력 34만 명이 떠났다.이 중 고급 인력으로 분류되는 석박사 수는 9만 6000명에 달한다.전 세계 주요국이 AI와 반도체 주도권 확보에 사활을 걸면서 인재 유출 현상은 한층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서울경제신문이 한국에서 이공계 석박사 과정을 마친 후 해외 임용·취업을 택한 이들을 서면 인터뷰한 결과 공통적으로 인재 유출 현상 속도가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것으로 봤다.
인재 유출의 핵심에는‘처우 차이’가 있다.최근 빅테크들의 연봉 상한선은 끝도 없이 높아지고 있다.챗GPT를 개발한 오픈AI는 핵심 인력에게 1000만 달러(약 138억 원)의 스톡옵션을,카지노 워메타는 스톡옵션과 성과급을 포함해 최대 251만 달러(약 34억 원)를 준다.반면 한국의 이공계 인재 연봉은 아무리 높아도 2억~3억 원이 상한선이다.
B 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에서의 엔지니어 연봉 상승 폭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다”며 “미국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조건의 회사로 비교적 이직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학생 시절 체감한 연구 환경 차이도 해외로 나가는 계기가 된다.해외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C 씨는 “동일한 과제여도 한국에서 수행하면 1년 예산이 대부분 6000만~7000만 원,카지노 워많으면 1억 원 정도인 반면 미국에서는 최소 1억 5000만 원이 넘는다”며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이후 과제 선정 비율이 10%가 안 되는 것으로 아는데 이쯤 되면 (연구가) 실력이 아니라 운의 영역으로 변질된 것”이라고 토로했다.
집약적 자본이 필요한 연구 분야에서는 이런 경향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A 교수는 “연구 논문 하나 쓸 때마다 1000만 원 이상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사용료가 들어가는데 빅테크에서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수억 원씩을 가볍게 투자한다”며 “동등한 경쟁이 어렵다”고 했다.실제로 올해 초 메타는 AI 연구 인프라 구축을 위해 엔비디아의 고성능 AI칩‘H100’을 35만 개 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해외로의 인재 유출은 이공계 대학의 인재 유입 감소로 이어진다.열악한 이공계 인재 처우에 R&D 예산 삭감,카지노 워의대 선호 현상 등이 합쳐져 연쇄적인‘이공계 엑소더스’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지난해 서울대 이공계 박사 입학 경쟁률(전기)은 1.06으로 1을 간신히 넘겼다.포항공대(포스텍)의 대학원 신입생 충원율은 2021학년도 79.1%에서 2024학년도 74.3%까지 낮아졌다.중도에 학업을 포기한 학생들의 숫자도 57명에서 68명까지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