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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련 주연 국립극단 젠더 벤딩 연극 '햄릿'
2021년 온라인 초연 후 5일 명동예술극장 개막
"배우로서 가진 편견 발견하고 깨 나가는 중"
무대에 조명이 켜지면 치마를 입은 햄릿이 뛰쳐나오듯 등장하고 선왕의 급작스러운 서거에 따른 조사위원회의 발표가 시작된다.햄릿은 목청껏 웃기 시작한다.웃음인지 울음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광기 어린 웃음 뒤로 처연한 기운이 감돈다.
420년 전 출간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은 수없이 반복·변주돼 왔다.지난 5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한 국립극단 연극 '햄릿'은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매력을 뽐냈다.배역의 성별을 뒤집어 각색한 '젠더 벤딩(Gender-bending)' 작품으로 덴마크 왕위 계승자이자 검투에 능한 해군 장교 출신 햄릿을 왕자가 아닌 공주로 설정했다.햄릿 공주를 맡은 배우 이봉련(43)은 증오,천명훈 도박광증,복수심과 권력욕을 오가는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으로 원작의 남성 햄릿을 잊게 했다.
이봉련은 8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여성 배우에게 햄릿 역할이 올 거라 생각하면서 살지 않았는데,나를 햄릿으로 내세운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햄릿이란,천명훈 도박또 연극 속 주인공의 자리란 이래야 한다는,내가 갖고 있던 편견을 발견하고 깨 나가고 있다"고 개막 소감을 밝혔다.
올해 국내 연극계는 3편의 '햄릿'을 선보인다.지난달 시작한 신시컴퍼니 제작 연극,국립극단 공연,천명훈 도박올해 10월 개막할 예술의전당 제작 연극까지다.이 중 유일하게 여성이 '햄릿'을 연기하는 국립극단 작품은 정진새 극작가가 각색을,부새롬 연출가가 윤색·연출을 맡았다.햄릿이 여성으로 바뀌면서 상대역인 오필리어는 남성으로 설정됐다.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1년 온라인으로만 공개돼 실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 연출가는 "원작이 쓰일 당시 사회 통념에서 비롯된 여성을 향한 차별과 혐오의 요소를 덜고 싶었다"고 각색 배경을 설명했다.정 작가는 "성별 구애 없이 배우를 캐스팅하는 '젠더 프리' 등 젠더 실험 유행에 편승한 것은 아니다"라며 "지금 시대 관객이 보고 싶은 햄릿을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여성 햄릿으로 각색했다"고 말을 보탰다.
이봉련은 "배우가 햄릿 역을 준다고 다 하지는 않는다"며 "여성 햄릿으로 바뀌었으니 흥미롭다기보다는 남성이어도,여성이어도 상관없을 대본이라는 설명 때문에 선택했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성별과 관계 없이) 누구든 햄릿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을 관객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연기 비결요?일상을 잘 사는 거죠"
부 연출가는 햄릿을 공주로 설정한 이 작품에 이봉련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연기를 너무 잘해서"라고 명료하게 답했다.정 작가는 "이 작품은 '여성 햄릿'이라기보다 '봉련 햄릿'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말했다.이봉련은 이 작품으로 2021년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여자 연기상을 받았다.
2005년 뮤지컬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로 데뷔한 이봉련은 연극과 뮤지컬뿐 아니라 TV드라마와 영화에서도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최근엔 '갯마을 차차차' '일타 스캔들' 등 TV드라마에서 인상적 연기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이봉련은 "공연과 영화·드라마는 배우로서 모두 같은 일"이라며 "공연만으로 삶을 꾸리던 때보다 출연 작품은 줄었지만 내게는 '오랜만에 무대에 선다'는 감각이 있지는 않다"고 했다.
이봉련의 본명은 이정은이다.공교롭게도 '낮과 밤이 다른 그녀'에 출연 중인 이정은과 마찬가지로 뮤지컬 '빨래'의 할머니 역으로 극찬을 받았다.이정은이 이봉련의 연기에 대해 "잠깐 등장해도 기승전결을 다 보여주는 배우"라고 언급한 과거 인터뷰 내용도 유명하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이봉련은 연기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일상을 잘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연기하지 않을 때 내 삶을 어떻게 꾸릴까가 제 가장 중요한 고민이거든요.그 고민으로 계속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많은 것을 얻어요.저를 잘 관찰하고 제 일상을 잘 살아가는 것,그게 제가 연기를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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