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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 교통약자법 개정안 통과 촉구 시위
한국옵티칼 해고노동자들과 평택서 “고용승계”
북적북적 즐거웠던 서울퀴어문화축제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 규탄 시위
6월 중순에 스페인 북부 살라망카대 한국학과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했다.그래서 이번에도 5월 말과 6월 초에 열심히 데모하고 출국했다.
5월30일 오전엔 서울 9호선 국회의사당역 승강장에서 '다이인'(Die-In) 행동이 있었다.'다이인'이란 쉽게 말하면 '죽은 척'인데,야구 4대천왕사람들이 모여서 누워 있는 방식으로 시위하는 것이다.이날 오전 8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과 지지하는 시민들이 모여 제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전면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며 다이인 시위를 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님은 이 교통약자 이동"편의"를 증진하는 법이라는 이름 때문에 불편해도 좀 참고 살면 되는,별로 중요하지 않은 법처럼 여겨지기 쉽지만,교통약자 당사자에게는 절실한 법이라고 설명하셨다.수도권의 경우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거나 저상버스가 편성되는 등 여러 변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비수도권 지역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저상버스를 이야기하기 전에 일단 대중교통 자체가 한 시간이나 두 시간에 한 번만 다니는 지역도 있다.비장애인이 주로 이용하는 대중교통은 잘 돼 있는데 휠체어 사용자가 장애인용 교통수단을 예약하려면 최소한 사흘 이상 기다려야 하는 지역도 있다.교통약자와 비장애인의 편차가 클수록 교통약자의 고통은 다수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은 이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발의된 것이다.
이날 다이인 행동 돌입 전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장애인 당사자이며 다큐영화 '그리다' 제작을 위해 한국에 온 뉴욕 한국문화센터 프로그램 매니저 등이 발언했다.나도 전장연 활동가의 발언 요청에 얼떨결에 앞에 나섰다.집회가 오전 8시에 시작됐으므로 22대 국회 임기 개시까지 한 시간 남은 시점이었다.그래서 나는 국회 임기 4년이 아니라 4시간도 기다릴 수 없으니 한 시간 내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을 전면 개정 완료하라고 요구하며 "투쟁!"을 외쳤다.무리한 요구인 건 알고 있었지만 교통약자 당사자들은 진짜로 4년은 고사하고 네 시간도 기다릴 수 없다.내 발언을 듣고 전장연 활동가들이 즐거워했으므로 보람은 있었다.
사실 이날 나는 이전에 겪었던 전장연 집회,경찰의 강제퇴거,지하철 무정차 통과 등을 떠올리며 잔뜩 긴장한 채로 국회의사당역에 도착했다.그런데 예상과 달리 의외로 집회는 아주 평화롭게 진행됐다.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서울 지하철 9호선이 민자 노선이라 공권력이 함부로 개입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시원한 지하철 승강장 바닥에 조용히 누워서 나는 공권력이 개입하지 않으면 소수자와 약자들의 시위가 얼마나 평화롭게 흘러갈 수 있는지 감탄했다.우리는 피켓과 현수막을 덮고 조용히 누워 있다가 9시가 넘어 조용히 일어나서 집회를 마치고 해산했다.
전장연 집회 후 바로 평택으로 달려갔다.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가 경북 구미 고공 농성에 이어 경기 평택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공장의 일본 본사인 니토덴코는 '쌍둥이 회사'인 니토옵티칼을 평택에서 운영하고 있다.두 회사는 똑같이 편광필름을 만들고,이전부터 인력이 부족하면 구미와 평택 공장을 서로 오가면서 조업했다.그때 근무했던 조합원에 따르면 두 공장 기계 장비도 똑같다고 한다.화재 핑계로 일본 본사가 보험금만 1300억을 받고 폐업하겠다고 주장하는 구미 공장과 현재 정상 가동 중인 평택 공장은 직원 유니폼도 사원증도 똑같다.구미 공장 해고 노동자들은 당장이라도 유니폼을 입고 평택 공장에 출근하면 손에 익은 기계 장비로 일할 수 있다.
그래서 구미 공장 해고 노동자들은 평택 공장에서 남은 11명을 고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일본 본사는 올해 들어 평택 공장에 신규직원 30명을 채용했다.그러나 구미 공장 해고노동자 11명의 고용 승계 요구는 절대로 들어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회장님 포함 주요 조합원들이 일본 본사 항의 방문과 서울 일정 때문에 자리를 비워서 구미 금속노조 정책국장님과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조합원 두 분만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그래도 인원이 많이 없는 날에 한 명이라도 더 와줘서 좋다고 기뻐하셨다.이날 마침 고용노동청 평택지청 주무관들이 방문했으므로 간담회 현장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주무관에 따르면 평택 공장과 구미 공장의 법인이 다르기 때문에 법률상 행정기관이 개입하기 곤란하다고 한다.간담회는 별 성과 없이 끝났다.
저녁엔 평택옵티칼 직원들의 퇴근길 건너편에서 두 분과 함께 선전전을 했다.옵티칼 직원복을 입고 사원증을 목에 건 구미 공장 해고노동자가 고용 승계를 외치는 피켓을 들고 퇴근하는 평택옵티칼 직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자신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똑같은 사원증을 목에 걸고 심지어 같은 기계로 동일한 업무를 하다 퇴근하는 평택 옵티칼 직원들에게 손을 흔드는 구미 공장 해고노동자를 옆에서 지켜보며 나는 이 조합원 동지가 어떤 마음일지 생각했다.
이틀 뒤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예상대로 아주 즐거웠다.을지로입구역부터 종각역까지,땡볕 아래 아스팔트 도로 위 좁은 공간에 여러 부스가 들어서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지만 모두 질서를 지키며 천천히 조심스럽게 움직였다.나는 언제나 하듯이 예쁜 뱃지를 눈에 불을 켜고 사 모았다.트랜스해방전선 부스에 가서 내가 후원회원으로 등록했으므로 한정판(중요하다) 뱃지를 달라고 졸랐더니 활동가님들이 기뻐하셨다.푸른색,분홍색,흰색의 횃불 모양 뱃지를 손에 넣어서 나도 무척 기뻤다.입금으로 연대하고 한정판 굿즈 받자.
경남퀴어문화축제 부스에서는 매우 독특하게도 플라스틱 슬리퍼를 판매했다.뱃지,야구 4대천왕모자,티셔츠,열쇠고리는 흔히 봤지만 슬리퍼는 처음 봤기에 품절될까봐 얼른 구입했다.민주노총 부스에선 빨간 "총파업" 리본을 나눠주고 있었다.나는 원본(!)을 갖고 있어서 받지 않았는데,나중에 SNS에서 보니 어느 동지가 총파업 리본으로 집에서 고양이와 놀아주고 있었다.고양이도 총파업을 지지한다.노동해방 승리 투쟁이다.
오후 2시엔 인근 이스라엘 대사관 건물 앞에 모여서 팔레스타인 학살을 중단하라는 집회를 하고 학살 반대 구호를 외치며 주변을 짧게 행진했다.퀴어문화축제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리저리 쓸려 다니다가 이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에서 만나고 싶었던 분들을 모두 만났다.
데모가 언제나 이렇게 즐거웠으면 좋겠다.그러나 6월24일 화성 소재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서 23명이 사망하고 8명이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다.어느 한 지역의 어느 한 불건전한 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다.리튬전지처럼 특수한 위험물을 다루는 업종에 대한 현실적인 안전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무엇보다도 '위험의 이주화',즉 이주노동자들이 유독 하청이나 일용직 등 불안정한 위치에서 더럽고(dirty) 위험하고(dangerous) 힘들고(difficult) 죽는(death) '4D' 노동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로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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