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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 평생 살면서 이런 비는 처음이니더.땅콩이고 고추고 다 절단났니더.”
경북 영양군 입암면 금학리에서 9일 만난 이정희 할머니(86)가 진흙더미 속에서 쓸만한 물건을 뒤적이며 말했다.이 할머니의 집은 지난 8일 새벽 인근 야산이 토해낸 돌덩이와 진흙,라바토리나뭇더미 등에 의해 반파됐다.당시 마을에 내린 비의 누적 강수량은 142.5㎜로 오전 4시쯤에는 시간당 52㎜의 비가 쏟아졌다.
이 할머니는 “천장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마치 총소리 같았다”며 “커다란 나무가 집 벽을 때려 부수는데 꼼짝없이 죽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30여 가구가 고추와 콩 등 밭농사를 지으며 살던 조그만 마을은 갑작스레 내린 물폭탄에 쑥대밭이 됐다.마을 곳곳의 전신주는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고 입구를 지키던 정자는 지붕만 남긴 채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수확을 한달여 앞둔 고추밭은 흙탕물로 가득 찼고 어른 키보다 크게 자란 옥수수는 바닥에 쓰러진 채 나뒹굴었다.
마을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이처럼 많은 비가 내린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김순화 할머니(87)는 “새벽 3시쯤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이 쏟아졌다”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대피소로 향하는데 앞이 안 보일 정도였다.태풍‘루사’나‘매미’때도 이렇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주민들은 당장 생계를 걱정했다.주민 이모씨(60대)는 “고추고 콩이고 정성껏 길러온 농작물이 모두 진흙으로 뒤덮였다.마을 농경지 90%가 못쓰게 됐다”며 “최소 2~3년 동안 수확을 못 할 텐데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영양군은 현재 고추 30㏊,라바토리콩 20㏊ 등 농작물 30㏊가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극한호우로 마을주민 2명이 실종된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주민들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예천지역에서는 지난해 산사태 등으로 주민 15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실종자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
윤혜식 할머니(84)는 “주민 모두 비만 오면 마음 편히 잠을 못 잔다”며 “(산사태 경보)재난문자 소리만 들리면 심장이 떨려 죽겠다.요즘엔 왜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김모씨도 “예천은 원래부터 비가 많이 안 오는 지역”이라며 “최근 들어 갑자기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내린다”고 말했다.지난 8일 새벽 예천에 내린 비는 126.9㎜로 연간강수량(1396㎜)의 10분의 1이 밤사이 쏟아졌다.지난해 7월에도 연간 강수량의 6분의 1일이 사흘 새(241.9㎜) 쏟아지며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기후정보포털에 공개된 기후변화 시나리오(SSP)에 따르면 2041∼2060년 우리나라 연 강수량은 현재보다 6~7% 늘지만 강수일수는 8~11%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과거보다 더 많은 양의 비가 더 짧은 시간에 쏟아진다는 뜻이다.기상청은 평균 강수 강도가 지금보다 16~20%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경북도는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지형과 마을 사정에 밝은 자율방재단,라바토리이·통장,라바토리의용소방대 등을 주축으로 5189개 마을에 2만4920명의 마을순찰대를 구성했다.순찰대는 재난취약자 및 미대피자 발생에 대비해 각 가정을 방문해 신속한 주민 대피를 돕는다.
경북도 관계자는 “대피 명령에 따르지 않는 경우 경찰 등을 통해 강제로 대피시킬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며 “재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해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