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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회] 안나푸르나산군 한 바퀴 도는 386km,최고고도 5,416m 여행의 끝
해발 5,000m대 봉우리들이 아직 아래에 있었다.흰 눈을 인 검은 봉우리들은 주변의 짙은 주황색 흙과 잘 어울렸다.그들은 마치 서로 속삭이며 이야기 나누는 것 같았으며,구름이 만든 그림자는 산맥과 계곡의 옅은 회갈색 흙 위에 형언하기 힘든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었다.인간이 그린 어떤 그림보다 교묘하고 예측 불가하며,신성하리만치 아름다웠다.
생각 같아서는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고 싶었으나 급경사인 데다가 짐이 무거워 타기 어려웠다.비교적 안전한 곳에서 마음먹고 안장에 앉았으나 곧 포기했다.고개 북쪽의 풍경은 전반적으로 안나푸르나가 보이는 반대편보다 탁하고 어둡고 거칠었다.
그러나 하늘빛만큼은 더 상냥하고 경쾌했다.평화롭고 높이 뜬 적당한 구름과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하늘,그리고 가까운 곳부터 먼 곳에 이르기까지 중첩된 산맥을 덮은 눈을 감상하는 것은 이 여행의 백미였다.
다음날 일찍 짐을 챙겨 여관을 나왔다.빛이 풍성한 아침 풍경을 즐기고 또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다.얼마 안 가서 티베트 가옥을 닮은 마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돌과 흙벽돌을 쌓아 만든 집으로 지붕은 나무와 흙으로 평평하게 덮었는데 강수량이 많지 않다는 증거였다.
마을 동쪽은 토롱라와 높고 긴 산맥에 가려 아직 어두웠다.산맥에 걸친 햇빛에 의해 이동하는 그림자를 보고 있노라니 빠른 속도로 해가 올라왔다.마침내 빛이 들자 산맥 위로 늘어선 봉우리와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덩어리가 어울려 엄청난 풍광이 펼쳐졌다.산줄기 너머가 바로 로만탕 왕국이 있는 무스탕Musthang이었다.얼마 안 내려와 무스탕으로 가는 길이 있는 좀솜Jomshom마을에 도착했다.
오른쪽으로 망망히 펼쳐진 무스탕의 비경은 자꾸만 자전거를 세우게 했다.이번 여행은 안나푸르나 여행도 중요하지만,스페인 이비자다음 자전거 여행지로 결정한 무스탕에 관한 확실한 정보와 자전거 이동 방법을 안 것도 큰 수확이었다.
좀솜을 지나니 도로는 거의 평지거나 약한 내리막의 비포장이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좁고 가는 흰색 천처럼 산맥 위에 떠 있던 구름이 굵고 두꺼운 솜처럼 바뀌었다.길고 가파른 계곡은 산맥을 비켜 안쪽으로 이어졌다.마을은 계곡 오른쪽으로 흐르는 물을 관개하여 길과 구릉을 따라 경작지가 가지런했다.
'바파숭 묵티크세트파 무스탕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문구와 함께 지역 전통 복장을 한 사람 조형물이 너무 코믹하고 특이해 잠깐 자전거를 멈췄다.촌스럽지만 주변 풍광과 잘 어울려 사진을 찍고 있는데 마침 관광객을 태우고 달리던 차가 내 앞에서 섰다.그들은 조형물보다는 오히려 내 모습이 더 재미있었던지 휴대전화로 촬영하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유물이 아닌 것이 유물처럼 보이는 것 또한 참신한 볼거리였다.
사랑고트 경치에 반해 계획 바꿔
토롱라 정상에서는 거의 눈높이로 보이던 설산이 좀솜을 지나자 고개를 들고 봐야 할 정도로 높아졌다.해발 2,600m의 마르빠Marpa마을에 도착하자 골목에는 여관과 기념품 가게가 빼곡하고 마을 전체가 타르초로 덮여 있었다.이 마을은 고명한 승려인 마르빠에 관한 전설과 그가 수행했던 장소가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날이 저물어 어느 마을의 한 여관에 머물렀다.아침에 창문을 여니 엄청난 설산이 막 떠오르는 태양빛을 받아 은색으로 빛났다.식당에서 만난 영국인 트레커는 산에 대한 경외심이 많았으며,스페인 이비자특히 네팔 히말라야를 사랑한다고 했다.그날부터는 숲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기온도 올랐다.
마을을 벗어나서 절벽으로 난 길을 달리는데 지프 한 대가 다가와 내 옆에 서더니 창문을 열고 스웨덴에서 온 트레커가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마낭을 출발해 토롱라까지 나흘간 함께한 여정이 서로를 기억할 만한 인연이 된 것이다.버스 휴게소에서 만난 독일인 트레커는 포카라까지 로컬버스로 이동 중이었다.지프 대신 불편한 로컬버스를 탄 이유를 물어보자 진짜 여행 기분을 느껴보기 위해서라고 했다.독일인다운 답변이었다.
네팔은 아열대 기후부터 시작해 눈이 내리고 빙하가 있는 추운 지역까지 고도에 따른 온도 차이가 크다.덕분에 저지대에서 생산되는 과일과 채소는 물론이고 비교적 고도가 높은 지역의 초지에서 키우는 가축에 이르기까지 식품 재료가 다양하다.
포카라에 가까워지면서 고도가 1,000m 이하로 떨어지자 날씨가 마치 여름처럼 덥고 습했다.11월 늦가을임에도 가을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지루하리만치 길고 높은 고개를 올라 해발 1,600m인 사랑고트Sarangkot마을에서 하루를 머물렀다.여관이라기보다는 그냥 옥탑방 수준이었지만 짐 풀어놓고 침대에 누우니 눈이 저절로 감기면서 세상만사가 모두 내 품에 있는 듯 편안했다.
여행 말미로 가며 숙소에서 늦게 일어나는 버릇이 생겼다.저녁에는 근처 가게에서 생면과 닭고기를 사다가 오랜만에 요리를 했다.생뚱맞은 비유지만 페루 음식인 '칼도'와 같은 음식이 네팔에도 있었다.닭을 푹 삶아 낸 국물에 소금으로 간을 하고 양파,감자를 썰어 넣은 후 면과 함께 끓인다.
두 끼 먹을 분량을 요리했는데 먹다 보니 한 번에 다 먹어버렸다.덕분에 식곤증인지 피로 누적인지 다음날 아침 늦도록 눈을 뜨지 못했다.나중에 알았는데 '사랑고트'는 포카라에 관광 온 사람들이 안나푸르나와 다울라기리 같은 눈 덮인 히말라야 설산을 보기 위해 올라오는 경치 좋은 명소였다.
마침 논 한가운데에서 벤 벼를 탈곡하기에 가까이 다가갔다.농부들은 대부분 낫으로 벼를 베어 단으로 묶는다.그리고 적당히 볏단이 마르면 돌이나 나무통에 메쳐 나락을 턴다.그리고 아직 볏짚에 남은 나락은 소가 밟아서 최종적으로 낟알을 털어낸다.아마 이런 작업은 수백 년에 걸쳐서 이어져 온 방법일 것이다.
오전 일찍 포카라에 도착했다.사랑고트 마을 정점으로부터 급격한 내리막이기에 고도차는 600m가 넘지만 단번에 내려왔다.보름 전 포카라를 출발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만약 누군가 안나푸르나를 돌아본 감회가 어떠냐고 묻는다면,"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언제나 설레고 아름다웠다"며 웃을 것이다.
네팔의 가장 큰 축제 날,여행을 마치다
포카라에서는 '레이크 사이드Lake Side'에 머물렀다.거리는 대부분 외국인들로 북적였으며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호텔로 가득했다.낮에는 시내버스를 타고 포카라 중앙에 있는 시장을 둘러봤다.그 나라의 정서와 일상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보면 그들의 몸짓과 표정을 통해 금방 알 수 있다.바자르(시장)나 광장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그걸 느낄 수 있다.걷는 모습,스페인 이비자말하는 모양,표정과 몸짓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인간사회의 다양한 흐름이 그 안에 존재한다.
포카라에서 버스로 이동해 카트만두의 '타멜'에 도착한 날은 바로 네팔의 가장 큰 축제가 열리는 날이었다.티하르Thihar 축제라고 하며 '빛의 축제'라는 의미라고 한다.거의 모든 상점마다 불을 밝히고 벽에는 금잔화 꽃을 걸어 놨다.길에서 상점 입구까지는 색깔을 입힌 가루를 뿌리고 그 위에 촛불을 세워 놨다.
스페인 이비자그림을 그린 후 촛불이나 양유 등잔불을 가져다 놓는다." style="display: block; margin: 0 auto;">
나는 축제의 물결이 최고조일 때 타멜에 있었다.축제는 요란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사치스럽지도 않았다.적당하고 오히려 질박했다.답답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조금 더 활발하게 축제를 즐겼다.사업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다음에는 조금 더 사업이 잘돼 이익이 많이 나기를 신께 기도했다.어떤 계율 때문에 숨어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그날만큼은 드러내고 마셨다.큰소리로 노래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해도 용납이 되는 날이다.안나푸르나 자전거 여행은 그동안 네팔을 다녀온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확인하고 경이로운 히말라야의 비경을 몸으로 경험한 중요한 여행이었다.<연재 끝>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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