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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연극 '햄릿' 기자간담회
권력 향한 광기 속 고통받는 민중
[서울경제]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사회에 대한 냉소적 시선과 고찰을 담아 집필 4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끝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셰익스피어의‘햄릿’이 여성 햄릿과 함께 현대적 감성을 담아 돌아왔다.8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국립극단 연극‘햄릿’기자간담회에서 부새롬 연출은 “원작이 갖고 있는 여성 혐오 등 불편한 지점을 어떻게 불편하지 않게 만들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모호하고 해석의 여지가 많아 지금까지도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된 원작처럼,이번 각색도 관객들에게 충분히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연극은 시대의 거울입니다.시대의 본질을 생생하게 나타냅니다”라는 극 중 대사처럼,관객들은 지금의 우리 사회와 연극 속 세계를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된다.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다만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라는 원작의 대사는 이번 각색의 메시지와 상통한다.“이 나라는 최악이다”라는 청춘들의 외침이 항상 옳은 것일까.극은 클로디어스가 왕을 시해한 악인인지,햄릿은 정말로 미친 것인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부 연출은 “고전을 보면 구경만 하게 되는데,관객들은 자신의 마음을 담아 작품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먼 거리에서 보면 햄릿과 클로디어스,폴로니어스 모두가 권력을 탐닉할 뿐이다.권력 쟁취는 작중 등장하는 허울 좋은 진상조사위원회 같은 절차적 정당성의 확보를 통해 이뤄진다.그 속에서 희생되는 것은 오필리어와 레어티즈 같은 권력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위정자들의 갈등은 백성들만 힘들게 한다.계속되는 전쟁과 높은 세금으로 인해 고통 받던 백성들은 극의 말미에 타국의 또 다른 지배자 포틴브라스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맞이하게 되고 극은 남은 이들에 대한 폭정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며 끝난다.정진새 작가는 “한국 뿐 아니라 민주정 국가 아래서 벌어지는 내홍들을 그리려 했다”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팬데믹이 있었던 4년 전보다 지금 시대가 더 작품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밝혔다.
햄릿은 여성이,오필리어는 남성이 됐지만 여성주의적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캐릭터들의 성별 변주는 다만 원작과의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게 하며,제노아 축구관객들이 기존 캐릭터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작품과 캐릭터 자체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부 연출은 “성별을 넘어 단지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에 집중하는 것이 작품의 본질을 보여줄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2020년 제작이 완료됐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관객을 만나지 못했다.대신 온라인으로 공개되며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간결함은 기지의 정수다”라는 원작의 한 대목처럼 대사들은 더욱 의도가 확실해지고 간결해졌다.현대적으로 바뀐 대사들은 만연체와 화려체로 구성된 원작 대비 현대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당시 공연 연출과 무대의 모티브가‘흙’이었다면 이번 작품의 중심 소재는‘물’이다.무대 중앙을 채우고 있는 물과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는 죽음과 복수를 상징함과 동시에 정화를 상징하기도 한다.작품 속 인물들은 물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죽음을 맞이한다.부 연출은 “물이라는 소재를 죽음의 공간으로 해석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햄릿 내면의 광기를 통해 인간 본성의 심연을 드러낸 배우 이봉련은 이 작품으로 2021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극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이봉련은 “여배우에게 햄릿 역이 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었다”며 “이번 작품은 제 편견을 탈피하고 깨 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공연은 29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리고,전 회차 매진됐다.이후 다음 달 9~10일 세종예술의전당,16~17일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만날 수 있다.
/한순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