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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이 4일부터 강도 높은 진료 축소·재조정에 돌입했다.경증 환자의 외래 진료,보너스가 있는 무료 슬롯비응급 수술을 줄이고 중증·응급·희귀난치성 질환의 진료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것으로 사실상 서울대·세브란스병원의 '무기한 휴진'과 내용이 다르지 않다.
이날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은 다른 날과 다름없이 환자로 붐볐다.신관 어린이병원,보너스가 있는 무료 슬롯동관 신장내과 등 주요 진료과는 물론 서관 채혈실도 대기자가 많아 줄을 서야 했다.남편의 뇌종양으로 입원 치료를 위해 경상도에서 올라왔다는 70대 유모씨는 "의사들 휴진한다는 소식에 불안했는데 바로 입원 수속을 밟으라고 한다.천만다행이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서울아산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에 따르면 이날 외래 환자는 전년 동일 기간 대비 30.5%,전주 대비 17.2%가 줄었다.전체 23개 진료과를 비대위가 전수 조사한 수치다.다만,현장에서 우려할 만큼의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다.병원 관계자는 "외래 진료 건수는 1만건이 조금 넘는다.진료과마다 진료 감소율의 차이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문제는 병원을 처음 찾는 신규 환자는 더 많이 줄었고,앞으로도 이런 상태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애초 병원 문턱조차 밟지 못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는 의미다.실제 비대위의 자체 조사를 보면 이날 외래 환자 감소율은 신규 환자가 전년 동기 대비 42% 줄어 평균치를 훨씬 상회했다.이날 오전도 다른 곳과 달리 동관 로비에 위치한 신규 환자(처음 오신 분) 창구는 한산하기만 했다.
60대 양모씨는 지난 5월 초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에서 위 선종을 발견했다.선종은 위 점막에 이상 변성이 생긴 것으로 위암의 전 단계로 취급된다.조직 검사 결과 암일 확률이 30%가 넘어 '큰 병원'으로 가라는 의사의 말에 진료 의뢰서를 받고 아산병원에 예약을 잡았다.
어렵게 이달 중순 외래 진료를 예약했지만,양씨는 지난달 말 갑자기 내년 3월 초로 미뤄야 한다는 상담원의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그는 "문제가 있으니 빨리 큰 병원에 가서 검사·치료하라는 말에 두 달을 기다렸다.그런데 이번엔 8개월을 더 기다리라고 한다"며 "내년에도 또 미뤄질 수 있다는데 의사 얼굴도 보지 못하고 암으로 죽으라는 것이냐"고 울분을 터트렸다.
양씨와 같은 신규 환자는 재진 환자보다 더 많은 의료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그러나 비대위 등에 따르면 현재 진단을 책임지는 영상의학과와 사실상 수술을 관장하는 마취통증의학과가 전공의 이탈로 업무 부담이 커지면서 교수들마저 '조용한 사직'으로 병원을 떠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영상 결과를 판독할 영상의학과 의사가 부족하니 신규 환자를 진단하고 싶어도 검사를 진행하기 어렵다.외과 의사가 수술하려고 해도 환자 안전을 책임질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적으면 진행하기 힘든데다,수술 전후 입원 환자를 관리해줄 전공의도 병원을 떠나 기존 환자의 치료만으로도 남은 의료진이 허덕이는 실정이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서울아산병원의 진료 축소·재조정이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애초 일주일 휴진에서 방향을 변경한 것도 장기적으로 볼 때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의견이다.서울아산병원 비대위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교수들이 과로하면서 환자를 봐왔지만 정신적,체력적인 한계로 더는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의료공백의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모습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 생각하는 의사가 많다"고 말했다.단,일각에서는 이런 상태가 유지될 경우 암 등 중증 환자조차 치료할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날 병원에서 만난 고범석 유방외과 교수는 지난달 23일부터 환자·전공의,병원 구성원에게 미안한 마음에 단식을 유지하고 있었다.정해진 수술은 커피를 마셔 컨디션을 끌어 올린 후 모두 시행한다고 했다.이틀 전에도 그는 수술 5건을 집도했다.고 교수는 "진료 축소·재조정은 전공의가 돌아오기 전까지 유지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신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