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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9년 싸움’대법 승소
생계 위기 겪으며 기약없는 싸움 버틴 이유는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은‘들꽃’을 스스로의 상징으로 삼아 왔다.2015년 노조를 만들자마자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된 뒤,11일 대법원의 불법파견·직접고용 판결까지 9년 동안 해고자로 살았다.22명의 해고자들은‘들꽃처럼 끈질기게’라고 되뇌이며 스스로를 다잡았다.두 아이의 아빠 허상원씨(54)도 그 중 하나였다.
허씨는 2012년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 GTS에 입사했다.최저임금을 받으며,[볼링 #42] 파워볼링점심시간 20분 만에 식은 도시락을 삼키는 날이 많았다.2015년 허씨는 동료로부터‘노조가 생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아사히글라스에 오기 전까지 허씨에게 노조란‘원청 정규직만의 일’이었다.그는 “노조 하기 전에는 시키는 대로 일했지만 여기 가도 비정규직,저기 가도 비정규직으로 많은 설움을 갖다 보니‘나도 노조라는 거 한번 해보자’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설립 한 달 만에 GTS 노동자 178명은 문자로 해고와 공장 출입금지 통보를 받았다.9년 싸움의 시작이었다.노조는 광화문 광고탑 옥상부터 검찰청 앞 천막 농성장까지 안 간 곳이 없었다.불법파견과 아사히글라스 직접고용 의무를 대법원에서 인정받기 전까지 노조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1·2심 승소),불법파견(1심 승소,2심 패소),[볼링 #42] 파워볼링부당노동행위(노동위원회 인정,[볼링 #42] 파워볼링1·2심 패소) 등을 계속 다퉜다.
‘한국의 대표적인 장기 투쟁 노조’라는 이름은 기쁘기만 한 훈장은 아니었다.첫 조합원 138명은 줄고 줄어 22명만 남았다.전국의 수많은 투쟁 현장을 찾아 함께 싸웠지만 막상 자신들은 회사로 돌아갈 수 없었다.같이 연대해 싸우고,다시 복직으로 이어진 현장을 갔을 때에도 마음이 복잡했다.허씨는 “보람차면서도 부러웠죠.저게 내 일이었으면”이라고 했다.
오랜 투쟁으로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생계문제였다.가족들에게 미안한 날이 많았다.다른 조합원들처럼 허씨는 낮에는 노조 활동을 하고,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돈을 벌었다.4인 가족의 가장에겐 턱없이 부족한 수입이었다.
투쟁 초기였던 어느 날 허씨의 고등학생 딸이 영어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다.학원 문 앞에서 딸은 “안 갈래”하고 뒤돌아 울었다.없는 돈을 끌어모아 다시 학원 등록을 해줬지만 이 일은 허씨의 기억에 박혔다.그는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 아버지,남편의 모습을 보여주니 미안했고,[볼링 #42] 파워볼링때로 참지 못해 나쁜 말을 하기도 한게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허씨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아직 결과가 안 나올까 하는 조바심 때문에 큰 고비가 찾아와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빚을 내면서 버텼다‘생계팀’조합원들은 평일에는 생업을 하며 일정 금액을 노조에 지원하고,[볼링 #42] 파워볼링주말이면‘투쟁팀’을 대신해 농성장을 지켰다.
허씨는 이날 오전 동료들과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찾아 선고를 들었다.조합원들은 투쟁 3288일째이던 지난달 29일 9주년 결의대회에서 입었던‘32팔팔 티셔츠’를 이날도 맞춰 입었다.허씨는 “마지막으로 내가 옳았다는 걸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9년의 싸움을) 버틴 것 같다”며 “결국 올바른 판결이 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허씨는 “공장에 가서 정년을 맞고 싶은 것이 작은 소원”이라고 했다.이날 대법원 선고 후 눈시울이 붉어진 허씨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응,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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