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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뒤 구미 같은 지역 실종 여중생 성폭행후 살해[사건속 오늘]
전화기 꺼진 위치 똑같아,주변인 범행 가능성…강호순 수법 비슷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2002년 8월15일 연락 두절된 딸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발신자를 확인할 수 없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통화 너머의 발신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한참을 머뭇거린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애타게 딸을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는 실종신고 일주일 뒤 의문의 전화를 받고 다시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고,그제야 경찰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딸이 금새라도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던 아버지는,지금 이 시각까지도 22년 전 연락이 끊긴 그 딸을 기다리고 있다.
◇ 남자 친구에게 "버스 타러 간다"며 사라진 20대 여성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의문의 전화가 걸려 오기 일주일 전 8일 경북 구미 구포동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A 씨(20)가 홀연히 사라졌다.
A 씨는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집 앞 버스정류장으로 나간 뒤의 행적이 마지막이었다.당시 A 씨는 남자 친구에게 "버스 타고 갈게"라는 연락을 한 뒤 사라졌다.
A 씨의 남자 친구는 그가 오지 않자 계속해서 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을 받지 않았고,몇시간 뒤 A 씨의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A 씨의 가족은 오후 10시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하지만 경찰은 "대학생이니 밤에 들어올 수도 있다.기다려봐라"라며 단순 가출로 판단해 실종 신고를 받지 않았다.
A 씨의 부모는 불안한 마음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지만 기다렸던 딸이 돌아오지 않자,9일 오전 다시 실종신고를 접수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 사건을 가출로 판단하며 수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 행복한 가정,아시안컵 필드골가출 이유 없어…수상한 사람들 접근 흔적
A 씨는 학점이 4.5에 이를 정도로 학교 성적이 상위권이었으며,남자 친구와의 사이도 좋았고 가정불화도 없었다.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성실하게 하는 등 가출을 의심할 부분이 전혀 없었다.
실종 당일 남자 친구와 점심 약속을 잡았고,평소와 같이 아르바이트를 갈 계획을 세웠던 그가 돌연 가출한다는 것은 실종과 연계되는 부분이 전혀 없다.
며칠이 지나자 경찰은 A 씨 주변인 조사를 시작했다.이때 A 씨가 하고 있던 알바 장소에서 퇴근길 두 명의 낯선 남자가 접근했다는 제보가 전해졌다.이들은 A 씨에게 "돈 많이 버는 알바를 소개해 주겠다"는 얘기를 하며 접근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하지만 이미 시간이 흐른 뒤였고,당시 CCTV 등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증거 또한 없었기 때문에 끝내 그들의 정체를 밝힐 수 없었다.
◇ 일주일 뒤에서야 수사 시작…걸려 온 의문의 전화 '한 통'
15일 오후 7시 A 씨의 아버지에게 의문의 전화가 걸려 왔다.아버지가 전화를 받았지만,한참을 수화기를 들고 있던 상대는 아무 말도 내뱉지 않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발신지 추적 결과 경북 김천시 삼락동의 한 대학교 병원 공중전화로 밝혀졌다.발신자는 확인되지 않았고,다시 그와 같은 전화는 오지 않았다.그것이 간접적으로나마 추정한 A 씨의 마지막 행적이었다.
◇ 같은 지역에서 실종된 여중생…성폭행 뒤 살해 흔적
A 씨가 실종된 지 14일 뒤인 22일 같은 지역에서 여중생 B 양이 행방불명됐다.
B 양(14)은 구미시 옥계동에서 친구들과 당시 유행했던 사진을 찍고 오겠다고 부모에게 말한 후 집을 나섰지만 몇시간 뒤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이에 B 양의 부모는 당일 밤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역시나 경찰의 즉각적인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실종 9일 뒤인 30일 수사에 적극성을 띠지 않았던 경찰은 B 양을 찾는 전단을 배포하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날 오전 신고 8일 만에 마을에서 20㎞ 떨어진 낙동강 변에서 B 양의 익사체가 낚시꾼들에게 발견됐다.
B 양의 신체에는 성폭행당한 뒤 목이 졸려 살해당한 흔적이 나타났다.
B 양 가족은 그간 이어져 온 경찰의 미온적 수사에 울분을 토했지만,끝내 범인을 지목하지도 못한 경찰 관계자는 "수사 인력이 부족했다"는 납득하기 힘든 해명만 내놨다.
◇ 실종 시간대 위치 유사…주변인 범행 가능성 높아
A 씨와 B 양의 사례에선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실종 당일 그들이 이동하려고 계획했던 곳은 남쪽이었지만,아시안컵 필드골전화가 꺼진 위치는 정반대인 북쪽이었다.
해당 주위는 논,밭으로 둘러싸여 있는 외진 지역이었다.이동 수단이 거의 없었고,버스를 한번 놓치면 꽤 오랜 시간이 소모되는 곳이었다.범인은 이러한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주변일 확률이 매우 높다.
또 실종 시간대는 밤이나 새벽이 아닌 환한 오전과 오후였고,둘은 각각 다른 날 1㎞도 떨어지지 않은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있었으며 같은 번호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 연쇄살인범 강호순 범행과 비슷…두 사건 모두 미제로 남아
이는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방식과 거의 유사하다.강호순의 대부분 범죄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여성들에게 다가가 목적지를 묻고 자신의 차에 태운 뒤 외진 곳으로 끌고 가 성폭행 후 목 졸라 살해했다.
한편 이후 경찰의 계속된 수사에도 두 사건에 대한 어떠한 물증과 증거,또한 이동 행적들을 일체 찾을 수 없었다.
가족들에게도 그 어떠한 금품 요구 등의 협박 전화도 걸려 오지 않았다.결국 현재까지 A 씨와 B 양의 실종 사건은 각각 '장기 실종'과 '장기 미제'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