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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능력 제로’탈출법 〈上〉
지적 능력 아닌 정서지능 높아야… 노력해서 변하려는 의지에 달려
상대방 처지 감정이입 연습 필수… 역할극 연기수업이 도움되기도
미술-음악-문학 등에 몰입하면,타인 마음 느끼는 간접경험 증가
“직간접적 상호작용 연습이 핵심”
“육아가 얼마나 힘든데,그냥 안 낳는 것도 방법이야.” (난임으로 걱정하는 친구에게)
“요즘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래.” (암 진단을 받은 지인에게)
아무리 위로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해도 상대방 입장에 제대로 서 보지 않은 채 섣불리 나오는 말은 오히려 상처를 줄 수도 있다.진정한 공감을 하려면 구체적 상황에 대한 인지적 이해뿐 아니라,정서적 감정이입과 이에 따른 배려 행동까지 이어져야 한다.이런 과정 없이 오지랖 넓게 참견하고,내 잣대로 판단하는 것을 두고 스스로 공감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악의가 있어야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니듯,위스키 토토의도하지 않은‘무례함’도 상처를 준다.
주위에서‘공감 능력 떨어진다’고 핀잔을 줘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태어날 때부터‘공감 능력 제로(0)’로 태어났기 때문일까.반대로‘공감 과잉’으로 다른 사람 감정에 휘둘리며 늘 피곤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공감이 메마르거나,과하게 흘러넘쳐 사회생활에 문제가 되는 이들에게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공감의‘골디락스’로 갈 방법은 없는지 상,하편에 걸쳐 알아보자.
공감 능력은 정서 지능지수(EQ)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정서 지능은 정서를 처리하고 조절하는 능력으로,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똑똑하게 잘 다루는 정도를 나타낸다.정서 지능과 대비되는 인지적 지능지수(IQ)가 높아야 공감 능력이 좋다는 오해도 있지만,지적 능력이 공감 능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즉,IQ보다 EQ가 높아야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한때는 EQ와 공감 능력도 IQ 비슷하게 유전적 영향이 커서 변하기 어렵다고 봤지만,최근 공감 능력은 연습이 필요한 기술에 가깝다는 주장이 주목받고 있다.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과거보다 아동,성인 모두 타인과 같이 놀고 싸우고 양보하는 상호작용을 맺는 사회적 만남이 줄어들면서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경험 자체가 줄었다”며 “이때 상호작용 경험을 늘리려는 개인 의지에 따라 부족한 공감 능력을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노력해 봤자’라는 회의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이보다는‘노력해서 남들에게 더 많이 공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112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첫 번째 그룹에는‘공감 능력은 개발될 수 있다’는 내용을,두 번째 그룹에는‘공감 능력은 변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전문가 인터뷰를 각각 보여 줬다.한쪽으로 치우친 전문가 의견을 믿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그 다음 이들에게 동성 결혼 합법화 같은 민감한 현안에 대해 반대 진영과 토론할 때 상대를 얼마큼 이해할 수 있을지 물었다.그러자‘공감 능력은 가변적’이라는 글을 읽은 이들은 상대를 최대한 이해해 보겠다고 했지만‘공감 능력은 불변한다’는 글을 읽은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의 주장이 맞다고 더욱 확신했다.연구진은 “중요한 것은 태생적으로 공감 능력을 타고났는가가 아니라,광명 토토변화하고 발전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에 달렸다”고 분석했다.
●‘다른 사람 신발 신어 보기’
북미 원주민 샤이엔족(族)에는‘네 이웃의 신발을 신고 두 달 동안 걸어 보기 전에는 그를 판단하지 말라’는 격언이 전해 내려온다.철저히 상대방 입장이 돼 보기 전에는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다.공감 능력을 키우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 보는 것’이다.
애덤 골린스키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실험에 참가한 학생 37명을 세 그룹으로 나누고,신문 가판대 근처 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 남성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노인의 일과를 상상해 글로 써보라고 했다.첫 번째 그룹에는 노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선입견을 최대한 배제하라고 요청했고 두 번째 그룹에는 내가 사진 속 노인이라고 생각해 보라고 했다.세 번째 그룹에는 아무 요청도 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실험에 앞서 다른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반적으로 노인 남성에게 갖는 부정적 선입견을 알아봤다.분석 결과 외롭고,의존적이고,꼰대 같고(전통을 따지고),고집스럽고,건망증이 심하다는 다섯 가지 특징이 추려졌다.연구진은 실험 대상인 세 그룹에서 이 다섯 가지 묘사가 각각 얼마나 나타나는지 살펴봤다.
가장 많은 선입견이 드러난 그룹은 아무 요청 사항이 없던 세 번째 그룹이었다.선입견을 배제하라고 요청한 첫 번째 그룹에서는 다섯 가지 묘사가 세 번째 그룹보다 훨씬 적게 나타났다.그런데 내가 노인이라고 상상하며 글을 쓴 그룹은 부정적 묘사가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세 그룹 가운데 노인의 하루를 가장 긍정적이고 밝게 묘사했다.
연구진은 “의식적으로 선입견을 억제하는 방법보다 상대방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 상대를 긍정적이고 공감하듯 이해하는 데 더 큰 도움을 준다”고 분석했다.이후 젊은 흑인 남성 사진을 가지고 진행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이 연장선에서 연기 수업이 공감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연기야말로 상대방 신발을 신어 보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기 때문이다.블라이드 코빗 미 밴더빌트대 정신의학 및 심리학과 교수 팀 연구에서도 이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코빗 교수 팀은 공감 능력이 부족한 8∼14세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에게 역할극 수업을 10회 진행한 뒤 2개월 동안 추적 관찰했다.그 결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을 포함해 사회적 소통 능력이 전반적으로 좋아졌다.
● 글로 배우는 공감의 효과
공감 능력 발달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또 다른 비법은 놀랍게도 미술,음악,문학 같은 예술에 있다.작가 의도를 상상하거나,주인공에게 몰입하는 경험을 많이 할수록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 신발을 신어 보는 경험이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이자,예술과 뇌과학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에릭 캔들 컬럼비아대 의대 명예교수는 저서‘통찰의 시대’에서 “예술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창의적인 과정,즉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어 낸 인지적,감정적,공감적 과정을 뇌에서 재현하고자 하는 억누를 수 없는 충동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영어 단어‘empathy(공감하다)’는 예술 작품에 감정을 이입해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의미의 독일어‘Einfhlung(감정이입)’에서 왔다.그렇다고 여기서 말하는 예술이 반드시 미술관이나 클래식 음악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TV 드라마,영화관,극장,콘서트장을 비롯해 스마트폰으로 접하는 사진 한 장,노래 한 곡에서도 예술을 느낄 수 있다.미국 TV 드라마‘왕좌의 게임’을 사랑하는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등장인물에 빠져드는 몰입도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학 또한 다른 사람 입장이 돼 보는 간접적 경험을 제공한다.주인공의 서사가 있다면 만화책도 가능하다‘공감은 지능이다’를 쓴 자밀 자키 미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타인과의‘가벼운 접촉’이라고 봤다.다른 사람의 삶을 간접적으로 맛보면서 그의 입장이 돼 보고,현실에서 그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미 로체스터대 심리학과 연구진이 전 세계에서 실시된 관련 연구 14건을 분석한 결과,주인공이 등장하는 문학작품을 읽으면 논픽션 장르 글을 읽거나 독서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정서적,인지적 공감 능력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적 경험을 통한 공감으로 편견을 해소할 수도 있다.편견 대상이 주인공인 문학작품을 읽고 나면,이들에게 감정이입하는 경험을 통해 좋지 않은 인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여러 연구에서 무슬림,이민자,동성애자가 주인공인 문학작품을 읽고 난 뒤에 그동안 갖고 있던 편견이 상당 부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신 교수는 “우리 사회에 공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늘어난 이유는 학생은 독서하지 않고,성인은 문학작품보다 자기계발서를 더 많이 읽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며 “여러 직·간접적 접촉 경험을 늘리는 것이 공감 능력을 키우는 데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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