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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
베티나 슈탕네트 지음 | 이동기·이재규 옮김 | 글항아리 | 864쪽 | 4만8000원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은 독일 철학자 베티나 슈탕네트가 2011년 출간한 책의 한국어 번역판이다.해나 아렌트의 저 유명한‘악의 평범성’개념이 왜 잘못된 것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아렌트는 1963년 출간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나치의 유대인 정책을 관할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그의 경우에는 유대인에 대한 광적인 증오심을 갖거나 광신적인 반유대주의 혹은 그와 같은 종류의 것을 주입받지 않았다.(중략) 이 문제를 흔한 말로 표현하자면,그는 그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했을 따름이었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길사) 아이히만이 반유대주의에 물든 악마가 아니라‘아무런 생각 없이’상부의 명령을 수동적으로 집행한 소심한 관료였다고 본 것이다.
저자는 아이히만이 195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망명 중일 때 남긴 기록과 대화록과 네덜란드 출신 언론인 빌럼 사선이 아르헨티나에서 1957년 진행한 아이히만 인터뷰 녹음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아렌트의 이 같은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특히 저자는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이른바‘사선 인터뷰’를 최초로 완전히 복원했다.
아이히만은 명령에 순응하는 조용한 관료가 아니었다.그는 나치가 지배하는 독일에서 유대인 추방을 조직하고 수행하는 능력으로 출세가도를 달렸다.친위대 내에서‘유대인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해 히브리어를 할 줄 안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친위대 대장 하인리히 힘러와의 사적 친분을 들먹이며 상급자인 친위대 부장 카를 볼프 대장에게 고함을 질렀다고 자랑한 적도 있다.“아이히만은 조금이라도 그럴 듯해 보이는 것이 있으면 뭐든 내세워 뽐냈다.이를테면 헝가리 최고의 권력자와 직접 교류하고 있다든지,제3제국 고위 권력자들과도 간접적으로 교류하고 있다든지,그리고 개인용 비행기 동원부터 아우슈비츠 가스실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권까지.”
아이히만은 단순히 명령을 이행한 것이 아니라 절멸 기계를 설계하고 작동시킨 “능동적 행위자”였다.그는 한겨울에 유대인들이 수백킬로미터를 도보로 이동하는 계획을 구상한 뒤‘죽음의 행진’이라고 명명했고,3인 마작 왕패평소에도 “나는 사냥개야” “내가 아우슈비츠의 물레방아를 돌리는 거야”라는 말을 떠벌리고 다녔다.1941년 런던에서 발간된 독일어 신문‘디차이퉁’이 “사전 계획된 대량학살”의 지휘자로 아이히만을 지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히만에게 유대인에 대한 광적인 증오심이 없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아이히만은 확신에 찬 인종주의자였다.이 점은‘사선 인터뷰’에서 잘 드러난다.인터뷰 맺음말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이 신중한 관료는 어떤 광적인 전사를 수반했습니다.나의 생득권인 내 혈통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전사지요.(중략) 나의 민족에게 유익한 것이 내게는 신성한 명령이고 신성한 법입니다.”
아이히만에게 유대인은‘독일 민족의 적’이었다.“나는 당신에게 정말 솔직하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현재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코르헤어가 확인해준 1030만명의 유대인 중에서 우리가 1030만명을 죽였다면 나는 만족스러워 할것이고,좋다고,누스타카지노우리가 적을 말살했다고 말할 것이라고요.(중략) 우리는 수천 년에 걸친 교육을 통해 지적으로 우리보다 우위에 있는 적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고 말입니다.”
아렌트의 눈에 비친‘평범한 관료’의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아이히만은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에 납치돼 이스라엘로 이송됐다.예기치 못한 일이었으나 아이히만은 준비가 돼 있었다.아이히만을 상대한 이스라엘 경감은 “첫 번째 심리가 끝난 후,혼자하는 게임 추천나는 아이히만이 이 이야기를 처음 하는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면서 “나는 이자가 이전에 어디선가 그것을 시연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고 밝혔다.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에서의 망명 생활 시절 자신을 과거를 정당화하는 주장이 담긴 1300페이지 분량의 글을 썼다.해당 글에서 아이히만은 자신과 자신의 부하는 모두 무죄라면서 “우리는 모두 제국중앙보안청이라는 기계의 작은 톱니였고,따라서 전쟁 중에는 전쟁이라는 살인 모터의 거대한 동력 전달 장치의 작은 톱니들”에 불과했다고 강변했다.“나 역시 일개 희생자”라는 아이히만의 법정 최후 진술 진술은 오랜 시간 다듬어놓았던 자기방어 논리였던 것이다.
아이히만은 이스라엘의 감옥에서 자신을 “학구적이며 계몽주의와 세계주의를 갈망하는 평범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연출했다.“이것이 아이히만이 생애 마지막 해에 남들에게 보이기로 선택한 자신의 이미지였다.역할 속에 들어가 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능력 덕분에 그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되게 이런 주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책을 번역한 이동기 강원대 교수는‘옮긴이의 말’에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 속았다”고 평가했다.
“폭력 가해자들은 위로부터의 명령에 수동적으로 따르기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유와 인지 방식,파워볼 하는 방법특히 죄와 책임을 피해자와 희생자들에게 돌리는 적극적인 자기기만과 논리적 합리화를 통해 형성되고 지속된다.아이히만이 그랬듯이,그것은 자기과시 및 이미지 창출과도 연결되기에 가해자들은 전혀 정적이거나 수동적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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