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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

베티나 슈탕네트 지음│이동기·이재규 옮김│글항아리

수백만 유대인 학살 혐의 나치 장교

철학자 아렌트는‘무지한 자’로 치부

재판정서 책임 부인하던 아이히만

밖에선 범죄 정당성 떠벌리고 다녀

“그는 스스로 악행을 계획·실행했다”

‘악의 평범성’아렌트 주장 정면 반박

나치 독일의 핵심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은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재판장에 모습을 드러냈다.유대인 수백만 명을 학살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라한 행색의 나치 친위대 장교.그가 이 자리에서 남긴 “나는 히틀러가 만든 절멸 작동기계의 작은 톱니바퀴 중 하나일 뿐”이었다는 증언은 한나 아렌트의 통찰을 거쳐 오랜 기간‘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과 함께 회자됐다.아렌트는‘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명령에 순응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고 이는 20세기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베티나 슈탕네트는 이 책을 통해 아렌트의 주장에 정면으로 맞선다.아렌트가 그려낸 아이히만의 모습이 법정에서 연출된 가면이고 그가 단순한 행정가가 아니라,아리아 리조트 앤드 카지노 리뷰신념에 따라 학살을 계획한 인물이었다는 주장은‘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흔든다.나치 패전 이후 그가 아르헨티나에 망명해 남긴 수만 건의 글과 메모를 모은‘아르헨티나 문서’속 그는 단순한 명령 수행자가 아닌‘악의 비범성’그 자체다.

여러 장소에 흩어져 있는 아르헨티나 문서를 퍼즐처럼 조립하고 아이히만의 본성을 추적해 완성한‘악인의 연대기’를 보면 그는 단순히 명령을 따르는 서류 행정관이 아니었다.그는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확신했고,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려고 끊임없이 계획을 세웠다.특히 1942년 이후 아이히만의 행적은‘수동적 관료’라는 아렌트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그는 유대인 강제 이송을 총괄하며,각국 점령지의 유대인들을 철저히 분류하고,hshsgame7기차 편성을 조정해 최단시간 내 최대 인원을 학살 시설로 보낼 방법을 모색했다.재판 과정에서 “나는 단지 수송 계획을 수립했을 뿐”이었다는 그의 주장과 달리 수송 열차의 배치를 계산하는 그의 모습은 기업의 물류 시스템을 최적화하는 관리자와 다를 바 없었다.아이히만이 독일 내부뿐 아니라 헝가리에서도 학살을 주도했다는 사실은 그가 단순히 행정가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유대인 절멸을 추진한‘신념형 나치’였음을 보여준다.1944년 헝가리 점령 후,그는 40만 명의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작전을 지휘했다.당시 독일 내에서도 패전이 가시화되며 유대인 학살을 중단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아이히만은 이를 거부하고 학살을 지속했다.

슈탕네트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시기는 아이히만의 망명 이후다.전후 그는 미군 수용소를 탈출해 195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로 도망쳤고,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명으로 숨어 살았다.당시 그가 남긴 자료들은 아이히만이 법정에서 연기했던‘평범한 관료’의 모습이 완전한 허구였음을 보여준다.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에서 나치 잔당들과 교류하며,자신의 역할을 미화하는 기록을 남겼다.특히 1957년부터 1958년 사이,나치 부역자이자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나치들의 대필작가였던 빌럼 사선과 진행한 1000쪽 분량의 인터뷰 녹취록은 그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인터뷰에서 그는 “우리가 1000만 명의 유대인을 죽였다면 더 만족했을 것”이라며,홀로코스트를 후회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또한,당시 나치 인사들이 대거 모인 아르헨티나에서 모임을 갖고 유대인 학살이 독일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었다고 떠벌리고 자신을‘유대인의 차르’라고 표현한 신문 사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책은 독일 현지에서 출간 이후 큰 반향을 일으켰다.아렌트의 주장을 50년 만에 “산산조각 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비교적 과거사를 숨기지 않고 잘 처리했다고 인정받는 독일조차 돌아봐야 할 역사가 남아있음을 성찰하게 했다.800쪽이 넘는 책의 방대한 분량은 진입장벽이지만,노트북 메모리 슬롯동시에 강점이기도 하다.소위‘벽돌책’의 미덕은 이처럼 한 권의 책이 불러오는 “이해를 위한 논쟁”에 있다.20세기 아렌트의 분석은 나치 시대의 범죄를 바라보는 새로운 틀을 제공하며 전체주의의 위험을 경고했다.21세기에 등장한 슈탕네트의 책은 극단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개인의 특이한 악의 양상이 얼마나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그리고 잊지말아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슈탕네트의 꿋꿋이 파헤치고 판단하려는 그 시도.재판장 위에서‘비범한 악인’이 밝힌 말에는 거짓이 있기 마련이고 이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밝혀지기 마련이다.864쪽,4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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