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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학사연구모임,12년 만의 성과
박순녀·이정호·정명자 등 여성 작가 재조명
장르에 그치지 않고 생활문학까지 확대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나는 새삼스레 무엇인가 슬펐다.아까만 해도 적십자 간호원을 지원할 듯이 흥분했던 내가 아닌가.나는 내가 아니,조선이라는 식민지의 한 소녀로 태어난 나의 환경이 운명적으로 너무 불순하다는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된 것이다.”(박순녀 소설‘아이 러브 유’중)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도내 유일 공립 여학교를 다니는 명화는 학도병 장행회(將行會)에 동원돼 합창을 하다 이상한 감정이 든다.지금껏 멋져 보였던 남학교 학도병과 적십자 간호원들이 더이상 좋아 보이지 않는 것.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니며 해맑게‘꺄르르’웃던 명화는 식민지 조선에서 소녀로 산다는 게 얼마나 고달픈 일인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1962년‘사상계’공모전에 접수된 박순녀의 소설‘아이 러브 유’에 대해 당시 심사 위원이었던 황순원은 일제 말기 여학교 시절을 회상하는 작품의 내용이 “너무 동화같다”고 평가했다.식민지 상황에서 파시즘 교육이,젠더 통치가 어떻게 체화됐는지 섬세하게 표현된 수작이지만,공모에선 가작에 그쳤다.박 작가 역시 “공모전에서 늘 2등만 하는 글 잘 못쓰는 작가”라며 자조할 정도다.박 작가는 남편을 일찍 하늘로 보내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문단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보니 그의 작품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간 남성 중심의 문학사에서 박 작가처럼 문단에서 소외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시작됐다.여성의 관점에서 여성문학을 시대별로 집대성한‘한국 여성문학 선집’이 7권짜리 전집으로 출간된 것이다.여성문학 선집을 기획한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이 관련 활동을 시작한 지 12년 만의 성과다.이 선집은 근대 개화기 조선부터 1990년대 민주화 이후까지 시대마다 독자적인 개성과 전환을 이룬 여성문학 작가와 작품을 선별했다.
특히 이번 선집의 특징은 시,경기 이천시 마장면 덕평로 811소설,산문,희곡 등 제도화된 장르 뿐 아니라 잡지 창간사,선언문,편지,일기,경기 이천시 마장면 덕평로 811노동 수기 등 생활문학까지 그 대상을 확대한 것이다.그간 문학사에서 다루지 않았던 '여성 글쓰기'를 망라한 셈이다.이에 여성 문학의 원류를 1898년 발표된 '여학교설시통문'(여권통문)으로 본다.기존의 문학사에선 1918년 여성교양지‘여자계’발표된 나혜석의‘경희’를 여성 문학의 효시로 보는 점을 고려하면 20년 가량 앞선 셈이다.
이와 함께 한국 문학사에 대한 전문적 지식 없이도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백과사전식 구성으로 편찬됐다.또 시대마다 사회·정치·문화적 맥락에서 작품과 작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책 서두에 '시대 개관'을 적었다.여기에 개별 작가의 생애와 작품,경기 이천시 마장면 덕평로 811문학사적 의미를 짚는 '작가 소개'와 작품마다 시대와 맥락을 이해하기 쉽도록 각주를 붙였다.
여성문학사연구모임 소속 김양선 한림대 교수는 “여성문학은 역사적 계보와 문화적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으며 주류 문학사에서 배제되거나 주변화돼 왔다”며 “그간 문학사에 없던 근현대 한국 여성문학의 계보를 집대성하고,제도 문학 중심의 구분에서 벗어나 여성의 지식 생산과 글쓰기 실천을 아카이빙한 최초의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여성문학 선집에 대한 (독자들의) 피드백을 통해 재단장하는 한편,7권의 선집을 1~2권으로 압축하는 작업도 계획 중”이라며 “향후에는 여성 문학사도 공동작업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