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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평전> 저자 김형수 작가의 북토크.오는 7월엔 이병률 작가 낭독회김남주 시인이 떠난 지 올해로 30년이 되었다.그의 삶과 그의 시는 2주에 걸쳐 군산 인문학창고 정담에서 울려퍼졌고,모인 사람들은 서로와 자신에게 반복하여 물었다.
'지금,나의 전선은 어디인가?나는 타오르는 불꽃에 영혼을 던져보았는가?'
국립군산대학교 인문도시센터의 국립대학육성사업으로 '문화적 삶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2024 정담북클럽'은 <김남주 평전>의 저자 김형수 작가를 초대하는 것으로 지난 6월 20일 시작되었다.작가가 참여,생전 김남주 시인(1946~1994)과 함께 했던 시간을 복기하며 참여자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6월 27일까지 열기는 이어졌다.
김형수 작가는 <김남주 평전>을 통해 자신의 삶을 들여다봤다. 김 작가는 현재 부여에 있는 신동엽문학관 관장이며,시인이자 소설가,평론가이기도 하다.또한 네 권의 평전을 쓴 '평전가'이기도 하다.취재를 위해 선배에게 전화 한 통 하기에 앞서 보름 가까이 망설이는 성격 탓에 취재가 어렵다고 하지만,그의 평전은 한 인물의 삶을 깊이 이해하게 한다.
누군가의 삶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평전을 쓸 때 가장 큰 어려움은 해당 인물의 가족 친지의 간섭과 취재비라고 한다.첫번째 평전인 <문익환 평전>을 쓸 때,의뢰인인 문성근 배우는 그 문제들을 모두 해결해 주는 조건으로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평전을 구상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조건을 수락하며 그렇게 정성을 들여 썼건만,10년이 지나서 보니 "내가 그를 제대로 몰랐구나!" 반성하게 되었고,다시 10년 지나 보니 "그때도 모르면서 또 아는 척 했구나!" 했다고 한다.
누군가의 삶을 안다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 일이다.그럼에도,김남주 평전을 읽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김남주의 시를 다시 읽고 김남주의 생과 자신의 생을 견주며 성찰하게 만들었으니,김형수 작가는 탁월한 '평전가'임이 분명하다.
김형수 작가는 김남주의 후학으로서,'남주형'의 평전을 자신이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어떤 평론가,어떤 역사가에게도 그 일을 뺏길 수 없었다.김남주의 생을 쓴다는 것은 곧 자신이 겪은 '5.18'과 '광주'를 바로 보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라는 주어가 수시로 등장하는 만큼 저자는 김남주의 선택과 판단,그가 놓인 상황을 기술하면서 '이럴수가','세상에' 등의 탄식으로 자신을 전면에 드러낸다."문익환 평전"(2004),"소태산 평전"(2016),"김남주 평전"(2022)에 이어 지난해에는 "신영일 평전"(2023)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광주'를 1980년 5월의 한 시점에 박힌 과거로 보지 않는다.혼란했던 그때,지도력을 발휘했던 어느 시민의 삶이 '1987년 체제'를 낳았음을 기록하면서 광주의 의미를 다시 밝히고자 했다.
김남주의 자기고백 "사실은 나도 그래"
그에 따르면,두오메가시인 김남주는 전사였단다.
이날,김남주가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전사로서 '재벌 화장 집을 털러가는 길'에 이어 '외갓집 가는 길'이 그에게 왜 중요했는지를 소리 높여 설명하던 김 작가의 말소리가 끊겼다.꼴머슴과 주인집 딸이었던 부모님을 통해 일찌감치 '계급'의 실체에 눈을 떴던 김남주의 삶을 떠올리다보니 목이 잠긴 것이다.
"김남주는 전사였습니다.그리고 시인이었습니다.그는 전사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그의 시 <자유>는 김남주가 가진 전사의 사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라고 그는 외쳤습니다."
김형수 작가는 <자유>에 곡을 붙여 노래하던 가수 안치환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김남주 생전에 그가 김남주에게 고백하기를,노래 후렴구이자 시의 마지막 연을 부를 때마다 너무 찔려서 부끄럽다고 했단다.하니 김남주 시인은 "사실은 나도 그래"하고 말하더란다.
.(상략).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지유여,형제여,동포여!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김남주,<자유> 부분
북클럽에 모인 참가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누가 당당하게 부끄럽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온 생을 걸고,목숨을 걸고 전사의 삶을 산 김남주도 그렇게 말했으니!오송회 사건으로 투옥되어 김남주와 수감생활을 함께 했던 군산 출신의 시인,이광웅 시 <목숨을 걸고>가 떠오르는 지점이었다.
당시 '남민전' 수감자의 석방을 돕자고 외친 유일한 인물이었던 문익환 목사의 말씀도 떠올랐다.
"감옥에서 막 석방된 문익환 목사가 유일하게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이들의 석방을 도와야 한다고,이걸 우리의 운동으로 삼자고 역설하고 다녔다.저마다 생각이 같든 다르든 목숨을 걸어본 사람들의 행동을 가벼이 평가하는 건 매우 부당한 짓이라는 말씀이었다." ("김남주 평전" 375쪽)
그렇게 목숨을 건 김남주의 삶과 뜻에 경탄하지만,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따르기에는 김남주의 삶과 뜻이 너무 어렵다,고 어느 참여자가 질문했다.이에 김형수 작가는 분명하게 말했다.
"그는 한번도,그 누구도 계몽하지 않았습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인 것이다.김남주는 그저 '읽기 쉬운 시'로 자신의 뜻을 밝혔을 뿐이다.
김형수 작가는 김남주가 '시인'인 이유를 다시 밝혔다.김남주는 평전 뒷부분에 밝혔듯이 김수영,신동엽,김지하가 이루지 못한 지점을 넘어선 시인이었다.천재적인 지적역량을 보였던 김지하와 비교해도 모자람없는 김남주가 끝까지 '해남 촌놈'으로 살았다는 것을 그는 매우 높이 평가했다.
누구보다 많이 읽고 공부한 '광주학파'의 지성이었지만,모나지 않은 언어로 시를 쓰려고 했다.김남주를 전혀 모르는 젊은 층이 읽어도 그의 시는 잘 전달될 것이라고 했다.오히려 선입견없이 시를 읽어내어 현재 자신들을 억압하는 것을 발견하며 김남주를 알아가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날 참여자 중에는 평화바람의 문정현 신부도 계셨다.그는 "김남주 평전"과 "김남주 시전집"을 모두 읽었다면서,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으로 옥살이를 하고 나온 자신에게 대뜸 '무기를 구해달라' 하던 김남주 시인과의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그가 얼마나 순수했던가를 회상했다.또한 지금 이 시대에 김남주의 정신만큼은 꼭 남겨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였다.
다같이 김남주를 읽었다.그래서 지금,우리의 전선은 어디인가?
한 주 후,'작가없는뒷담화'의 시간으로 참여자들이 만나 소감을 나누었다.각자 삶의 경험이 다른 만큼 소감은 다양했지만,김남주의 시와 평전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마음만은 일치했다.김남주의 시 <자유>,<자유에 대하여>,<아버지>,<어머님에게> 등을 함께 읽었다.
<김남주 평전>은 김남주의 짧은 시 <종과 주인>으로 시작한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 주인이 종을 깔보자/ 종이 주인의 목을 베어버리더라/ 바로 그 낫으로".
무서워서 섬뜩하다고 외면할 것이 아니다.어느 누구도 자신의 '존엄'을 밟혀서는 안된다고 했던 김남주의 말,아니 그 삶을 우리는 읽었다.
이날 현장에선 화성 리튬전지 제조공장 화재참사를 언급하면서 외국인 노동자 문제,노동문제,산업재해문제,의료문제가 토론거리로 나왔다.김형수 작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억압받는 세상에서,어린이,노인,모두가 전사여야 합니다.시대는 다르지만,누군가 학대받고 억압받고 부당하게 폭력을 겪고 있다면,'전사가 되어야 한다,' 김남주 시인은 말한 것입니다."
'어머니,두오메가당신은 아셔야 합니다'라면서 자신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지,왜 갇혀 있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한 시 <어머님에게>를 다시 읽으면서,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지금 내 삶의 행복만 기원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실체를 알아야 한다.그것이 불편하고 괴롭고,심지어 죄책감이 들지라도,알아야 하고,움직이는 것이 "김남주 평전"을 읽은 사람의 책임일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그릇담이 진행하는 정담북클럽 [part.1 시인의 평전]이 마무리되었다.이번주는 [part.2 시인의 출판]으로 만난다.
곧 작가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part.2 시인의 출판] 뒷담화 시간이 시작된다.시인이자 작가,그리고 출판사 대표인 이병률 작가와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펼칠 예정이다.누구든 군산으로 찾아와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개인 SNS에도 게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