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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옛 치즈공장 탐방하며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가 떠오른 이유

▲  임실 성가리 옛 치즈공장 표시판 ⓒ 이완우
 
여름 장맛비를 맞으면 밭에서 오이 열매가 쑥쑥 자란다.지난 6월 30일에 임실읍 성가리 상성마을에 보존된 우리나라 최초의 치즈공장(1967년 건립)과 치즈 숙성 토굴(1968년 완성)을 찾아갔다.이 시설들은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삼 년 전에 정비하여 옛 모습을 되찾았다.

임실성당 주임신부(1964년 부임)로서 성당의 사제관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치즈 상품을 생산(1966년)하기 시작한 지정환(1931~2019) 신부는 임실산양협동조합(1966년 설립)의 조합원들과 함께 직접 벽돌을 쌓아 올려서 1층의 작은 치즈 공장을 지었다. 

지정환 신부는 섭씨 15도 이하의 적정한 온도에서 치즈를 발효 숙성하기 위하여 조합원들과 함께 삽과 곡괭이를 들고 10미터 길이의 토굴을 파서 치즈 숙성 시설을 완성하였으며,벨기에에서 가져온 매뉴얼을 보고 태양광 온수 시설을 직접 제작하여 치즈 제조 과정에 활용하였다. 

치즈공장 건물 옆의 2층 건물(1975년 건립)은 지하실에 여러 물품을 보관하였고 1층은 사무실로 활용하였으며 2층에서는 지정환 신부가 생활하였다.지정환 신부는 임실성당 주임신부에서 농촌사목신부(1969년)로 임무를 옮기고 임실을 떠날 때(1981년)까지 임실 치즈의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  임실 성가리 옛 치즈공장 치즈 숙성 토굴 파기 최초 작업 (1967년,치즈공장에 게시된 자료 사진을 재촬영) ⓒ 이완우
 
이곳 성가리 옛 치즈공장 내부에는 치즈 제조 과정에 활용한 여러 가지 기계와 도구가 전시되어 있다.농가에서 착유한 우유를 모아서 보관하는 집유통은 우유의 신선도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1960년대 중반에는 냉장고가 일상화되기 이전이어서 농가에서는 우유 보관을 위해 우물을 판 집도 있었다.우유를 발효하여 치즈를 만드는 원형 치즈벳은 독일로부터 들여왔는데 이 공장의 창과 문은 턱없이 작았기에 조합원들은 지붕을 뜯어내고 이 기계를 힘들게 들여놓았다.

원유를 치즈벳으로 옮기기 전에 신선하게 보관하는 원유 냉각기,농가에서 소먹이용 풀을 절단하던 손작두,농가에서 착유한 원유를 원형 우유통에 싣고 치즈공장으로 운반하던 자전거,소 등에 얹어 우유통을 싣고 운반하는 데 활용했던 소지게인 길마,만리동 콤바크치즈공장 사무실에서 문서 작성과 연구 활동에 사용했던 2벌식 타자기 등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자니 60년 전의 치즈공장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했다. 

10년 주기로 굵직한 변화 거친 임실 치즈
 
▲  임실 성가리 옛 치즈공장 (1967년) ⓒ 이완우
 
시간이 멈춘 과거의 옛 치즈공장을 둘러보며,임실치즈의 출발부터 현재까지 60년 임실치즈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과정으로 보고 6단계로 구분해 보았다.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임실치즈도 대략 10년 주기로 굵직한 변화를 거치며 성장했다.

임실치즈 역사의 제1기는 산과 들의 풀밭에서 산양을 사육하여 임실치즈를 개척한 산양협동조합 시대였다.지정환 신부가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농가에 산양을 보급하고 산양유를 생하다가 치즈 생산으로 전환한다.임실산양협동조합을 터전으로 카망베르 치즈를 제조(1967년)하였고 치즈공장 건립과 치즈 숙성 동굴 조성 이후 성가치즈(체더치즈)와 정환치즈(포르살뤼치즈)를 생산(1970년)하였다.

제2기는 젖소가새로운 주인공이 된 치즈협동조합 시대였다.산양유 치즈 제조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지정환 신부는 젖소로 전환할 것을 제안(1972년)했다.이때 신태근(임실읍 두곡리)씨가 홀스타인 젖소 한 마리를 선뜻 구입한 후 임실 지역에서 젖소 사육이 증가하여 우유가 임실 치즈의 원유로 자리 잡았다.서울에 피자 가게가 생겼고(1972년),지정환 신부는 피자의 재료가 되는 모차렐라 치즈 생산에 성공하여 임실치즈의 전성기를 예약했다.
 
▲  임실 성가리 옛 치즈공장 원형 치즈벳 ⓒ 이완우
 
제3기는 임실읍 갈마리에 건립된 제2의 현대식 치즈공장(1986년) 시대였다.아시안게임(1986년)과 서울올림픽(1988년)을 앞두고 도시의 노점상이 철거되었고,제조실이 100평 미만인 식품가공업체가 단속 대상이 되었다.성가리 치즈공장은 규모가 20여 평이어서 임실치즈의 발전을 위해서도 대규모 새로운 공장의 건립은 필요하였다. 

제4기는 GATT 체제에서 우유 수급을 위한 임실낙농축산업협동조합(1991년 설립)의 시대였다.1980년대 후반부터 외국 농산물 수입 시장 개방으로 값싼 외국산 치즈 수입 시작하였다.우리나라의 낙농가 숫자는 급감하였고,신용협동조합 소속인 임실치즈협동조합의 조합원이 생산량으로는 우유 수급에 한계가 있어서 우유 수급망 확보가 절실하여 축산업협동조합 중앙회의 가입이 필요하였다. 

제5기는 IMF 외환 위기(1997년)를 극복하며 임실치즈축협이 농협으로 통폐합(2000년)되고 낙농진흥회에 가입(2001년)한 시대였다.임실치즈는 지역별 우유 수급 불균형의 해소 목적으로 조직(1999년)된 낙농진흥회에 가입하여 새롭게 성장하는 기회를 맞는다.
 
▲  임실 성가리 옛 치즈공장 사택 ⓒ 이완우
 
임실치즈 역사의 제6기는 임실치즈마을과 임실치즈테마파크를 중심으로 임실치즈가 체험과 관광 상품이 된 현 시대이다.2000년대 초기부터 임실치즈마을(화성리,중금리,금성리)의 임실치즈 체험 활동과 농촌 체험 행사가 관광 상품화되었다.임실치즈밸리 조성 사업(2004년)이 진행되었고.웰빙 바람을 타고 농가형 유가공 공장의 치즈와 요구르트 등 유제품이 생산되었다.2010년대 초기에는 임실치즈테마파크가 개장하여 임실치즈를 주제로 치즈 체험 관광 시대를 열었다. 

현재 임실치즈의 생산량은 대기업 치즈 생산량과 해외 수입량을 합한 우리나라 전체 치즈 유통량에서 상당히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그러나 임실치즈의 60년 역사는 우리나라 치즈 개척의 당당한 행진이다.산양유를 생산하던 1차산업 단계와 치즈 식품 제조의 2차산업 단계를 거쳐서 현재는 목장형 유가공 제품 생산과 치즈 체험관광의 3차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임실치즈에 불멸의 자취 남긴 지정환 신부
 
▲  임실 성가리 옛 치즈공장 치즈 숙성 토굴 입구 ⓒ 이완우
 
임실치즈 60년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지정환 신부는 벨기에 출생(1931년)으로 한국 천주교 전주교구 신부로 입국(1959년) 뒤 60년간 한국을 사랑한 성직자였다.지 신부는 임실성당 주임신부(1964년),임실 농촌사목 지도신부(1969년),임실 신용협동조합 지도신부(1973년)를 역임하며 임실치즈의 개척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그는 1970년대 초부터 다리에 발병한 악화한 다발성 신경경화증을 치료하기 위하여 벨기에로 갔다가(1981년),휠체어를 타고 우리나라로 돌아왔다(1983년). 

그는 전주교구 장애인사목 지도신부(1984년 2월)를 거쳐 전주시 인후동의 한 아파트에서 네 분의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며 장애인 공동체를 운영(1984년 7월)했다.천주교 전주교구와 벨기에 전교협조회의 도움으로 완주군 소양면에 대지 4000평의 무지개가족의 새로운 터전을 마련(1989년)하여 30여 년 동안 장애인들과 함께 희망의 무지개를 찾는 보람된 생활을 하였다.

지 신부는 임실 지(池) 씨라는 성씨를 새롭게 만들어 한국인으로 특별귀화(2016년)하였으며,2019년 4월에 선종하여 전주시 치명자산의 천주교 성지에 영면하였다.

지정환 신부의 오랜 친구가 그의 터전을 찾다 
 
▲  임실 성가리 옛 치즈공장 사택의 지정환 신부 숙소 ⓒ 이완우
 
6월 30일,지정환 신부의 오랜 친구 이옥진(90세,미국 뉴저지주 거주)씨가 딸 비비안(Viviance,미국 LA 거주)과 사위 존(John),손주 어거스트(August)와 함께 이곳 옛 치즈공장을 방문했다. 

코로나 시기에 고인이 된 이옥진씨 부군은 지정환 신부와 함께 한국에서 신부로 목회 활동을 하다 이옥진씨와 결혼 후 외교관이 되었고,이들 부부는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도 지정환 신부와 둘도 없는 친구로 꾸준히 연락하며 지냈다.딸 비비안도 어렸을 때 지 신부를 삼촌처럼 친근하게 따랐다고 한다.이 가족은 그리운 디디에(지정환 신부 본명,만리동 콤바크Didier t'Serstevens)를 찾아 지 신부가 생전에 생활하였던 추억의 장소를 찾아서 여행 중이었다. 

지 신부가 젊은 시절에 열정적으로 임실치즈를 개척할 때 벨기에의 부모님은 "디디에가 치즈를 참 싫어했는데,어떻게 한국에 가서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고 한다.지 신부의 임실치즈 사랑은 사람 사는 세상을 지향하는 신용협동조합 운동과 조합원들의 협동 정신이 그 바탕이 되었고,현재 사람이 꽃처럼 아름다운 치즈의 고장 임실의 정체성으로 피어났다. 

이옥진씨 가족은 지정환 신부의 삶의 터전이었던 옛 치즈공장 건물과 치즈 제조 기계와 설비들을 살펴보고,공장 벽면에 붙은 지 신부의 사진과 설명글 등을 천천히 읽어보았다.치즈 숙성 토굴에 들어가서 지 신부가 곡괭이와 삽으로 토굴을 팠던 현장을 둘러보았다.토굴 속에는 60년 전 시간과 섭씨 15도 청량함이 머물러 있었다.지 신부가 생활했던 사택의 거실을 둘러보면서 깊은 감회로 이들 가족은 오래 머물렀다.

이옥진씨 일행은 그리운 추억처럼 여름 장맛비를 맞으며 옛 치즈공장 마당에서 300m 거리에 있는 천주교 임실성당의 첨탑을 바라보고,임실 치즈테마파크의 지정환 기념관이 있는 임실치즈역사문화관으로 떠났다.이들 가족은 지정환 신부가 30여 년 동안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펼쳤던 완주군 소양면의 중증장애인 '무지개 가족' 재활센터를 찾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지 신부는 생전에 희망을 상징하는 무지개를 좋아하였고,임실치즈테마파크에는 무지개다리 조형물이 언제나 무지개를 펼쳐내고 있다.임실 성가리 옛 치즈공장 내부의 벽면에는 지정환 신부가 생전에 즐겨 불렀다는 노래 가사가 선명하게 쓰여 있다.'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만리동 콤바크그것은 우리의 바람이었어'(노사연 - '만남' 가사).
 
▲  임실 성가리 옛 치즈공장,추억의 여정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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