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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일씨 재심사건 상고이유서 살펴보니
검찰이 과거사 재심 재판에서‘과거 법정진술’의 증거능력 인정을 주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과거 유죄 판결이 나온 용공·간첩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에서 고문·강압에 의한 진술의 위법성은 인정하면서도 변호인 조력을 받아 재판 과정에서 나온 혐의 인정 취지의 진술은 유효하다는 주장을 펴는 것이다.과거사 재심 사건 피고인과 유족들은 “수사단계에서의 가혹행위로 인한 진술이 법정까지 이어졌다”면서 “검찰이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검찰은 수사단계에서 강요·유도에 의해 했던 피의자신문 내용과 달리 피고인들이 과거 재판 당시 법정에서 변호인 도움을 받아서 한 진술은 증거능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일부 재심 재판부가 검찰의 이 같은 주장을 인정한 적도 있다.재심에서 무죄가 나더라도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의 진술을 근거로 들며 항소하기 일쑤다.
경향신문은 8일 검찰이 지난달 대법원에 낸 고 최창일씨 재심 사건의 상고이유서를 입수했다.검찰은 상고이유서에서 최씨가 과거 재판에서‘사선 변호인을 선임해 변호인 조력을 받은 상태에서 법정진술’을 했고‘검찰 진술도 부인하는 등 일부 사실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사실도 있다’는 점을 주요하게 강조했다.검찰은 법정진술이 자백 증거능력으로 인정돼 재심에서 여전히 유죄 선고가 난 판결 7건을 열거하면서 “재심 사건 재판부가 최씨의 법정진술 증거능력을 부정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법정진술이 증거능력으로 인정돼 유죄가 유지된 대표적인 사건은 1972년 통일혁명당(통혁당) 재건 도모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대식씨의 재심 사건이다.통혁당 재건 사건은 북한 지령을 받은 인사들이 지하 정당인 통혁당을 결성해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것으로 박정희 정권 시절 터진 대형 공안사건 가운데 하나다.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고 20년을 복역한 이씨의 재심 선고는 2022년 7월에 나왔다.이씨는 국가기밀을 누설하는 등 12건 혐의에 대해선 무죄가 선고됐다.그러나 이씨가 남파공작원의 지하조직원에게 김일성 회갑 축하 선물과 메시지를 전달하고,남파공작원으로부터 15만원을 받았다는 혐의 등은 유죄로 인정됐다.검찰은 이씨가 법정에서 한 진술이‘변호인 접견권이 본질적으로 침해되지 않았으며‘공소사실 중 인정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점을 명확히 구분해 진술’했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있다고 주장했고,재판부는 이를 인정했다.
1981년 이른바‘안동간첩단 사건’도 있다.안승억씨는 재심에서 간첩행위 방조에 대해선 끝내 혐의를 벗지 못했다.이씨 사례와 마찬가지로 안씨의 법정진술이 증거능력으로 인정됐다.검찰은 이들의 재심 판결을 사례로 들면서 “피고인들은 과거 법정에서 변호인 조력을 받아 중앙정보부로부터 폭행 등을 당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며 “임의성이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판결내용”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주장은 이번 최씨 재심 사건 하급심 판결 취지와는 상반된다.지난 5월 서울고법은 최씨 재심 사건을 무죄로 선고했다.재판부는 불법구금 등 심리적 압박상태가 법정진술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살피면서,더 나아가 법정진술 번복이 오히려 불리한 결과로 돌아올 것을 우려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상황에서,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할 경우 오히려 최창일씨에게 불리한 재판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당시 법정에서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됐다고 볼 만한 의문점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밝혔다.재판부는 이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일부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진술을 했다는 등 사정만으로는 임의성의 의문점을 해소할 충분한 증명이 이뤄졌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