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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4월21일,대한제국을 일제의 침탈에서 구하기 위해 일어선 전국 13도 의병부대의 일원인‘창의원수부’(倡義元帥部) 사령관 연기우는 전국 의병부대 총지휘관 허위가 체포되었음을 동료들에게 고하는 편지 서두글을 비장감 넘치는 어조로 써내려갔다.그는 뒤이어 적었다.
“행동거지를 어찌 해야 할지요.죽고자 해도 죽을 곳이 없습니다.하물며 (허위) 선생께서 마치지 못한 큰 과업에 부응해 따라야 하는데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무릇 우리 전국 동지들이 어찌 뼈에 새겨 명심하며 광복의 희망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19세기 말부터 1910년 경술국치 직전까지 막강한 무력을 지닌 일제에 맞서 항전하다 스러져간 현장의 절박한 사정을 전하는 구한말 의병들의 문서와 편지가 조국에 돌아왔다.일제 군경 토벌대가 노획,재벌집 막내아들 결말탈취한 것들로 한 헌병 간부가 훗날 일본에 빼돌렸던 희귀사료들이다.
이날 공개된‘한말 의병 관련 문서’는 19세기 중반에서 1910년 국권침탈 직전까지 작성된 것들로 올해 7월 복권기금을 통해 일본에서 되찾은 유물이다.1907년 경기도 양주에서 꾸려진 13도 지역 항일 의병 연합부대(13도 창의군)에서 활동한 주요 지휘관들이 작성한 연락문과 편지 등의 문서 9건,재벌집 막내아들 결말의병장 출신으로 일제가 주는 음식을 거절하고 자결한 애국지사 최익현과 외세에 반대했던 위정척사파 학자 유중교의 서신 4건으로 이뤄져 있다.
13건의 문서는 비단과 두꺼운 종이를 발라서 꾸린 두 개의 두루마리 속에 정리돼 실렸는데,각 두루마리 첫머리(권두)에 수록된 문서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추기)이 덧붙여져 있다.첫번째 두루마리(세로 35㎝×가로 406.5㎝) 권두에는‘한말 일본을 배척한 폭도장수의 격문’(韓末排日暴徒將領檄文 稀覯史料),재벌집 막내아들 결말두번째 두루마리(세로 35㎝×가로 569.5㎝) 권두에는‘한말 일본을 배척한 두목의 편지’(韓末排日巨魁尺牘)이란 제목이 각각 붙어있어서 의병장과 항일지사들을 불온시하는 일제의 부정적인 시각이 드러난다.
일제 헌병경찰이던 아쿠다카와 나가하루(芥川長治)가 1939년 8월 표장,보존했다는 문구도 보여 일제 군경이 의병들을 토벌하면서 빼앗은 문서들을 수집해 1939년 두루마리본으로 꾸렸음을 알 수 있다.추기를 통해 첫 두루마리를 “명치 43년(1910) 일한병합이 되기 전에 조선 각도에서 봉기하여 소요를 일으킨 폭도의 우두머리와 관계된 것으로 한말 사실 연구의 희귀한 문헌”으로 소개한다.두번째 두루마리에서 “한말 걸출한 유생이자 배일(排日) 거두인 의암 최익현(1833~1906)의 진적(眞蹟)으로 희귀한 사료다.대정 7년(1918) 4월 평북 의주헌병대원들이 국경을 넘어 중국 봉천성의‘의암선생문집’편집 공간을 급습해 압수한 다수의 불온문서 중 일부”라고 설명한 대목도 눈에 띈다.
두루마리 내용 가운데는 13도 창의군 제2대 총대장 허위가 붙잡힌 당일인 음력 1908년 5월13일 작성한 문서와 허위의 체포를 통탄하며 각 의병진영의 단결을 촉구하는 연기우,재벌집 막내아들 결말허겸,재벌집 막내아들 결말노재훈의 글들이 포함돼 당대 의병들이 여러 난관 속에서도 강력한 항전 의지를 갖고 일제와 싸웠다는 것을 여실히 짐작하게 한다.의병에 대한 적대감과 일제의 탄압 행위를 현장 기록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줄 뿐아니라 일제의 입수경위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최응천 청장은 “단순히 국외에 있던 문화유산을 되찾아왔다는 차원을 넘어 정부기관과 민간소장자의 적극적인 관심과 선의가 맞물려 선조들이 조국을 지켜왔던 정신적 실체를 오롯이 회복하는 성과를 이뤘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