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 월드컵 축구 예선전
NO.2: 월드컵 축구 예선전 일정
NO.3: 한국 월드컵 축구 예선전
NO.4: 대한민국 축구 월드컵 예선전
지난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영국·프랑스·미국 등)은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전쟁 주축국과 곳곳에서 맞붙었다.독일은 초기 강력한 육·공군 군사력으로 우위를 점했지만,미국의 참전을 계기로 전세가 역전됐다.결국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전쟁은 종결된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군 진영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무기로는 M4 셔먼(Sherman) 전차,스핏파이어(Spitfire) 전투기 등이 꼽힌다.이들 무기는 각각 독일의 티거 전차,bf109 전투기를 주로 상대하며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었다.
M4 전차는 연합군의 주력 전차로 미국에서 제작돼 유럽과 태평양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됐다.제원은 길이 5.9m,너비 2.6m,월드컵 축구 예선전높이 2.74m,무게 31톤(t) 등으로 중형 크기의 전차였다.
M4 전차는 독일의 주력 전차인 티거(Tiger)와 전선에서 주로 맞붙었으나,월드컵 축구 예선전비교적 낮은 체급 때문에 일대일 능력에선 우위를 가지지 못했다.티거 전차는 길이 9.34m,너비 3.38m,높이 2.8m,무게 57t의 중대형 전차였고,전면 장갑 두께가 120㎜에 달해 격파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M4 전차는 신속한 대량 생산으로 단점을 상쇄했다.M4 전차는 과거 M2 전차부터 사용한 차체를 그대로 썼기 때문에 기존 생산시설을 계속 이용할 수 있었다.또 미국 내 여러 공장에서 서로 다른 부품을 대량 생산하고,이를 한곳에 모아 조립하는 식으로 만들어 생산 속도가 빨랐다.
티거와 티거2의 생산량이 각각 1347대,492대였을 때 M4 전차는 4만9234대가 전선에 공급됐다.미국은 1941년‘무기대여법’을 제정해 연합군에 무기와 군수물자를 무상으로 제공했고,연합군은 유럽 내에서 다수의 M4 전차를 운용하며 전쟁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었다.
공중에서는 영국의 스핏파이어 전투기가 독일군을 상대로 활약했다.스핏파이어는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견인하며‘영국을 구한 전투기’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스핏파이어는 영국의 항공기 제조사인 슈퍼마린이 제작한 경주용 항공기였으나,전투기로 개량했다.당시 영국 공군의 전투기들은 주로 캔버스와 나무 소재로 만들어졌으나 스핏파이어는 1930년대 중반에 등장한 독일과 이탈리아 공군의 금속 전투기에 대항하기 위해 금속 재질로 만들어졌다.
스핏파이어의 제원은 높이 9.12m,폭 11.23m,높이 3.86m 등이다.당대 최고로 평가받던 롤스로이스 멀린(Rolls-Royce Merlin) 엔진을 탑재해 최대 속도가 약 590㎞/h에 달했다.
스핏파이어는 1940년 7월부터 독일의 공습으로 약 4개월간 지속된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영국을 지켜낸 것으로 유명하다.당시 2000기 이상의 전투기를 보유해 세계 최강의 공군 전력을 보유했던 독일은 영국 공군과 해군을 공중에서 제압한 뒤 바다를 건너 영국 본토로 침공할 계획이었다.
영국 공군은 독일의 침공 당시 운용 가능한 전투기가 600여기에 불과했다.그러나 연료를 신속하게 재보급받을 수 있는‘홈그라운드(home ground)’의 이점과 방공 레이더,스핏파이어의 뛰어난 기동성을 십분 활용해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었다.
스핏파이어는 영국 역사상 최대 생산량을 기록한 전투기로,성능 개량형을 포함해 총 2만351기가 제작됐다.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동남아,중동,한국 등에서 발생한 여러 국지전과 분쟁에서 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