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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프록시 헤지’에 사용… 亞 국가 신뢰도 높아”
“코스피 시장도 거래량 풍부… 선진시장 발전 가능”
“WGBI·MSCI 편입되면 원화 위상 더욱 높아질 것”
“외환시장 개방‘양질의 참가자’끌어들어야 성공”

1997년 자율변동환율제 채택 이후 20년 넘게 변화가 없던 외환시장이 탈바꿈한다.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운영되던 국내 외환시장 영업시간이 1일부터 다음 날 오전 2시로 연장됐다.정부는 중장기적으로 24시간 개장도 검토하고 있다.외국인 투자자들의 원화 거래가 편해졌고,해외 소재 금융기관도 국내 외환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외환시장의 변화와 시장 참가자들의 대응 전략을 살펴봤다.[편집자주]

“외환시장 개방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은 우리나라 자본시장에 더욱 쉽게 참여할 수 있게 됐습니다.원화의 위상은 지금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큽니다.현재 12위권인 원화 거래량은 세계 10위권까지 도약할 수 있습니다.”

김동욱 KB국민은행 자본시장영업부 신성장추진팀장


지난 4일 여의도 KB국민은행 딜링룸에서 만난 김동욱 자본시장영업부 신성장추진팀장은 이달부터 시행된 외환시장 선진화 제도의 효과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외국 투자자들의 원화 거래가 편리해지면서 외환시장은 물론 코스피(KOSPI) 등 주식시장에도 투자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외환시장 선진화는 외환시장 운영시간을 새벽 2시까지 연장하고,알아흘리(egy)해외 소재 금융기관도 국내 외환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외환 유입이 자유로워지면 외환보유고가 증가하고,경제 전반의 투자 환경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장기적으로는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의 안정성이 강화된다.

20년째 한우물판 FX딜러가‘원화의 국제화’점치는 이유

김 팀장은 외환딜러로 20년 넘게 일해온 베테랑이다.2012년부터는 국민은행에서 외환딜링팀장으로 근무하며 FX스팟(현물환거래)과 외환스와프,차액결제선물환(NDF,알아흘리(egy)용어설명 참조) 등 다양한 업무를 모두 다뤘다.작년에는 서울외환시장의 외환딜러 모임인 코리아 포렉스클럽에서‘올해의 FX딜러’로 선정되기도 했다.올해 3월부터는 자본시장영업부로 옮겨 RFI(Registered Foreign Institution·해외외국환업무취급기관) 관련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김동욱 KB국민은행 자본시장영업부 팀장(수석차장)이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김 팀장은 지난해 코리아포렉스클럽이 선정한 '올해의 FX딜러'로 선정됐다./이덕훈 기자
김동욱 KB국민은행 자본시장영업부 팀장(수석차장)이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김 팀장은 지난해 코리아포렉스클럽이 선정한 '올해의 FX딜러'로 선정됐다./이덕훈 기자

김 팀장은 한 때 한국 외환시장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다고 평가했다.그는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에 환율이 휘청였던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는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자 원·달러 환율이 하루만에 100원 이상 변동(장중 환율 기준)했다”면서 “딜러의 생명은 수익인데,손실이 너무 많이 나서 운명을 달리한 딜러들도 있었다.말그대로‘아비규환’이었다”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 외환시장의 건전성이 개선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에는 상황이 달랐다.김 팀장은 “코로나19 직후에 금융위기와 비슷하게 원화가치가 급락했다”면서 “그러나 규제가 강화된 데다 외환당국이 시장에 빠르게 유동성을 공급했고,한·미 통화스와프도 체결되면서 손실이 단기간에 그쳤다”고 했다.

시장이 단단해지니 원화의 위상도 올라갔다.원화는 이미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국제통화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다.김 팀장은 “지난 5월에 대만 출장을 갔는데 원화가 대만 통화의‘프록시(proxy·대리) 헤지(hedge·방지)’수단으로 쓰이고 있었다”면서 “업계 사람들을 통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현지 딜러들과 얘기해보면서 직접 확인하니 놀라웠다”고 했다.

통상 환 헤지에는 자국 통화를 사용한다.예를 들어 대만 통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만 투자자가 한 달 뒤에 미국 돈 1달러를 매수해야 한다고 치자.환율이 오르면 더 비싼 돈을 줘야 해 손실이 발생한다.이 경우 투자자는 한 달 뒤에 자신이 원하는 환율로 미국 달러를 매수하는 선물 계약(선물환 매수)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환 위험을 헤지할 수 있다.

그런데 대만 달러처럼 유동성이 작은 통화는 거래량이 작아 원하는 만큼 선물환 계약을 체결하기 쉽지 않다.이 경우 자국 통화와 비슷하게 움직이면서 유동성이 풍부한 한국 원화를 사용해 한 달 뒤에 특정 환율로 미국 달러를 매수하는 NDF 계약을 맺어 환 위험을 헤지할 수 있다.이런 투자기법을‘프록시 헤지’라고 말한다.

김 팀장은 “대만에서 자국 통화를 헤지하기 위해 원화를 쓴다는 것은 그만큼 원화를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라면서 “이제는 원화의 위치가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한다”고 했다.

WGBI·MSCI 편입에도 호재… “자본시장 판도 바꿀 것”

김 팀장은 외환시장 개방으로 원화의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봤다.그는 “원화는 자율변동환율제를 도입해 환율 변화에 따른 시세차익을 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통화”라면서 “외환시장과 맞닿아 있는 코스피 등 주식시장도 거래량이 풍부해 선진시장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있다.제도적인 기반까지 갖춰지면 외환시장은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래픽=정서희
그래픽=정서희

다만 그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을 제시했다.먼저 세계국채지수(WGBI)와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 주가지수(MSCI) 편입이 이뤄져야 한다.그간 한국은 시장 접근성 측면에서 번번이 낮은 점수를 받아 가입에 실패했다.외환시장 개방으로 원화 매수가 원활해지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금융시장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고,지수 편입 가능성도 높아진다.

김 팀장은 “외환시장 선진화를 계기로 금융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개선되면 WGBI나 MSCI 편입에 성공할 수 있다”면서 “이 경우 펀드나 연기금들은 원화채권과 한국주식을 더 매수할 것이며,원화 거래유인이 많아지고 유동성이 활발해져 외환시장이 더욱 건전해질 것”이라고 했다.

장 마감 후 역외시장에서 NDF 방식으로 원화를 거래하는 국내외 투자자들도 역내 시장으로 끌어올 수 있어야 한다.그는 “NDF는 국내에 계좌를 개설하지 않고도 원화 변동에 따른 환차익을 누릴 수 있지만,알아흘리(egy)투자자의 신용이 좋아야 하고 수수료가 비싸다”면서 “역내에서 충분히 유동성을 공급해 NDF 거래를 끌고온다면 원화 거래는 더 활성화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두 가지를 달성하는 것을 전제로 원화 거래량이 세계 10위권 안쪽으로 올라서는 일도 가능하다고 봤다.국제결제은행(BIS)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외환상품시장에서 원화 거래 비중은 일평균 12위(1.9%)를 기록했다.김 팀장은 “외환시장 개방은 국내 자본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양질의 참여’이끌어내는 것이 성공의 열쇠”

시장 참여자인 시중은행들은 이를 위해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우선 해외 지점이 있는 은행들은 현지 지점을 RFI로 등록시켜 운영시간이 연장되더라도 원화 거래가 가능토록 했다.RFI는 국내 외환시장에 참여해도 된다는 인증을 받은 해외 금융기관이다.해외 지점을 RFI로 등록하면 연장된 시간대에서도 일정 수준의 거래량이 유지된다.

김동욱 KB국민은행 자본시장영업부 팀장(수석차장)이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김 팀장은 지난해 코리아포렉스클럽이 선정한 '올해의 FX딜러'로 선정됐다./이덕훈 기자
김동욱 KB국민은행 자본시장영업부 팀장(수석차장)이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김 팀장은 지난해 코리아포렉스클럽이 선정한 '올해의 FX딜러'로 선정됐다./이덕훈 기자

현재까지의 성적은 성공적이었다.김동욱 팀장은 “국민은행에서는 2월부터 6월까지 월 2회씩 총 10회에 걸쳐 시범거래를 실시했는데 만족할만한 수준의 완성도를 보였다”고 했다.그는 “외환시장 운영시간이 연장된 후에도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졌고,거래 호가도 촘촘하게 잘 형성됐다”면서 “생각보다 시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동시에 은행들은 RFI 대행업무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국내 외국환거래 은행들은 외환전산망을 사용해 매일 외환거래 내역을 보고해야 하며 RFI도 동일한 의무를 진다.그런데 국내에 거점이 없는 외국계 은행들은 보안상 이 업무를 직접 하기가 쉽지 않다.이에 외환당국은 RFI와 업무대행 계약을 체결한 국내은행이 대신 거래내역을 보고할 수 있도록 했다.RFI가 늘어나면 대행기관의 수요는 증가하고,관련 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

국민은행도 RFI 업무대행 영역으로 사업 확장을 노리는 곳 중 하나다.김동욱 팀장은 “국내 외환시장에 관심이 있는 잠재적 RFI기관을 찾아 RFI 업무대행 계약을 맺고,알아흘리(egy)그들의 수요에 맞는 온디맨드(on-demand)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시스템 규격화·모듈화를 통해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김 팀장은‘양질의 참여자’를 발굴하는 것이 외환시장 개방의 성패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는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경쟁력이 높아지려면 시장의 유동성이 증가해 투자자들이 다양한 가격대에서 통화를 거래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그러려면 거래량이 많은 글로벌 투자은행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 차액결제선물환(NDF·Non Delivery Forward)이란

만기에 계약원금을 교환하지 않고 약정환율과 만기 시 현물환율인‘지정환율’간 차이에 따라 계산된 차액을 거래당사자 간에 지정통화(통상 미달러와)로 결제하는 거래를 말한다.차액만 정산하기 때문에 일반 선물환 거래에 비해 적은 자금으로 큰 금액의 거래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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