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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만난세계_2025] 말문 막히는 '탄핵 정국',선거제 개혁해야 정치 달라진다12·3 내란 사태 이후,시민들은 무너진 세계를 구하기 위해 여의도,광화문,카지노 환전남태령으로 달려갔습니다.어두웠던 광장을 빛으로 채운 건 형형색색의 응원봉뿐이 아니었습니다.'2024년 12월 3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야 한다'는 외침은 광장을 넘어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오마이뉴스가 창간 25주년을 맞아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합니다.<편집자말>
"선거 제도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다보니 '차별금지법은 어떻게 해야 제정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 편이다.그게 가능한 묘수가 있다면 이미 저희가 쓰지 않았겠냐고 답하고 싶을 때가 많다.하지만 최근에는 위와 같이 답을 한다.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국민 여론은 꽤나 높다.이미 몇 년 전부터 70%에 달하는 찬성 응답을 기록한 여론조사 결과들이 나왔다.당위적인 측면에서도 걸림돌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차별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법을 만들겠다는데 여기에 윤리적인 문제가 있겠나.
그런데 왜 법이 만들어지지 않을까.나름의 답을 구하기 위해선 누가 법을 만드는지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국회의원이다.왜 만들지 않을까.여론조사에서 70%가 넘는 찬성 응답을 받은 법안인데.이것보다 더 논쟁적인 법안도 잘만 통과되지 않나.하지만 문제는 국회의원이 국민 전체의 선택으로 뽑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인데 무슨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국회의원이 국민의 선택으로 뽑히지 않는 건 아니다.다만 국회의원 300명 중 대다수에 가까운 254명은 특정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된 사람들이다.즉 국민 전체가 아니라 출마한 지역구민들의 선택을 받은 셈이다.그리고 다음 임기에도 지역구에서 다시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면 선거에서 또다시 이겨야만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선거 제도의 연관성
국회의원 선거는 치열하다.적으면 몇 백 표 차이로도 당락이 결정될 수 있다.의원들이 지역구 관리에 힘을 쓰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주민들의 호감을 얻고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신을 지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만약 지역 주민들이 등을 돌린다면 재선은 꿈도 못 꿀 일이 된다.그리고 이제 차별금지법 제정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선거제를 바꿔야 하는 이유가 나온다.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집단이 보수 개신교계인데 한국은 유독 대형 교회가 많은 나라다.전국 방방곡곡에 교회들이 있고 이곳들은 지역 주민들의 거점 역할을 하기도 한다.그런데 만약 정치인이 이 교회 목사의 심기를 거스른다면?그래서 목사가 교인들에게 그 정치인에게 표를 주지 말자고 한다면?정치인 입장에선 악몽이나 다름이 없다.
실제로 대형교회 목사들이 지역의 정치인을 만나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느냐'는 식의 질문을 하는 경우는 심심치 않게 있어왔다.아예 대놓고 법안에 반대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그래서인지 차별금지법을 다룬 언론 보도에는 늘 익명을 요구하는 정치인이 등장해 '지역구 관리 차원에서 대놓고 찬성하기가 어렵다'는 볼멘소리를 하곤 한다.
그런데 이게 차별금지법만의 일일까.대형 교회가 아니더라도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표심을 움직일 수 있는 집단은 분명히 있다.그리고 힘이 있어야 영향력을 얻기도 쉽다는 점에서 이들은 기득권층일 확률이 높다.즉 차별금지법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문제에 있어서 지역구 의원들이 기득권층에 휘둘릴 위험은 늘 있다는 뜻이다.
대안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물론 지역구마다 한 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소선거구제에도 장점은 있다.지역 현안에 더 신경을 쓸 국회의원을 뽑을 수 있다.지역 주민들이 직접 자신들을 대표할 정치인을 선택하니 정치 효능감도 클 수밖에 없다.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제도에서 뽑힌 국회의원들이 지역의 기득권층에 휘둘릴 위험이 있다.그리고 낙선자의 표가 모조리 죽은 표가 되는 단점도 있다.자기 지역구 정치인이 힘이 있는 집단에 속해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기를 모두가 바란다.그래서 표심이 거대 양당에 쏠리는 경향도 있다.이러한 위험과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있다.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한 정당이 지역구에서 얻은 득표율만큼 의석을 가지지 못 하면 비례대표에서 그만큼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이 제도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우선 낙선한 정치인을 선택한 표가 죽은 표가 되지 않는다.그 선택이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그리고 이 제도는 지역구 선거에 강한 거대 정당보다 소수 정당에게 유리하다.그래서 힘의 불균형이 초래하는 양당 독식을 막고 정치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다.앞서 언급했던 정치인이 지역의 기득권 집단에 휘둘릴 위험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국회를 구성하는 정당이 다양하면 그만큼 여러 집단의 입장과 요구를 대변할 수도 있다.
탄핵 국면과 선거 제도가 관련 있는 이유
한국은 지역구 의석에 연동하는 비례의석의 수를 제한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 중이다.다만 거대 양당이 선거용 별도의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어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무색하도록 만드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비례위성정당은 지역구에 출마하는 거대 양당과 별도의 정당으로 분류된다.때문에 지역구 득표율에 영향을 받지 않고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이렇게 선출된 비례대표 의원들은 선거가 끝나면 당연한 듯이 다시 거대 양당에 흡수된다.
탄핵 이후 우리가 새로운 한국을 그린다면 나는 꼭 필요한 과제 중 하나가 선거제 개혁이라 말하고 싶다.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확대하고 비례위성정당을 통해 제도를 회피하는 꼼수를 막아야 한다.이는 무엇보다 탄핵 국면과도 연관이 있다.거대 양당 독식 구조 아래에선 사람들이 '모 아니면 도'와 같은 식으로 한쪽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대쪽을 선택하게 된다.그 반대쪽이 심지어 탄핵 당한 대통령을 배출한 후 간판만 바꿔서 단 정당이라도 말이다.우리가 지난 대선에서 마주한 것이 바로 그 광경이었다.내 표가 죽은 표가 되는 것도,상대 진영이 당선되는 것도 싫은 사람들이 자질과 자격도 묻지 않고 반대 진영에 표를 던져버렸다.그 결과 우리가 마주한 것은 두 번째 탄핵 국면이었다.이 상황이 한국의 선거 제도와 정말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소수 정당도 원내에 진출하고 활발히 활약하여 국민의 선택을 더 많이 받고 힘이 있는 정치 세력으로 성장할 필요가 있다.거대 정치 세력이 무책임한 모습을 보일 때 사람들이 기대를 걸 제 3의 집단이 국회에 있어야 한다.그리고 우리는 이 토양을 마련하기 위해 선거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실질적인 선택지를 두 가지로 제한하는 선거 제도에 기생하여 살아남은 자격 없는 정치세력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기 위해.그리고 그 빈자리를 다양한 민의를 반영할 건강한 정치 집단으로 채우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