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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곡주,세모시,한산읍성의 아름다운 공존을 바라며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다.읍성은 조상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러시안 룰렛 파트 가사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지방 고유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기자말>
서천의 내밀한 속살을 처음 만난 게 불과 수년 전이다.당시 3월 하순인데도 몸을 움츠릴 만큼 싸늘한 기온에 하늘은 잔뜩 찌푸린 채였다.얼마간 서천에 머무르게 된 분을 만나러 가는 길은,그럼에도 봄기운이 완연했다.몇이 서천 특화시장 앞에서 만났다.풍성하기 그지없던 시장은 잿더미로 변한 후 큰 아픔을 겪는 중이다.
때아닌 봄눈이 흩날리기 시작했고,우린 곧장 장항읍 '6080 음식 골목'으로 향했다.장항제련소의 옛 영화가 낡은 집 벽처럼 남은,젠토토 승5패옛 장항선 철길 옆 오래된 먹자골목이다.군산으로 오가던 도선장 부근이니 무척이나 북적거렸을 거리다.제련소가 시혜처럼 베푼 알량한 노동의 대가가,이 골목에서 목청 터지는 고성방가와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고주망태로 흩뿌려졌을 터이다.
난생처음 만난 '꽃게살 무침'이라니….같이 상에 오른 주인공은 당연히(?) '한산 소곡주'였다.이전에도 여러 마셔 본 터였지만,토토 천사악마 사이트마실수록 오묘한 맛으로 각인된 술이다.좋은 사람들과 분위기,맛과 멋에 취해 숙면에 들었고 새벽에 일어나니 우릴 반기듯 온 천지가 포근한 서설이었다.
소곡주는 누룩을 뜻하는 麯(국)을 빌려 小麯酒(소곡주)로 표기한다.이름 그대로 누룩을 적게 사용하여 빚은 술이란 뜻이다.은은한 향의 연한 담황색으로,발효된 곡물의 풍부하고 깊은 감칠맛이 일품이다.
찹쌀이 빚어내는 살짝 끈적이는 술맛은 곡주의 순수함과 품격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뒤끝마저 깔끔하여 순하고 부드러우나 한번 마시기 시작하고 나면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술이라는 건 알고 마셔야 한다.
우리 술이 말살된 일제강점기와 박정희시대 엄혹한 금주 정책을 지나 가양주로 명맥을 이어 살아남은 '백제의 술'이다.전해지는 이야기론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함락되자,부흥군을 일으킨 백제 군사들이 한산 주류성을 근거로 나라 잃은 한을 달래고 결연한 항전 의지를 다지는 뜻에서 빚어 마신 술'이란다.한산읍성 일부가 복원된 사실은 알았으나,백제 부흥군 본거지인 '주류성(周留城)'이 한산에 있었다니?
백강 해전과 주류성
660년 사비성 함락으로 백제가 멸망했다고 역사는 기록하나,실제는 어땠을까?이듬해 당나라가 공주에 설치한 웅진도독부를 위시한 사비성 외 나머지 영토에도 실제적인 통치권이 미쳤을까?
흑치상지가 예산 임존성을 거점으로 유민을 규합한다.왕족인 복신과 승려 도침이 백제 부흥에 앞장선다.주류성에 웅거하여 이듬해 군사를 몰아 나당연합군을 공격하고,일시적으로 20여 성을 회복하기도 한다.
결국 임존성과 주류성을 근거로 나당연합군에 대항할 체계를 세운 셈이다.복신을 주축으로 정통성 확보에 나선다.세자 '융'은 왕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가 버렸다.왜(倭)에 30여 년 머물던 다른 왕자 '풍'을 부른다.나라 골격을 갖추기 위해서다.
이때 왜왕이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는 '사이메이 천황'이다.여성으로 왜를 통치하며 백제 지원을 준비하던 천황이 그러나 661년 급서하고 만다.그러자 황태자 '덴지'가 즉위식까지 미루며 원정군의 군사력 증강에 전력을 다한다.
한편 부흥군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난다.권력을 장악한 복신을 부여풍이 제거(663년)한다.부여풍은 고구려와 왜국에 사신을 보내 지원을 요청한다.왜는 3년간 총력을 다해 준비한 전투선 1천 척과 2만 7천의 병력을 부흥군 근거지인 백강으로 보낸다.
왜 왕가 혈통이 백제 후손이라는 배경이 깔렸다지만,부흥군을 지원한 이유는 분분하다.왜가 백제의 영향력 아래 있는 분국이나 혈맹이라는 설 등등이나,무엇보다 당의 침략을 백제를 방패 삼아 막아 보겠다는 의지가 전쟁에 개입한 이유라는 설이 유력하다.
나당연합군도 웅진도독부 중심으로 군사력을 집중시킨다.당 유인궤가 수군 7천 명으로 백강 입구에 정박한다.육지에서는 나당연합군 정예병이 부흥군의 주류성을 포위한다.전쟁은 해전에서 결판나고 만다.
당 수군에 수적 우세였던 왜 수군이 대패하고 만다.부여풍은 고구려로 도주하고,왜 패잔병은 백제 유민과 함께 섬나라로 간신히 되돌아간다.왜는 당의 침략을 내내 경계하며,슈 의 슬롯 머신 카지노사이트검증사이트내실을 다진다.덴지의 뒤를 이은 '덴무'에 의해 개혁이 이뤄지고,덴무 사후에 '다이호 율령(701년)'으로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면서 율령국으로 발돋움한다.
백강 전투와 주류성은 정확한 위치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지금까지는 금강 하구가 백강이고,한산 건지산성이 주류성이라는 설이 우세했었다.하지만 복신이 칩거한 굴(屈)의 실체와 바다까지 거리,주변이 척박했다는 기록 등으로 전북 부안 동진강 어귀와 우금산성이란 설도 힘을 얻고 있다.
한산세모시
김말봉의 시에 금수현이 곡을 부친 가곡 '그네'를 아련한 풍금 소리에 맞춰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시어가 그리는 동적인 풍경이,마음속에 숨겨둔 한 자락 추억만 같다.음률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옷매무새가 같이 떠오른다.옥색으로 물들인 세모시 치마다.
노래 속 계절은 단오여야 한다.치마 입고 그네를 뛸 수 있는 건 그때뿐이기 때문이다.봄이 지나고 무더위가 막 시작될 무렵이니,가볍고 시원한 옷감 세모시가 가장 어울리는 의복이었으리라.세모시는 그런 계절이어야 제격이다.
한산이 세모시 본향이다.이곳 세모시는 섬세할 뿐 아니라 청아한 멋으로 이름 높다.모시 잎은 송편을 빚는데 넣으면 맛이 배가된다.모시에서 실을 뽑아 베를 짜는 과정은 무척 고되다.재배한 모시를 베어다가 긴 시간과 많은 공력을 들여야만 한 필 세모시가 탄생한다.
모시 껍질을 벗겨 여러 번 쪼갠 다음 다시 잇고 다듬는 과정을 거치면 베틀에 얹을 실이 된다.이 과정에서 이빨이 닳고 무릎이 까일 지경이다.실의 굵기에 따라 한 폭에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하고,풀을 먹인 후 베틀을 이용해 모시를 짠다.베 짜는 작업은 그야말로 인고의 시간으로,시집살이 단골 소재다.다 짠 베를 물에 적신 다음 햇빛에 말리는 여러 번의 작업을 거쳐야 비로소 세모시가 탄생한다.
천연 섬유인 세모시는 백옥처럼 희다.올이 가늘고 직조상태도 고르며 깔끔한 질감과 까슬한 촉감이 무척 시원하다.섬세하고 가벼워 여름철 옷감으로 으뜸이다.풀 먹임과 다림질을 수시로 해줘야 특유 촉감이 오래 유지된다.무엇보다 내구성이 뛰어나 빨아 입어도 빛이 바래지 않고 항시 윤기가 도는 실용적인 옷감이,바로 한산세모시다.
제 모습을 찾아가는 한산읍성
건지산성 산마루가 뾰족하다.제법 높은 산중에 대접 모양으로 분지를 이룬 산정을 둘러 성을 쌓지 않았겠느냐는 짐작이,자료를 찾아보니 어김없이 빗나간다.안내판 따라 성벽을 무작정 오르니,어디까지가 성이었는지 분간조차 힘들다.또렷이 남은 토성의 자취가 그저 반가울 뿐이다.
여기가 주류성이라면,좁은 이 골짝은 말 그대로 죽음의 계곡이었을 터다.부흥군이 백제 군사로서 최후의 격전을 벌인 곳이기 때문이다.국가유산청 자료를 통해,건지산 봉우리에서 북쪽 작은 봉우리를 둘러 계곡을 가운데 두고 성을 쌓았음을 알 수 있다.건지산 정상에 내성을 두었다고 하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한산향교 방향으로 내려와 읍성 서문 터에서 남문을 향해 다시 산등성이에 오른다.국도 29호선이 지나는 산등성 남쪽에 앉아 있는 '한산모시 전시관'이 마치 베를 짜는 여러 아낙네를 연상시킨다.그 앞에서 바라본 남문은 높은 둔덕에 세모시 입고 그네 뛰는 여인처럼 고고하다.
읍성 축조를 문종 때로 본다.이웃한 서천읍성,비인읍성과 더불어 금강 어귀에서 충청과 전라내륙으로 드는 왜구 방어가 주목적이다.20세기 초까지 성곽과 4대 문루가 온전했다고 전한다.성은 둘레 1.7km,높이 2.5m로 추정한다.일제강점기 초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까지 한산군 중심으로 행정 업무를 담당하였다.
읍성은 현재 서벽과 북벽 일부와 치성이 남았고 최근 남문이 복원되었다.남문에서 보면 사라진 성곽이 현실인 듯 어렴풋하다.지적과 지형 흔적을 통해,역시 읍성의 옛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다.성안 골목과 성곽 흔적을 샅샅이 더듬으며 걸어도 1시간 남짓이다.
가곡 '그네'가 읊는 노랫말 세모시 옥색 치마는 정겹다 못해 깊은 그리움을 자아내는 음률이다.노랫말과 어울리는,청량하고 달착지근한 소곡주는 보고 싶은 임처럼 시나브로 다시 맛보고 싶어지는 술이다.이처럼 예스럽고 멋스러운 한산의 참모습이 듬직한 성곽으로 다시 눈앞에 나타나 주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