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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안내견 조이,은퇴했지만 완전히 은퇴한 건 아닌 이유【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평소 정치 뉴스는 잘 보지 않는 편이다.정치인들의 언행을 보면 인상이 찌푸려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그런데 지난 몇 년 간 내 시선이 머무는 정치 뉴스가 있었다.바로 시각장애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있는 안내견 조이의 모습이 나오는 뉴스들이었다.

김예지 의원이 국회에 참석하는 동안 발치에 조용히 엎드려 있는 조이의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곤 했다.소란스러운 국회 상황과 달리,평온하게 경청하는 듯한 조이가 나는 참 좋았다.

▲  2023년 10월19일,김예지 국민의힘 신임 최고위원의 안내견 조이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기다리는 모습(자료사진).ⓒ 남소연
내게 소소한 평화를 준 것뿐만이 아니다.조이는 우리 사회에도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이전까진 안내견 출입을 허용하지 않던 국회의 문을 '모든 안내견'에게 열어줬고,지난해 9월엔 정당한 사유 없이 보조견의 동반 출입을 거부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조이법(장애인 복지 개정법)'이 본회의를 통과하기도 했다.

얼마 전 이런 조이가 은퇴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은퇴시기인 만 8세가 되어 이제는 반려견으로 제2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더 이상 뉴스에서 조이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고작 8살에 은퇴라니 사람보다 훨씬 빠른 개의 시간이 문득 실감 나 서운함이 밀려왔다.동시에 지금 내 곁에 있는,그리고 8년간 함께했던 나의 반려견들과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내 삶의 관점을 바꾼 반려견,은이

▲  나의 첫 반려견 은이 ⓒ 송주연
나는 올해로 10년 차 반려인이다.2015년 6월 19일.나의 첫 반려견 '은이'를 입양했으니 올해로 정확하게 만 10년이 되는 셈이다.

은이가 우리 가족이 되기 전까지 나는 아이가 최우선인 엄마였다.은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한 이유도,외동인 아이가 외롭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입양 전 가장 큰 고민은 강아지가 일을 방해하지 않을까,집안일이 더 많아지지는 않을까 하는 것들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 나는 참,형편없는 입양자였다.은이가 우리와 잘 지낼 수 있을 것인지 보다는 내가 편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했으니 말이다(지금의 나라면 그때의 나같은 입양희망자에게는 은이를 보내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은이가 오고 '나의 편함'을 생각하던 마음이 사라지는 데는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첫날밤.낯선 집에서 낑낑대는 은이를 나는 품에 안았고,그 온기를 느끼는 순간 무장해제가 되고 말았다.그날 밤 나는 은이가 깰까 봐 내려놓지도 못한 채 선잠을 잤다.내게 온전히 의지하는 작은 생명과의 만남은 이렇게 순식간에 나의 관점을 바꿔놓았다.'내가 편하기'보다 '이 생명을 지켜주고' 싶어졌다.

은이와의 교감이 깊어질수록 다른 동물들에게도 눈길이 갔다.무서워했던 길고양이들의 안부가 궁금해졌고,동물원의 동물들이 불행해 보이기 시작했다.고기를 보면 그 고기가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그 동물이 지녔을 은이와 같은 맑은 눈이 생각났고,도저히 식욕이 생기지 않았다.고기는 못 먹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그러자 또 다르게 착취되는 동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내 눈가의 주름을 펴기 위해 토끼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알게 됐고,나를 따뜻하게 했던 패딩점퍼에도 오리와 거위의 희생이 있음을 알게 됐다.그 후 나는 화장품도 비건인증 마크가 붙은 제품만 구입하고,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사용한 옷은 사지 않는다.

동물에 대한 관심은 환경으로도 이어졌다.은이가 산책하면서 마시는 공기가 좀 더 깨끗하기를,은이가 자연과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동물들이 인간이 더럽힌 자연 때문에 희생되지 않기를 바랐다.

결국 나는 샴푸도,세제도 최대한 환경친화적인 제품만 사는 점점 더 깐깐한 '프로불편러'가 되어 버렸다.나는 이 과정을 2023년에 <개와 살기 시작했다>라는 책으로도 출간했다.

▲  2023년 2월 출간된 <개와 살기 시작했다 - 반려동물과 살면 알게 되는 것들>책.(출판사 날) ⓒ 날
은이는 이렇게 '편한 게' 제일 중요했던 나를 동물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으로 바꿔 놓았다.그리고 2023년 봄,지병이었던 염증성장질환과 이에 따른 합병증으로 강아지별로 돌아갔다.

'펫로스'는 그 어떤 상실보다도 힘든 경험이었지만,생명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그리고 이를 수용해내면서 한 생명을 영원히 기억하는 법도 알았다.바로 철학자 마크 롤랜즈가 <철학자와 늑대>에 적은 다음 문장을 실천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홀덤 포커 확률그들이 형성하도록 도와준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암 선고 당시의 좌절.내 시선을 현재에 집중하게 만든 반려견

▲  나의 두번째 반려견 라온 ⓒ 송주연
이를 실천하기 위해 은이가 떠나고 몇 달 뒤 유기견 보호소의 임시보호(이하 임보) 제안을 받아들였다.소개받은 강아지는 번식장에서 구조된 갓 6개월을 넘긴 어린 강아지인데 오른쪽 후지 관절이 굽혀지지 않는 장애가 있다고 했다.장애 때문에 국내 입양은 어려워 해외 입양이 될 때까지 임보를 부탁해 왔다.

그런데 알고보니,이 강아지를 구조한 사람이 바로 은이를 구조했던 사람이라는 거였다.긴 시간을 두고 같은 사람이 구조한 두 개가 내 품에 오다니.이건 어쩌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결국 나는 임보 일주일 만에 '임보실패'를 선언하고 함께 살기를 선택,'라온'이의 엄마가 됐다.

라온이는 일명 '개너자이저'였다.수시로 신나서 뛰어다니는 '우다다'를 했고,집안의 온갖 물건을 요란하게 갉아대면서 유치갈이를 했다.라온이에게 손이 많이 가 분주하면서도 그 에너지가 내게 전달되는 듯했고,그 덕에 나는 은이를 잃은 슬픔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를 펫로스에서 건져 준 라온이는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도 나를 살려냈다.지난해 5월 나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충격과 불안,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는 그때 한동안 '멍'한 채로 지냈다.충격으로 어떤 일을 해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고,혼자 있을 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라온이와 함께 할 때만은 달랐다.라온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함께 공놀이를 할 때는 웃음이 나왔다.특히 라온이와의 산책은 내게도 힐링이었다.호기심이 많아 산책보다는 '탐험'하듯 동네를 누비는 라온이에게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그 덕분에 산책 시간만큼은 걱정과 불안이 아닌 지금-여기에 머무를 수 있었다.

▲  나를 펫로스에서 건져 준 라온이는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도 나를 살렸다.'탐험'하듯 동네를 누비는 라온 덕분에 산책 시간만큼은 걱정과 불안이 아닌 지금-여기에 머무를 수 있었다.(자료사진).ⓒ wildlittlethingsphoto on Unsplash
게다가 라온이는 넘치는 에너지 때문에 하루라도 산책을 거를 수가 없었다.그래서 수술받고 퇴원한 바로 다음 날에도,방사선 치료를 매일 받으러 다니던 기간에도 하루 두 번 라온이와 산책을 했다.

당시 내겐 걷기 운동이 매우 필요했는데,아마도 라온이가 아니었다면 몸이 처지고 힘들다는 이유로 쉽게 밖에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라온이 덕분에 나는 곧바로 걷기 시작했고 이는 회복에 큰 도움이 됐다.

지금은 모든 치료를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했지만,'암'에 한 번 걸린 이상 재발과 전이에 대한 공포는 늘 내 마음에 깔려있다.하지만,라온이에게 배운 지금-여기서 사는 법 때문에 적어도 일상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이런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게 됐다.

반려인으로서 나는 은이가 알려준 것들을 실천하면서 라온이에게 또 다른 힘을 얻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조이가 국회를 바꿨듯,나의 반려견들은 나의 삶을 바꿨다.

어쩌면 반려동물에겐 은퇴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은이에게 일으킨 변화들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라온이에게 배운 지금-여기서 사는 법도 이젠 일상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조이도 마찬가지 아닐까?조이가 지금 바꿔놓은 것들,맞고의신그리고 조이법의 정신을 우리가 실천한다면,조이는 은퇴는 했지만,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 것일 테다.수고한 조이에게,테이블 포커그리고 나의 반려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반려견으로서 또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켜낼 조이의 제2의 삶을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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