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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남동부 분리주의자들이 봉쇄령을 내린 지난 2022년 2월,몇몇 시민들이 텅 빈 고속도로를 건너가고 있다.뉴시스

■ 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 (43) 나이지리아 에누구

최대종족 이보족 정신적 수도

아로왕국 노예무역 전진기지

‘야자유 눈독’英제국이 정복

1909년 석탄광산 발견되며

원주민 강제노동 착취당해

‘독립’향한 열망 불타올라

1960년 독립했지만 내부분열

내전 이후엔 군사정권 통치

‘희망’잃지 않은 아디치에

“우리가 해를 뜨게 하리라”

“우리가 민주주의를 몇 번 시도했다가 실패했기에 민주 정치를 못 하리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오늘날 민주 국가들이 처음부터 잘했던 것처럼.그것은 걸음마를 떼려다 엉덩방아 찧는 아기에게 가만있으라는 것과 같다.”

‘보라색 히비스커스’에서 치마만다 아디치에는 말한다.그녀는 나이지리아를 배경으로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을 결합한 소설로 세계적 주목을 끌고 있다‘보라색 히비스커스’는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후 정치적 불안으로 요동치는 나이지리아 남부의 이보족 도시 에누구를 무대로 하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은 캄빌리.열다섯 살인 캄빌리는 어떻게든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고 애쓰지만,기독교 보수주의자인 아버지는 욕설을 내뱉고 허리띠로 채찍질하면서 그녀에게 엄격한 신앙과 완벽한 학업 성적을 강요한다.아이러니한 건 독선에 가득한 아버지가 집 바깥에선 서구식 자유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인물이란 점이다.화가 난 그가 아내의 선반에 전시된 인형을 깨뜨리는 것은 서구 제국주의,기독교 문화,가부장제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캄빌리의 오빠 자자가 아버지에게 반항해서 성찬식을 거부한 사건을 계기로,캄빌리는 이페오마 고모 집에 가서 아프리카 전통 가족을 처음 접한다.그 집엔 “아무 때나 누구한테나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식탁”이 있고,그 중심엔 웃음과 사랑,기쁨과 자유가 있다.이보족 전통이 빚어낸 이 문화 속에서 캄빌리는 자기 언어로 말하는 법,도전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법을 깨닫는다.

작품엔 아버지로 압축되는 식민주의적 세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기 운명을 정하려는 나이지리아 민중의 갈망이 담겨 있다.보라색 히비스커스는 그 상징이다.“희귀하고 향기로우며 자유라는 함의를 품은,원하는 것이 될,원하는 바를 할 자유.”

에누구는 나이지리아 동남부에 있는 인구 약 470만 명의 대도시다.이 도시는 나이지리아 최대 종족 중 하나인 이보족의 정신적 수도다.이보어로‘언덕 꼭대기’를 뜻하는 에누구는 치누아 아체베,크리스토퍼 오키그보,아디치에,치고지에 오비오마 등 현대 서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작가들을 배출한 문학의 성지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참혹한 비극이 일어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에누구는 노예무역 시대에 아로 왕국의 전진기지로 건설됐다.마을 중심에 신전과 광장을 두고,그 주변에 정착지를 둔 후,다시 그 바깥에 노예 수용소를 마련했다.1902년 영 제국 식민지가 될 때까지 수세기 동안 에누구는 노예 거래로 조금씩 몸집을 불려 갔다.

영 제국의 나이지리아 정복은‘기름의 강’을 장악해 야자유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서였다.이보족은 마을 공동으로 야자수를 길러 요리하고 집 짓고 기름 짜는 데 이용하고,남는 기름을 배에 싣고 니제르강을 내려가 유럽 상인들에게 팔았다.이 때문에 니제르강의 별명이 기름의 강이 되었다.그러나 이는 저주였다‘제3의 물결’에서 앨빈 토플러는 기름의 강이 만들어낸 사태를 이렇게 전했다.“유럽인들이 마가린을 쉽게 사게 하려고 서구 국가들은 이곳에 야자유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했다.이 대규모 농장에서 유럽은 마가린을 얻었고,아프리카인은 반노예 상태에 빠졌다.” 산업화한 영국은 도시 노동자들을 위한 값싼 야자유를 원했고,이보족의 집을 불태우고 밭을 파괴하며 전진해 그 땅을 차례로 정복했다.

에누구가 근대 도시로 발전한 계기는 1909년 조상의 혼이 깃든 산에서 석탄 광산이 발견되면서부터다.영국 총독부는 석탄 반출을 위한 시설 구축에 나섰다.1915년 에누구에 탄광을 건설한 후,철도를 연결하고 주거지를 지었다.이로부터 에누구는 나이지리아 남부의 중심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도시는 유럽인과 원주민 거주지가 분리되는 전형적 식민 도시로 지어졌다.

석탄 채굴은 노예제에 가까운 가혹한 강제 노동에 의존했다.기회를 좇아 원주민 노동자가 몰려들었으나,일단 막장에 들어서면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정기적 체벌과 모욕 행위,상습적 임금 체불,심즈 온라인 졸업장높은 임대료 탓이었다.이런 비인간적 착취는 격렬한 반발을 불렀다.1949년 광부들이 연대해 대규모 파업을 일으켰다.진압에 나선 영국 경찰은 총으로 21명을 학살하고 50여 명을 다치게 했다.이 사건을 계기로 반식민지 정서가 고조되고,독립을 향한 열망이 불타올랐다.

나이지리아 에누구의 나무농장.
나이지리아 에누구의 나무농장.


1960년 나이지리아 독립은 에누구에 또 다른 비극의 씨앗을 뿌렸다.식민지 시절,영국의 남북 분할 통치가 원인이었다.이슬람교도인 북부 하우사족은 전통적 생활 방식을 고수했고,영국은 이슬람 지도자를 통해 이들을 간접 통치했다.별다른 경제적 실익이 없었기에 큰 투자도 없어서 이들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남부 이보족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서구적 생활 방식을 수용하는 등 현실에 빠르게 적응했다.석탄,우리 카지노슬롯검증사이트석유 등도 이들의 땅에 집중되어 있었다.영국은 이곳을 직접 통치하면서 수탈을 위한 투자를 꾸준히 진행했다.그 결과,나이지리아 남북의 불균등 발전이 심화하고,종족 갈등과 종교 갈등이 심해졌다.

독립 이후,경제는 이보족이 장악하고,권력은 하우사족이 넘겨받으면서 분열이 극단적 분쟁으로 번졌다‘사바나의 개미 언덕’에서 치누아 아체베는 전체의 삶은 아랑곳없이 자신과 가족만을 생각하는 권력자들의 행태를 비판했다.“우리 지도자들이 국가 심장부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고통스레 떠는 빈곤층이나 경제적 파탄자와 확고한 연결 고리”를 확보하지 못한 채 사회 분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그 분열이 심각해져 전쟁으로 이어진 게 비아프라 내전이다.

독립 이후,정권을 장악한 하우사족은 영국과 결탁해 이보족에 대한 차별과 착취,암살과 탄압을 일삼는다.견디다 못한 이보족 군인이 1966년 북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한 후,하우사족 민병대가 이보족을 학살하고 약탈하는 일이 벌어진다.결국,이보족은 1967년 에누구를 수도로 삼아 비아프라공화국을 수립한다.이로부터 “우리 양심과 집단 기억을 오랫동안 괴롭힌”(월레 소잉카) 추악한 내전이 시작된다.

영국은 이보족 지역의 석유와 석탄 등을 헐값에 탈취하려고 정부에 무기를 지원한다.기관총과 비행기로 무장한 정부군은 이보족 저항을 무력화한 후 비아프라를 봉쇄한다.그 결과 눈 뜨고 보기 힘든 참사가 발생한다.식량 및 의약품 부족으로 이보족 민간인 약 200만 명이 죽은 것이다‘절반의 태양’에서 아디치에는 이 인세 지옥을 한 편의 시로 압축했다.“머리에 딱지 앉은 아이들/ 사진을 보았나요?/ (중략) 두 팔은 이쑤시개 같고 배는 축구공 같으며/ 살이 없어 피부가 늘어지는 아이들을 상상해 보세요.”

폭격 속에서 어린아이들이 굶어 죽는 데도 적십자사 등 구호단체들은 영국의 눈치를 봤다‘오니샤’에서 르 클레지오는 그 위선을 비판했다.“굶주린 아이들은 무기 들 힘이 없었다.그들은 비행기와 총에 맞서 막대기와 돌을 들었을 뿐이다.그러나 전 세계가 이를 외면했다.” 존 레넌은 이 비인도적 처사에 항의해 훈장을 반납했고,양심적 의사들은 이들을 도우려고 적십자사를 나와‘국경 없는 의사회’를 결성했다.

내전 이후,나이지리아엔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섰다.오비오마는 그 암울한 현실을 “납치범,의례적 살인자,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괴롭히고 뇌물을 주지 않는 사람들을 쏘아버리는 경찰,자기가 이끄는 사람들을 경멸하고 그들의 국가를 강탈하는 지도자,빈번한 폭동과 위기,기나긴 파업,원유 부족,실업”(‘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파괴된 도시 에누구는 문학에서 눈부신 회복력의 상징이 되었다.이 도시는 “사슬에 매이고 매를 맞은 모든 사람,토지를 약탈당한 사람,문명이 파괴당한 사람,침묵당하고 강간당하고 모욕당하고 살해당한 사람”,그러니까 “할 일이 우는 것밖에 없는”(‘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 이 세상 모든 약자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석탄 경제 붕괴에 따른 어려움에 시달리고 독재 정권의 탄압에 비틀대면서도,에누구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약자들의 수도로 부활했다.“해가 뜨기를 거부한다면,우리가 뜨게 하리라.” 비아프라 국기엔 노란 태양이 새겨져 있다.절반쯤 떠오르다 멈춘 태양을 제목 삼은 아디치에는‘절반의 태양’의 끝에 힘찬 다짐을 적어두었다.고통에서 얻은 지혜가 있는 한,희망을 향한 여정을 멈출 수 있는 건 어디에도 없다.

출판평론가

■ 용어설명 - 국경 없는 의사회

1960년대 말 비아프라 내전 현장에 파견됐던 프랑스 출신 젊은 의사들은 난민들 참상에 큰 충격을 받았다.영국의 방해로 적십자사 등 인도적 지원조차 받지 못한 이보족 난민들은 식량이 떨어지고 기초 의약품이 모자라서 수십만 명이 죽어 나갔다.전쟁이 끝난 후,프랑스로 돌아온 의사들은 정치나 이념에 좌우되지 않고,양심에 따라서 움직이는 인도주의 단체가 필요함을 절감한 끝에 1971년 파리에서‘국경 없는 의사회’를 결성했다.이 단체가 적십자사를 넘어서 세계를 대표하는 인도주의 의료단체로 성장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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