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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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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4일 오전 10시 강원도 철원 양지리,초소를 지나 북한이 바라보이는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안쪽으로 들어오자 마른논과 비닐하우스 위를 서리가 하얗게 덮은 광경이 펼쳐졌다.

어떤 서리들은 아직 빛나고 있었고 어떤 서리들은 녹아내리고 있었다.그 사이로 '꾸룩꾸룩' 소리가 들려온다.철원 평야를 활보하는 두루미의 울음소리다.

"재두루미 넷,두루미 둘."

이기섭 한국물새네트워크 선임이사가 차를 멈추고 나지막이 읊조리며 오른쪽 논에 보이는 두루미 수를 태블릿에 기록하기 시작한다.그리고 조수석에 앉은 이계옥 철원군청 두루미팀장에게 말한다.

"왼쪽 논 바로 앞에 재두루미가 두 마리 있네요.'ㅈ2'라고 써주세요.뒷쪽 논에 두루미가 세 마리.원래 두 마리 가족이었는데 새끼가 따라왔네요.'ㄷ3'에 '새1'이라고 쓰겠습니다."

이 날은 해가 바뀌고 처음으로 '철원 두루미 센서스(개체수 조사)'가 진행됐다.한나절 동안 철원 일대의 두루미의 개체수를 세는 작업이다.34명이 20개 팀으로 나뉘어 철원 민통선 일대에서 겨울을 나는 두루미를 파악하기로 했다.이 이사와 이 팀장은 '아이스크림 고지' 일대를 맡았다.

219m 높이의 작은 산으로 원래 이름은 '삽슬봉'이지만 한국전쟁 당시 포격을 받아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듯 흘러내리는 바람에 새로운 별명이 붙은 곳이다.차를 천천히 조금 몰고 가다 멈추고 쌍안경으로 논 여기저기 흩어진 두루미의 숫자를 파악하고 기록하는 작업이 반복된다.

철원 두루미 개체수 파악은 2002년부터 이 이사가 꾸준히 해온 작업이다.2018년부터는 철원군과 함께 센서스를 진행하면서 지금처럼 여러 사람들이 세는 작업 방법이 자리를 잡았다.

"순천만처럼 두루미가 모여있으면 한꺼번에 세면 되는데 철원은 여기저기 흩어져있으니 이런 식으로 세야 하죠.힘들어요."

두루미는 철원,연천,파주,강화일대(빨간 원)의 민간인통제구역에서 월동한다.과학동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두루미는 철원,연천,파주,강화일대(빨간 원)의 민간인통제구역에서 월동한다.과학동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그를 따라 메마른 논을 쌍안경으로 둘러보니 왜 철원이 두루미의 고장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두루미가 여기저기에 있었다.그림으로,문학 작품으로,sec 이더 리움 etf노래로 접한 적은 있지만 두루미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기품있는 흰 깃털과 대조되는 검은 깃털,그리고 빨간 정수리.키만 1.5m,날개를 펼쳤을 때의 길이는 2.2m.두루미는 한국에 오는 가장 큰 새다.멀리서도 잘 보인다.왜 선조들이 이들을 '학'이란 이름으로 숭상했는지 알 것 같다.걷는 모습도,확실한 3 확률 매나는 모습도 여유롭다.

눈처럼 흰 두루미 옆으로 조금 덩치가 작고 등에 재를 덮어쓴 양 잿빛 깃털을 가진 재두루미가 모여있다.이들이 논 여기저기에 떨어진 벼낟알(낙곡)을 뒤지며 한갓진 아침을 부산스럽게 만들고 있다.

 (왼쪽부터) 1월 4일 진행된 2025년 첫 번째 철원 두루미 센서스.이기섭 한국물새네트워크 선임이사,이계옥 철원군청 두루미팀장(오른쪽)이 두루미의 수를 세고 있다,이 이사가 고지대에서 망원경으로 논에 내려앉
(왼쪽부터) 1월 4일 진행된 2025년 첫 번째 철원 두루미 센서스.이기섭 한국물새네트워크 선임이사,이계옥 철원군청 두루미팀장(오른쪽)이 두루미의 수를 세고 있다,자동차 게임 pc 무료이 이사가 고지대에서 망원경으로 논에 내려앉은 두루미를 관찰 중이다.과학동아 제공
● 두루미,북한에서 내려온 사연

두루미는 겨울 철새다.북쪽 멀리 중국과 러시아를 흐르는 아무르강의 습지대에서 여름을 보내며 새끼를 키운다.그러다 10월 즈음이 되면 겨울을 지내기 위해 한반도로 내려온다.잡식성이라 논에서 발견한 우렁이나 미꾸라지를 즐겨 먹지만 물이 얼어붙는 겨울에는 논에 흩어진 낙곡을 주워먹으며 버틴다.

전 세계에는 15종의 두루미가 산다.철원 평야는 아시아에 사는 8종의 두루미 중 무려 7종이 목격된 장소다.지금까지 두루미,재두루미,흑두루미,검은목두루미,캐나다두루미,시베리아흰두루미,쇠재두루미가 목격됐다.이들 중에서도 철원 평야의 주인이라 할만한 종이 두루미와 재두루미다.

이 이사가 설명했다."철원은 두루미와 재두루미의 한국 최대 월동지입니다.흑두루미는 소수만 철원에서 월동하고 대부분 전남 순천만과 남부 지역에 머물러요.검은목두루미 등 나머지 두루미 종들은 극히 적은 수만 철원에서 보이죠."

2024년 11월 30일 진행된 센서스에서는 1133마리의 두루미가 기록됐다.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2021년 전 세계 두루미의 수를 3800마리 정도로 추산했으니 세계 두루미의 3분의 1이 철원에 모여있는 셈이다.

철원이 대표적 두루미 월동지가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두루미는 낙동강 유역은 물론 울산,애플티비 카지노진도 등 전국에서 발견됐다.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에 많은 수가 일본인들의 식용으로 사냥당했고 결정적으로 한국전쟁 당시 전국의 서식지가 황폐화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1960~1970년대가 되면서 철원에 두루미가 한두 마리씩 보이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요.70년대 후반에는 사계절 내내 물이 흐르는 샘통 지역에서 100여 마리 정도가 관찰됐죠." 2024년 12월 27일 연구실에서 만난 최명애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설명했다.

철원 두루미는 199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개체수가 늘었다.그 이유는 북한을 덮친 대기근이었다.원래 두루미가 철원보다 자주 찾던 월동지는 철원 북쪽으로 70km 떨어진 북한 안변 평야였다.그런데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라 불린 대기근이 북한을 덮치면서 북한 농민들은 기근을 피하기 위해 논의 낙곡을 필사적으로 주워갔다.

그 결과 겨울에 두루미가 먹을 낙곡이 사라졌고 함께 안변의 겨울을 지키던 240여 마리의 두루미가 사라졌다.최 교수는 "안변의 두루미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시기,철원의 두루미가 늘기 시작했다"고 했다.

철원이 두루미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이외에도 더 있다.우선 한국전쟁으로 생겨난 비무장지대(DMZ·Demilitarized Zone)의 습지와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주변 논이 두루미의 적합한 월동지역이 됐다.DMZ는 물론 민통선 주변은 군사 통제 구역이라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었다.

철원 일대에 도입된 농업 기계도 두루미에게 이점이 됐다.민간인은 저녁이 되면 민통선 밖으로 나가야 했다.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트랙터와 콤바인 등의 기계를 이용한 농사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죠.60년대에 이미 기계영농화단지가 생길 정도였어요."

최 교수의 설명처럼 기계 영농은 일을 빠르게 진행시켜줬지만 추수할 때 낙곡률이 높다는 단점도 있었다.인간이 벼를 직접 추수할 때의 낙곡률은 1~3%지만 콤바인을 이용해 벼를 추수하면 낙곡률이 3~5%에 달한다.인간에게는 단점이 그만큼 주워먹을 먹이가 많아졌기 때문에 두루미에게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냉전이라는 정치적 상황이 두루미에게 DMZ,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이라는 삶의 터전은 물론 낙곡이라는 먹이까지 제공해준 셈이다.

1월 14일 철원군청이 진행한 두루미 먹이주기 행사.드론으로 두루미의 먹이를 뿌리고 있다.철원에서는 연구자와 지역 주민,지역자치단체가 함께 두루미와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과학동아 제공
1월 14일 철원군청이 진행한 두루미 먹이주기 행사.드론으로 두루미의 먹이를 뿌리고 있다.철원에서는 연구자와 지역 주민,지역자치단체가 함께 두루미와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과학동아 제공
● 두루미,불청객에서 환대받는 손님으로

1월 14일 오전,이 이사 탐조팀은 차를 대고 아이스크림 고지 위로 올라갔다.주변 평야와 평야를 노니는 두루미 무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고지에 설치된 벙커를 탐조대로 개조했다.이 이사는 차가 접근하지 못한 논을 이곳에서 망원경으로 관측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철원 농민들이 두루미를 환영한 건 아니다.2000년대 초 철원을 찾는 두루미가 800마리를 넘어서자 철원에 터를 잡은 농민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철원 농민들에게 두루미는 불청객이었다.자신들의 논밭이 천연기념물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경제적 손해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두루미를 논에서 쫓아내고 군청에 항의했죠.철새 보호구역 지정이 무산되기도 했어요." 두루미가 낙곡을 먹지 못하게 추수가 끝난 논을 갈아엎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이후 10여 년에 걸쳐 서서히 변했다.두루미를 보존하려는 주민들이 직접 다른 농민들을 설득하기도 했다.연구자들의 노력과 함께 지자체에서도 힘을 보탰다.

이 팀장은 "현재 철원군은 두루미 보호를 위해 '무논 조성'과 '볏짚존치 사업'을 진행 중"이라 설명했다.추수가 끝난 논에 물을 댄 '무논'을 만들고 볏짚을 다 베어가지 않고 논에 남겨둬 두루미가 쉬면서 식량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업이다.

볏짚존치 사업에 참여하는 농가에는 100~200만 원 정도의 수익이 돌아가니 농민들이 두루미를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올해만 볏짚존치 사업에 11억 원을 들였다.

"철원에서 두루미가 환대받게 된 중요한 계기는 두루미의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최 교수는 두루미의 귀환을 이렇게 설명했다.

최 교수는 2020년부터 여러 학문 분야의 연구자들과 함께 철원 일대의 두루미를 연구했다.두루미와 두루미를 관찰하는 조류학자는 물론 두루미와 상호작용하는 농민들도 연구의 대상이었다."철원 농민들은 두루미에 관한 자부심이 대단해요." 그의 감상이다.

"어떤 분들은 '두루미가 날 알아본다'고 얘기하기도 해요.두루미가 잘 놀라고 경계심이 강한 동물인데 자기 차가 농로에서 지나가도 날아가지 않는다는 거죠.애정의 표현인 거예요."

어쩌면 두루미의 가치가 높아진 이면에는 농업의 추락이 있다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2000년대 들어 벼농사의 경쟁력이 주저앉으면서 지자체들은 살길을 찾아야했다.멸종위기종 두루미가 날갯짓을 하는 곳은 그만큼 환경이 깨끗하다는 증거고 이를 지자체 홍보와 농업 마케팅에 쓸 수 있다는 생각이 퍼졌다.

그렇게 두루미는 철원의 자산이 됐다.비슷한 일은 다른 지자체에서도 일어났다.전국에서 가장 많은 흑두루미가 모이는 전남 순천시는 2008년 순천만 일대의 전봇대를 뽑아버렸다.두루미가 날다 전선에 부딪쳐 죽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재두루미가 모이는 충남 서산도 비슷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초고령 사회와 지방 소멸의 시대에 '생태'를 생존의 키워드로 잡고 생태관광 협의체를 만들어 노력하는 지자체들이다.이 팀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1시간 동안 이 이사는 꾸준히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두루미의 수를 세고 있다.

하늘을 날고 있는 두루미.철원의 두루미들은 논에 질소가 풍부한 배설물을 남기면서 농민과 공존한다.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하늘을 날고 있는 두루미.철원의 두루미들은 논에 질소가 풍부한 배설물을 남기면서 농민과 공존한다.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인류세의 풍경'을 넘어 두루미와 공존하려면

센서스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철원 도로변에는 백마부대 표지판,대전차 장애물,'쌀 수입 반대한다!' '양곡관리법 통과시켜라!'라고 쓰인 현수막 사이 여기저기로 두루미 조형물과 벽화가 보였다.

전쟁과 정치,농업이 만들어낸 어지러운 태피스트리 사이를 가로질러 나는 두루미의 모습을 무엇보다 잘 보여주는 풍경이다.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은 철원 두루미의 생존에 적합한 공간이 완전한 자연이 아닌 인간의 손길이 개입한 '논'이란 점이다.

"논은 대표적인 인류세의 풍경이에요.열대지방의 사탕수수나 팜유 농장처럼 단일 작물이 다양성을 배제하고 펼쳐진 곳이죠." 최 교수는 두루미가 노니는 철원의 논이 인류세를 넘어선 풍경이 될 가능성에 주목한다.

"철원의 논은 야생동물과 인간이 땅을 공유하는 장소라 볼 수 있어요.계절에 따라 봄과 가을에는 농민이,가을과 겨울에는 두루미가 사용하는 땅이 되죠." 시간에 따라 공간을 점유하는 주체가 달라지는 '타임 셰어링'이 일어나는 것이다.이는 농민과 두루미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농민들은 두루미가 머물 수 있도록 논에 물을 대고 볏짚을 남겨두고 두루미는 겨울내내 배설물로 토양을 윤택하게 만들어준다.최 교수를 비롯한 연구팀이 한 농민의 건의로 두루미가 머물다 가는 논의 토질을 그렇지 않은 곳과 비교한 결과 두루미가 머물며 배설물을 남긴 논은 그렇지 않은 논에 비해 탄소와 질소 함량이 각각 76%,31% 높았다.(doi: 10.1371/journal.pone.0268461)

"어쩌면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농민과 두루미의 '협력적 생존'이 논에서 이뤄지는 거죠." 최 교수가 철원의 논을 바라보는 시선이다.이 협력적 생존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까.

두루미 개체수가 늘면서 이제 두루미들은 강화,파주,연천 일대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두루미들에게는 좋은 일이다.한곳에만 모여서 월동하다 조류 독감 같은 전염병이 퍼져 다수의 개체가 몰살당하면 종 자체의 존립에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두루미는 이들 지역에서 모두 민통선 내에만 나타난다."두루미는 덩치가 있다보니 다른 두루미 종들보다 더 넓은 서식지가 필요합니다.그런데 다른 새들보다 민감해서 사람들이 나타나면 얼른 날아가버리죠.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이 줄어들고 논이 개발되면 몸집이 작고 친화력있는 재두루미야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두루미에게는 상황이 심각해지는 겁니다." 이 이사의 말이다.

두루미의 월동지를 만든 지정학적 요소들이 두루미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한 것이 아이러니했다.

취재가 끝나고 철원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동송읍 이 길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철새도래지였다.겨울 캠프를 나온 모양새의 학생들이 망원경으로 강가의 새들을 보고 있다.물이 얼지 않은 한탄강 상류에 두루미와 재두루미는 물론 큰고니(멸종위기종 I급),비오리,가창오리가 여기저기 흩어져있다.인간은 인류세의 풍경을 넘어 다른 종과 공존할 수 있을까.어쩌면 4년 동안 두루미를 둘러싼 풍경을 관찰해 온 최 교수의 말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멸종위기종을 보호한다는 선한 의도로 출발한 건 아닐지 몰라도 몇년에 걸쳐서 두루미를 보다 보면 애착과 애정이 생기거든요.두루미를 꾸준히 만나온 지금의 농부는 5년 전의 농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관계를 통해서 일궈지는 변화를 의미있게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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